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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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끝이 시큼한 홍어의 맛
2011.04.16 토요일 컹~ 킁~! 콧속으로 병원의 소독약과 식초를 섞은듯한 미묘한 냄새가 전해져 왔다. 꼭 어릴 때 숨을 헐떡거리면서 심하게 울면 코끝에서 그런 냄새가 났던 것 같은데 말이다. 계속 맡고 있자니 머리가 조금 띵해져서, 나는 내콧가에 젓가락으로 집어 가져갔던 빨간색과 검은색이 섞인 홍어라는 살덩이를 내려놓았다. 오늘은 우리 외가가 오랜만에 다 모인 경축스러운 날이었다. 왜냐하면, 오늘이 바로 할머니께서 70번째 맞이하는 생신이기 때문이다. 8년 전, 할아버지의 칠순 때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해서, 엄마, 큰삼촌, 작은삼촌은 항상 미안하게 생각하셨나 보다. 처음에는 뷔페 식당 같은 데서 잔치를 하려다가, 다시 계획이 바뀌어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하려고 했다가, 할머니 취향에 맞지 않는 것 ..
2011.04.20 -
토란국
2008.09.14 일요일 우리는 차가 밀려 점심 시간을 훨씬 넘겨 외가댁에 도착했다. 나는 외가댁에 도착하기 전부터 토란국이 먹고 싶어 입에 침이 고였다. 엄마가 할머니께서 토란국을 끓여놓고, 기다리신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토란국을 먹어본 적이 없었기에 어떤 맛일까 궁금해졌다. 이름이 탱탱한 공 같은 느낌이 나는 걸 보니, 혹시 살구처럼 아삭아삭한 열매 맛이 날까? 외가댁 식탁에 앉아 할머니께서 부랴부랴 내주신 토란국을 보고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고기와 무, 다시마 국물에 잠겨 있는 뿌연 토란은 물에 펄펄 끓여서 퍼진 마늘처럼 보였다. 머뭇거리는 나에게 엄마가 "이게 토란이야, 먹어 봐!" 하셨다. 나는 젓가락 두 개로 토란을 쿡 찌르고, 크레인으로 바위를 들어 올리듯이, 국물 속에서 토..
2008.09.16 -
명필
2008.02.09 토요일 친가에서 돌아와 설 연휴 마지막으로 외가에 들렀다. 우리가 가자마자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께서 반갑게 맞아주셨다. 우리는 막내 삼촌에게 받은 시계 이야기도 하고, 저녁으로 할머니가 직접 키운 채소를 뽑아 비빔밥도 해먹고, 식혜도 먹었다. 그때, 할아버지께서 방에 들어가 어떤 종이 꾸러미를 가지고 나오셨다. 그리고 나와 영우에게 그걸 나누어주셨다. 그것은 코팅지와 한지였다. 먼저 코팅지부터 읽어보았다. 거기에는 4학년이 되는 걸 축하한다는 말과, 격려하는 말, 그리고 미래에 내가 대학교 들어갈 때, 같이 손을 잡고 자랑스럽게 걸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할아버지의 희망사항이 촘촘히 적혀 있었다. 그리고 이런 조언이 있었다. 1. 이제 4학년 고학년이 되었으니, 실력과 지식을 1등에..
2008.02.10 -
2007.09.26 외할아버지
2007.09.26 수요일 우리는 배 한 상자와 스팸 한 상자를 가지고 외가댁으로 향했다. 할머니 집으로 가는 길이 가벼워서, 끔찍하게 차가 막혔던 어제 일이 꿈만 같았다. 대문에 들어섰을 때 할머니 풀밭의 식물들이 모두 다 전보다 푸릇푸릇하게 일어서서 우리를 맞아주었다. 방 문이 열려 있었고 그 안에서 할아버지가 웃고 계셨다. 너무 심하게 웃으셔서 볼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헐렁해 보이셨다. 내가 인사를 드리니까 할아버지는 계속 하회탈처럼 웃으시며 "오야, 오야." 하셨다. 이제 할아버지는 아파 보이지 않았고, 행복해서 얼이 약간 빠져 보이셨다. 그리고 그 행복의 원인인 할머니가 나오셔서 "아이고, 우리 상우, 영우 왔네!" 하고 명랑하게 외치셨다. 할머니는 노랑색과 주황색이 구불구불 섞인 그물같은 옷을..
2007.09.26 -
2007.02.03 외가 가는 길
2007.02.03 토요일 개학을 앞두고 오랜만에 우리 가족은 버스를 타고 외할아버지 댁에 놀러 갔다. 버스를 타고 가 본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버스 창이 커서 우리 차를 타고 갈 때와는 전혀 다른 풍경들을 볼 수 있었다. 복잡하고 어지러운 서울 시내를 어리둥절해 구경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서울은 수도라서 더 발전되 있을줄 알았는데 더 시설이 낡은 것 같애. '그래서 할머니 집 가는 길이 조금 더 옛날 시대로 들어 가는 것 같았다. 버스에서 내려 오래된 육교도 건넜다. 삐걱거리는 육교를 건너니 기분이 묘했고 빨리 할머니 집으로 뛰어 들어 가고 싶었다. 블로거뉴스에서 이 포스트를 추천해주세요. http://bloggernews.media.daum.net/news/312982
2007.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