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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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를 헤치며
2008.10.09 목요일 오늘 아침은 안개 때문에 숨이 막혔다. 아파트 입구를 벗어나 곧게 뻗은 통학 길을 따라 걷는데, 차가 다니는 길을 끼고 오른쪽에 마주한 아파트 3,4단지가 아예 보이지 않았다. 눈을 뜨고 있어도 답답했다. 안개 괴물이 세상을 집어삼킨 건 아닐까? 자세히 보니 아파트 아랫부분은 조금 보였지만, 안개가 많이 낀 아파트 위쪽은, 뿌연 구름이 걸려 버린 것처럼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컴퓨터 게임에서 본 하늘성 (제9의 사도 바칼이, 하늘 세상을 지배하려고, 바다 마을에서 계단을 이어서 하늘까지 쌓아올린 탑) 같았다. 사방을 둘러싼 안개속에서 학교 가는 아이들의 소리가 두런두런 들려왔다. "와~ 안개 정말 짙다! 이거 천재지변 아니야?" 바로 코앞에 아이는 보였지만, 멀리 앞서가는..
2008.10.10 -
벚꽃입니다!
2008.04.07 월요일 간밤에 나는 악몽을 꾸었다. 그리고는 아침에 깨어나서 "휴~ 살아있다는 게 정말 다행이야!"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오늘따라 엄마의 잔소리도 왠지 정답게 들렸다. "상우야, 입에 묻은 밥풀 뗘야지! 아구, 그건 영우 신발이잖아! 눈은 어따 둬?" 하고 외치는 엄마에게, 나는 다른 때보다 더 능글맞은 웃음을 보이며 "아이~ 해도 쨍한데 좀 봐줘요!" 하며 여유를 부렸다. 아파트 복도를 지날 때, 창가에 비치는 햇살이 이제부터 벌어질 뭔가를 알리듯, 눈부시게 파고들어 왔다. 공원 트랙을 따라 학교 머리가 보이는 언덕에 올라서니, 진짜 뭔가 벌어졌다. 지난 주말 못 본 사이 거짓말처럼 도롯가에 벚꽃이 일제히 만발했기 때문이다. 연분홍 구름처럼 복실복실 탐스러운 벚꽃 나무들이 기..
2008.04.08 -
구사일생
2008.01.21 월요일 피아노 학원 수업을 마치고, 선생님께서 잘했다고 주신 젤리를 냠냠 먹으며 돌아올 때, 공원에 쌓인 눈이 나뭇가지로 새어들어 오는 햇살을 받으며 짠 녹고 있었다. 그러자 공원 길 전체가 이제 막 녹기 시작한 거대한 얼음 덩어리처럼 꿈틀거리는 것 같았고 무지 미끄러웠다. 나는 문득, 지금은 방학이라 한동안 가보지 않았지만, 학교 다닐 때 우석이랑 잘 다녔던 우리만의 지름길인 가파른 언덕 위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언덕은 풀이 많고 몹시 경사가 험해서, 한번 발을 내딛으면 중력의 작용 때문에 높은 곳에서 아래로 쉬지 않고 굴러 떨어지는 사과처럼, 단숨에 와다다다 멈추지 않고 아래로 뛰어내려 와, 우리 집과 우석이네로 갈라지는 길 위에 떨어지게 된다. 언덕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하..
2008.01.22 -
2007.10.27 말과 함께 달려요
2007.10.27 토요일 원당 서삼릉과 종마 목장 입구는 형제처럼 나란히 붙어있었다. 서삼릉 입구는 한산했고, 종마장 입구는 사람들로 바글바글 넘쳐났다. 나는 여기까지 사람들에게 치이면서 힘들게 걸어왔기에 또 사람들로 북적대는 종마장 입구를 보자 징그러워져서 서삼릉으로 들어가자고 했다. 그런데 아빠 엄마는 종마장이 더 좋다며 그리로 들어가버렸다. 하지만 나는 곧 종마장이 입장료를 받지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사람들 그늘을 따라다니며 힘겹게 걸어오르다 커다란 단풍 나무가 그늘을 드리워주는 벤치에 앉아서 좀 쉬고 나니 힘이 돌아왔다. 나는 영우랑 땅 바닥에 주저앉아 떨어진 단풍 나무 가지와 돌을 줏어 놀다가 "말을 보러 가자! 저기 백마도 있어!" 하고는 앞장 서 뛰었다. 울타리를 따라 언..
2007.10.28 -
2007.07.20 숲 체험
2007.07.20 금요일 오늘 1교시부터 지도 공원으로 숲 체험을 나갔다. 우리 반은 4 조로 나뉘어 체험을 했다. 1조에 속한 나는 공원을 들어서면서부터 마음이 설레이기 시작했다. 매일 지나치는 이 길이 오늘은 마치 아마존 정글이라도 되는 것처럼 스릴있게 느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미 아파트와 가까운 언덕에 있는 정자에 도착하여 우리는 모여 앉았다. 그러자 숲 체험을 시켜주시는 보조 선생님이 우리가 숲 체험을 하면서 공부할 내용이 적혀 있는 종이를 나누어 주셨다. 그러고는 아이들을 차례차례 불러서 종이에 적혀 있는 것을 읽게 하셨다. 그 종이에는 1번부터 6번까지 각기 다른 내용으로 적혀 있었고 많은 지식들이 적혀 있었다. 숲은 한 마디로 보물 창고였다. 공기를 생산하고, 공기를 깨끗하게 하고, ..
2007.07.20 -
2007.04.02 벚꽃
2007.04.02 월요일 아침 학교 가는 길, 아직은 쌀쌀하지만 날씨는 초롱초롱 맑았다. 우리 학교가 보이기 시작하는 언덕 길에 벚꽃 나무들이 한 줄로 늘어서 있었다. 오늘따라 동그란 별같은 벚꽃이 유난히 눈에 잘 들어왔다. 언제 이렇게 꽃을 피웠지? 연분홍 벚꽃 잎들이 나무 밑에 촘촘히 떨어졌다가 어떤 거는 바람을 타고 저 쪽 나무로 날아갔다. 아직 벚꽃이 안 핀 나무도 있었다. 하지만 꽃봉오리가 제법 크게 핀 것들이 있었는데 너무 탐스러워서 먹고 싶었다. 어떤 엄마가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벚꽃 나무 길을 천천히 걸어 갔다. 나는 벚꽃이 눈에 잠길 정도로 벚꽃의 아름다움에 빠져서 쳐다보고 있는데, 누군가 지나가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지존, 벚꽃 욜라 많이 폈네! 벚꽃 죽어라!" 이런 끔찍한..
2007.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