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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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몸으로 빨래 널기
2013.08.16 금요일 여름이 막바지, 한낮의 기온이 33도가 넘는 더위 속에 나는 오늘도 윗옷을 입지 않은 채, 아래는 사각 팬티 차림으로 감질 나는 미니 선풍기 바람을 쐬며 집 안에 콕 틀어박혀 있다. 아무도 나를 보는 사람은 없다. 그때 엄마가 아래층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 엄마는 보기만 해도 덥고 무거워 보이는 청바지 빨래 덩어리를 한꾸러미 안고, 잔뜩 인상을 쓰면서 말씀하셨다. "가서 널어!" 내가 군말 않고 아래로 내려가 엄마의 빨래를 받자마자 엄마는 쓰러지는 시늉을 하셨다. "잘 마르게 널어야 해~" 나는 물에 불어 축축하고 무거워진 빨래 덩어리들을 품에 안고, 2층 내방을 지나 어기적 어기적 다락방을 넘어 옥상으로 들어갔다. 이 옥상은 원래 다락방이었는데, 할머니께서 작은 텃밭을 가꾸려..
2013.08.17 -
강아지를 키우고 싶은 마음
2010.09.11 토요일 나는 얼마 전에 TV에서 나온 감동적인 영화, 를 보고서 개를 키우고 싶다는 마음이 다시 솟구쳐올랐다. 그리고 내가 학교에서 읽은 책 중에 개 키우기에 관한 책이 있었는데, 그 책에는 귀여운 개와 주인과 친하게 지내며 교감을 하는 개의 사진들이 애틋하게 실려 있다. 어느덧 나는 개를 키우고 싶은 마음이 조금씩 조금씩 쌓이다가 분화구처럼 폭발하게 되었다. 음, 개를 보고 있으면 나도 기분이 좋아지고, 다른 사람들이 개와 친하게 지내고 재미있게 놀며 마음을 나누는 것을 보면, 나도 그러고 싶다. 물론 개가 짖고, 털이 많이 빠지고, 사료비에 예방 접종, 똥 누고 오줌 싸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고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털이 안 빠지고 잘 짖지 않는 종의 개도..
2010.09.14 -
황금 연필
2009.03.17 화요일 5교시가 끝나자 우리 반은 모둠별로 나가 선생님께 알림장 검사를 맡았다. 알림장 검사를 다 받고 자리로 돌아오는데, 호준이가 나에게 다가와서 "상우야, 아까전에 그 파란색 파워레인저 연필, 니꺼 아니니?" 하였다. 나는 점심 시간에 5교시 수업 준비를 하면서, 맨 앞자리에 앉은 홍범이가 몽당연필을 쓰는 걸 보고, 새 연필을 한 자루 빌려준 일이 생각났다. 연필을 돌려주려나 보다 생각하고 "응." 고개를 끄덕였는데, 호준이가 다짜고짜 홍범이 뒤에 앉은 태국이에게 "거봐~! 상우거 맞잖아!" 하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영문을 몰라 어벙벙하였는데, 태국이가 눈을 흘기며 "아냐~! 이거 내거거든!" 하고 맞받아쳤다. 태국이가 쥔 연필은 내 연필이 맞았다. 그런데 태국이는 며칠 전에 잃..
2009.03.18 -
승부가 뭐길래!
2009.02.07 토요일 4교시에 국화 반과 축구 시합을 하였다. 안개 때문에, 오늘따라 운동장을 감싸는 공기가 음침하게 느껴졌다. 국화 반이 어떤 반인가! 유난히 운동을 좋아하는, 덩치 크고 기운 팔팔한 아이들이 몰려있기로 이름난 반이다. 아니나 다를까, 시작되자마자 전쟁을 방불케 하는 격전이 펼쳐졌다. 나는 수비수로 뛰면서 비정한 눈빛의 하이에나처럼 달려드는 국화 반 아이들에게 은근히 기가 죽었다. 하지만, 겁먹은 티 내지 않고 눈썹에 힘을 주고, 이를 앙 문 채 밀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나는 곰이 아니다, 사자가 되어야 해, 공을 놓치지 말자!' 속으로 이렇게 외치며 안간힘을 썼는데, 전반전은 2골을 내주고 말았다. 후반전이 들어서자, 우리 송화 반은 더 악착같이 달렸다. 특히, 준렬이, 성환이..
2009.02.09 -
끔찍한 축구 시합
2008.05.16 금요일 4교시 체육 시간, 운동장에 나가 남자는 축구, 여자는 피구시합을 하였다. 남자들은 제일 축구 잘하는 아이 2명을 주장으로 뽑고, 뽑힌 주장 2명이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이긴 사람이 자기 팀에 넣고 싶은 애를 차례대로 집어넣었다. 팀이 다 채워져 가고, 나 말고 3명이 남았다. 나는 이성환이라는 애가 주장인 팀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성환이는 나를 자기 팀에 넣어주지 않았다. 시합 시작하기 전, 아이들은 나는 수비수 할 거야! 나는 공격 미드필더 할 거야! 하면서 역할을 정하는데, 나는 뭘 해도 못하니 딱히 할 게 없어 팔짱을 낀 채로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런데 내가 몸집이 커서 공을 잘 막을 것 같다고, 아이들이 우르르 나를 골키퍼로 몰아세웠다. 난 마음속으로는 '어어, ..
2008.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