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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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공항에서
2008.09.20 토요일 오후 6시, 우리 가족은 김포공항 출구에서 큰삼촌 가족을 기다렸다. 큰삼촌과 외숙모, 그리고 조카 진우는 제주도에서 5시 비행기를 탄다고 했다. 큰삼촌 가족은 제주도에 사셔서 자주 뵙지를 못한다. 하나밖에 없는 외사촌 동생 진우는 올해 5살인데, 돌잔치 때 보고 나서 4년 만에 만나는 거라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했다. 나는 비행기에서 내린 사람들이 걸어나오는 문 앞 기둥에 기대어서, 뒷짐을 지고 몸을 앞뒤로 흔들며 기다렸다. 영우는 사람들이 나오는 자동문 안으로 뛰어들어 갔다가 경비 아저씨에게 불려 나왔다. 나도 가까이 가서 유리문에 코를 대었다가 역시 아저씨에게 뒤로 물러나란 소리를 들었다. 도착 예정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삼촌 가족의 모습이 보이질 않자, 엄마는 비가 와서 ..
2008.09.25 -
복도 청소
2008.08.22 금요일 며칠 뒤 개학을 앞두고, 오늘은 우리 반이 학교에 청소하러 가는 날이다. 나는 오랜만에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맘이 들떠서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우렁차게 외치고 집을 나섰다. 밖에는 나무젓가락처럼 길고 굵은 빗줄기가 '타닥타닥' 땅을 후려치듯 내리고 있었고, 아직 세상은 어둠 속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나는 준비한 우산을 펼쳐서, 파란 우산 지붕을 머리 위에 이고 힘차게 다리를 쫙쫙 벌려 걸었다. 학교 가는 길엔 아무도 없었고, 정문 앞에 다다르니, 8시 30분에 정문 앞에서 만나기로 한 경훈이가 아직 나와 있지 않았다. 밤새 내린 비가 아침까지 그치지 않아 세상은 물에 잠긴 듯, 온통 축축하고 싸늘했다. 하늘은 퀘퀘한 담배 연기 색깔이었고, 가끔..
2008.08.26 -
2007.09.19 고립된 학교
2007.09.19 수요일 1, 2교시에 청소년 수련관에서 내일 있을 학교 축제의 총연습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오는데, 구름이 잔뜩 낀 우중충한 하늘에서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침 학교에 거의 다다른 우리 3학년 4반은 황급히 학교 안으로 피신하듯 뛰어들었다. 그런데 그때부터 오기 시작한 비가 급식 시간 끝나고 수업 시간이 끝나도 계속 소떼가 밀려오듯 퍼붓는 것이었다. 선생님께서 급식 시간부터 "우산을 안가져 온 사람은 집에 전화 하세요!" 하여서 공중 전화가 놓여있는 1층 후문과 별관 앞 복도는 전화하러 몰려 든 아이들로 넘쳐났다. 바깥에는 비가 "타다다닥!" 총을 쏘듯이 오고 있었다. 줄을 선 아이들은 다리를 떨기도 하고 비 오는 걸 보면서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2007.09.19 -
2007.08.07 생일 파티
2007.08.07 친구들이 오나 궁금해서 엘리베이터 앞으로 마중을 나갔더니, 마침 "땡" 하고 문이 열리며 진정우, 김서영, 김준영이 우산과 포장된 선물을 들고 나타났다. 나는 식탁에 차린 음식이 식을까 봐 부랴부랴 친구들을 집 안으로 안내하였다. 식탁에 자리를 잡고 내 생일을 축하해주러 온 친구들의 모습을 보니 고맙고 뿌듯했다. 친구들은 굶고 온 아이들마냥 치킨이며 떡볶이며 초밥, 슈크림 빵, 과일들을 게눈 감추듯 먹어 치웠다. 나는 친구들 많이 먹으라고 일부러 천천히 조금만 먹었다. 드디어 케잌을 자르는 순간이 왔다. 친구들은 신이 나서 생일 축하 노래를 목청껏 불렀고, 엄마가 한 명씩 돌아가면서 소감도 물어보셨다. 나는 너무 행복해서 내 몸이 하늘로 부웅 날아 오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금까지 가..
2007.08.07 -
2007.05.24 비 오는 날
2007.05.24 목요일 오후 2시 쯤 점심을 먹으러 외출을 나갔을 때 심한 비가 쏟아졌다. 다른 사람들은 비가 오든 말든 상관 없다는 듯이 말없이 걸어갔지만, 나와 영우는 "이건 적군의 빗방울 우뢰탄이야. 이걸 맞으면 감기 바이러스 감염되니 우산 방어막으로 몸을 보호하도록! 영우 군!", "네! 대장님!" 하고 놀았다. 우리들은 비가 싫은 점도 있었지만, 그 때는 비가 우리에겐 더없이 좋은 놀이 친구였다. 우리는 일부러 빗물이 많이 고인 곳을 첨벙첨벙 밟고 다녔고, 뛰어 넘었고, 풀숲가에 달팽이가 있나 살펴 보느라 눈이 빠질 정도였다. 우리가 발목까지 엄청 젖어버리자, 엄마도 포기한 듯 우산을 쓰고 걸으셨다. 그러더니 엄마도 우산으로 빗방울을 튕겨내며 장난을 치셨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 나온 뒤에도 ..
2007.05.24 -
2007.03.28 억울한 기분
2007.03.28 수요일 영어 특강이 끝나고 집에 가려는데 비가 오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황사로 날이 어둡고 꿉꿉하더니 번개가 치고 천둥이 치면서 쏟아진 비였다. 그러나 나는 여유있는 마음으로 '음, 이럴줄 알고 우산을 준비해 왔지!' 하면서 신발 주머니를 뒤졌는데 거짓말처럼 아침에 넣어 온 우산이 없어진 것이었다. 나는 너무 황당해서 어쩔줄 모르고 쩔쩔매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빗속으로 몸을 던졌다. 신발 주머니를 머리에 이고 뛰는데 비가 더 거세졌고, 비를 너무 많이 맞아 온 몸이 다 아프고 속이 울렁거렸다. 급한 김에 가까운 청소년 수련관에 들러 비를 피해 볼까 생각도 하였지만 문득 선생님께서 청소년 수련관에 불량스러운 형아들이 있으니 혼자서 가지 말라고 알림장에 써 주셨던 기억..
2007.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