추억(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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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추어탕
2013.08.21 수요일 이틀 전 개학날, 빨리 학교에 가고 싶다던 마음과 다르게 몸이 탈 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개학날 다시 만난 반 친구 인사말이 "너 방학 지나고 다크서클이 정말 진해졌구나!"였다. 쉬는 시간엔 복도에서 2학년 때 담임 선생님과 마주쳤는데 "상우야, 너 왜 이렇게 몸이 자꾸 말라가니?" 하셨다. 마치 끔찍한 것을 본 듯, 눈쌀을 찌푸리시는 선생님의 걱정스런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걸을 때도 중력이 더 강해진 것처럼 자꾸 주저앉으려 하고, 하다못해 책가방을 맨 어깨에 멍이 들었으니! 집으로 돌아와 나는 풀썩 쓰러졌다. 다시 일어나 팔굽혀펴기를 해 보려고 끙끙 용을 썼지만, 팔에 힘이 하나도 주어지지 않아 다시 벌렁 쓰러졌다. 요즘 기가 허하고, 힘이 없고, 자꾸 잠만 자려 하는 문..
2013.08.24 -
<상우일기>가 MBC에 나오는 날!
2011.06.24 금요일 나는 처음에 촬영한다고 들었을 때, 큰 자동차 2대 정도가 우리 집 앞으로 와서, 조명 장치와 스피커 같은 것을 든 채, 좁은 우리 마당에 거대하고 대포 같은 카메라를 밀고 들어올까 봐 은근히 겁을 먹었다. 하지만, 정작 온 것은 젊은 PD님 한 분과 삼발이가 달린 카메라였다. 나는 사람 1명과 카메라 1대라면 충분히 긴장하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내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은 MBC 방송국에서 새롭게 시작한 라는 프로그램인데, 지금까지 4회 정도 했고, 모두 쟁쟁한 블로거들이 출연했다. 한 달에 포스팅도 얼마 안 하는 내가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는, 정말 가슴이 벅차고 믿기지 않았다. 학교 끝나는 대로 일찍 와 방 청소를 하면서도, 오늘 내가 방송에 나올 촬영을 한..
2011.07.02 -
매점 아주머니 덕분에 되새긴 나의 블로그
2011.04.22 금요일 "후우, 하~!" 오늘도 매점에는 학생들이 사탕에 개미 꼬이듯이 모였다. 나도 그중에 먹을 것을 얻으려는 일개미처럼 끼어서, 겨우겨우 카운터 앞까지 도착해 한숨을 돌리고 있었다. 우리 학교 매점은 맛난 것들을 많이 팔아서 점심시간, 학교 끝난 후 할 것 없이, 언제나 사람들로 복작북적거린다. 나는 카운터 앞에 잠시 몸을 기대어 헐떡인 뒤에, 지갑에서 천 원을 꺼내 내가 평소에 즐겨 먹는 과자를 사려 하였다. 어떤 선배가 군것질거리를 계산하고 있는데, 카운터에 계신 아주머니께서 "얘? 너 혹시 상우 아니니?" 하고 물어보셨다. 그 형아는 '웬 상우?'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나는 피식~ 웃음이 얼굴에 번졌다. '진짜 상우가 바로 옆에 있는데, 왜 엉뚱한 사람을 ..
2011.04.26 -
버스 정류장 찾아가는 길
2010.12.20 월요일 "은철아, 여기가 어디야?", "나도 몰라, 어헝헝~!" 어느새 해는 떨어지고 하늘은 주황색 감빛으로 물들었다. 금세 주위는 더 어두워지고, 도로 옆 숲에 숨어서 누군가가 우리를 몰래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붜우 워우~!" 도로 옆에 바로 난 기와집 마당에 묶여 있는 개들이 큰소리로 우리를 향해 짖었다. 나와 은철이는 서로 팔을 꼭 붙들고 "괜찮아, 저건 그냥 개야!" 위로하며, 개를 향해 답례로 동시에 "으루루루, 워워~!" 짖어주었다. 오늘 학교가 끝나고 나와 은철이, 지호는 모두 성환이 집으로 놀러 갔다. 성환이 집은 학교에서 몇 정거장 떨어진 곳에 있어서 버스를 타고 가야 했는데, 내가 타고 다니던 양주역까지 가는 마을버스와는 반대 방향이고 번호도 낯설었다. 처음엔..
2010.12.22 -
내가 생각하는 좋은 가정
2010.11.24 수요일 오늘 선생님께서 내주신 일기 주제는 이다. 나는 언뜻 내가 생각하는 좋은 가정의 모습을 떠올렸을 때, 우리 가정이 그 예가 아닐까? 생각했다. 뭐 특별히 내세울 건 없지만, 가족 모두 살아 있고, 팔다리는 멀쩡하고, 부모님은 이혼하지 않았고, 이 정도면 완벽한 가정의 모습이 아닐까? 사실 뭘 더 바라는가? 우리 주변의 많은 가정은 심하게 아픈 사람이 있어서 슬픔과 피로에 잠겨 있거나, 가족끼리 사이가 안 좋아서 불행하다고 느끼고, 심지어는 불의의 사고로 가족과 이별하기도 하고, 부모님께서 이혼을 해서 가정이 풍비박산 나는 일도 많은데... 그에 비해 제대로 된 가정이라도 가지고 있는 우리는 복 받은 것으로 생각하였다. 하지만, 곰곰 더 생각해보니 그냥 가정이 온전한 틀만 가지고..
2010.11.27 -
헌법재판소 판결처럼 우울한 날씨
2009.10 31 토요일 점심을 먹고 축농증 치료를 받으러 상가 병원으로 가는 길이었다. 어제까지 아파트 단지마다 붉고 노란 나뭇잎이 땅바닥에 가득 뒹굴었고, 나뭇가지에도 빨간색 등불을 켜놓은 것처럼 예뻤는데, 오늘은 다르다. 오전부터 내리던 비가, 그동안 가을을 지켰던 풍성한 나뭇잎을 한 잎도 남기지 않고 모두 떨어내버렸다. 그래서 나뭇가지들은 바짝 말라서 쪼글쪼글해진 할머니 손처럼, 또는 X레이에 찍은 해골의 손뼈처럼 가늘가늘 앙상하다. 내가 조금만 건드려도 톡 부러질 것 같다.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밝혀주었던, 가을의 빨간 축제가 매일 열리던 길목은 이제 끝났다. 내가 걷는 길은, 차가운 비가 투툴투툴 내리는 추억 속의 쓸쓸한 길이 돼버리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우산 속에서 햇빛을 못 받아 어..
2009.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