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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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학교
2010.02.02 화요일 오늘은 드디어 개학을 하는 날이다. 이번 방학은 유난히 길고도 짧았다. 오랜만에 아침 시간에 밖에 나와서 신선하고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니, 폐가 갑자기 첫 숨을 쉴 때처럼 놀라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오후에만 나다니다가 갑자기 아침에 나와서 그런지, 바람이 볼을 찰싹찰싹 쓰라리게 하고, 옷을 두껍게 입었는데도 소매하고 품 안으로 바람이 어느새 들어와 있었다. 5단지에서 나오니 꼭 동물들이 대이동을 하듯이, 삼숭초등학교 학생들이 한길로 우르르 몰려가는 모습은, 심장이 뛰도록 흥겹고 신이 났다. 바람이 매섭게 핏발이 선 날씨였지만, 나와 같이 배우러 가는 친구와 학생들이 있다는 생각에 기쁘고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학교 언덕 밑 교문에서는 1,2단지 쪽 횡단보도에서 건너오는 아이들..
2010.02.04 -
추운 날의 라틴 댄스
2009.11.22 일요일 포천 허브 아일랜드 연못은 벌써 살얼음이 얼었다. 추워서 덜덜 떨며 걷다가, 우리는 라틴 댄스 공연을 하는 임시 야외무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야외무대를 둘러싼 울타리 바깥에서 공연을 지켜보았다. 나무로 만든 무대 끝 사람들 앞으로,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어린 무용수들이 줄지어 걸어나왔다. 모두 석고상같이 하얀 얼굴에 고양이처럼 길게 올라간 눈 분장을 하였다. 남자 아이들은 가슴이 파진 검은 블라우스에 꽉 끼는 검은 바지를 입었고, 여자 아이들은 화려한 비키니 수영복같이 거의 살이 드러나는 무대 옷을 입고 나왔는데, 바람이 차가운데다 빗방울까지 날려서 참 딱해보였다. 대부분 키는 나보다 조금 커 보이는데, 몸은 내 반쪽만큼 말랐을까? 추워서 그런지 긴장해서 그런지 다 ..
2009.11.23 -
순수 퀴즈를 즐겨요!
2009.11.02 월요일 6교시 실과 시간에 재미있는 퀴즈 놀이를 했다. 선생님께서 "자, 이 퀴즈는 7살, 8살 어린이들이 문제를 낸 것인데 문제를 맞추는 열쇠는, 여러분의 관점이 아니라 어린이들의 관점에서 문제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에요!"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TV 화면 하얀색 바탕에 라는 예쁜 파란색 글자가 둥~ 떠올랐다. 나는 왠지 그 글자가 마음에 들었다. "먼저 손을 들고 자기 이름을 크게 부르는 사람에게 맞출 기회를 줄게요. 개인이 얻은 점수는 그 모둠의 점수가 됩니다!" 하며 선생님이 칠판 중간에 분필로 모둠 점수판을 차례차례 똑 또 뚝 써넣으셨다. 첫 번째 문제는 '이것은 쓸 때마다 인사를 해요!'였다. "저거 뭔 줄 알겠어?", "나도 몰라~." 문제가 나가자마자 아이들은 난리가..
2009.11.05 -
정신없는 방학식
2009.07.17 금요일 선생님께서 방학을 맞이하여 안전사고에 대비하는 교육 동영상을 보여주시는데, 그걸 주의 깊게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반 전체가 앞뒤 사람, 옆 사람과 섞여서 떠들고, 심지어는 일어서서 떠들었다. 그 소리가 합쳐져서 "에붸뢰붸~ 와워워워~ 쁘지지~" 꼭 외계인 소리 같기도 하고, 라디오 주파수가 잘못 잡힐 때 생기는 잡음처럼 교실 안을 꽉 메웠다. 한참 안전사고 수칙에 관한 이야기가 흘러나올 때는, 난데없이 "저 집 핫도그 맛있어! 빨리 방학이 왔으면~!" 하는 말소리가 튀어나오기도 했다. 교실 벽에 걸린 시계는 고장 났고, 우리 반은 스피커가 없어서 쉬는 시간 종소리가, 아이들 떠드는 소리에 묻혀 가물가물하였다. 앞뒤사람과 전화번호를 받아적고, 집에서 싸온 푸짐한 간식을 먹..
2009.07.18 -
불타는 토스트
2009.07.03 금요일 드디어 기말고사를 마치고, 나는 날개를 단 기분으로 학교 앞, 피아노 학원이 있는 상가 1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계를 보니 벌써 12시 15분, 지금 가서 줄을 서면 과연 먹을 수 있을까? 오늘 상가에서 '불타는 토스트'라는 가게가 문을 여는데, 개장하는 날 특별 이벤트로 낮 12시부터 선착순 200명까지 햄 토스트를 무료로 준다는 광고를, 아침부터 나는 눈여겨보았었다. 상가 앞엔 벌써 공짜 토스트를 먹으려는 사람들의 줄이 뱀처럼 길게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그 줄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이 아이들이었다. 이미 줄이 꽉 차 있어서, 나는 줄에 서야 할 지, 말아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은 채, 줄에 섰다 나갔다를 반복하였다. 그 사이에 우리 반 성환이와 인호가, 노릇하고 두툼한..
2009.07.05 -
5학년의 첫 종소리
2009.03.02 월요일 내가 처음 교실에 들어가니 뜻밖에 교실 안이 어두웠다. 그 이유는 창밖에 바로 산이 있어 햇빛이 들지 않아서였다. 게다가 새 교실은 작년에 미술실이었던 자리라서 바닥이 차가운 돌 바닥이었다. 5학년 첫날 아침 교실은 으스스했다. 나는 가운데 자리 셋째 줄에 앉아, 책상 위를 손가락으로 투둑둑 투둑둑 피아노 치는 시늉을 하며 선생님을 기다렸다. 갑자기 '드드드들~' 문이 열리더니, 라면처럼 머리가 꼬불꼬불하고 황금색 안경을 낀, 조금 늙어보이는 여선생님이 들어오셨다. 나는 순간적으로 엇~ 하고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려고 하는데, 교실을 휘둘러보고는 바로 나가셨다. 몇 분 뒤, 조금 전보다 훨씬 젊은 여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이번에는 나가지 않고 교탁 앞에 한참을 서 계셨다. 아직 교..
2009.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