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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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를 헤치며
2008.10.09 목요일 오늘 아침은 안개 때문에 숨이 막혔다. 아파트 입구를 벗어나 곧게 뻗은 통학 길을 따라 걷는데, 차가 다니는 길을 끼고 오른쪽에 마주한 아파트 3,4단지가 아예 보이지 않았다. 눈을 뜨고 있어도 답답했다. 안개 괴물이 세상을 집어삼킨 건 아닐까? 자세히 보니 아파트 아랫부분은 조금 보였지만, 안개가 많이 낀 아파트 위쪽은, 뿌연 구름이 걸려 버린 것처럼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컴퓨터 게임에서 본 하늘성 (제9의 사도 바칼이, 하늘 세상을 지배하려고, 바다 마을에서 계단을 이어서 하늘까지 쌓아올린 탑) 같았다. 사방을 둘러싼 안개속에서 학교 가는 아이들의 소리가 두런두런 들려왔다. "와~ 안개 정말 짙다! 이거 천재지변 아니야?" 바로 코앞에 아이는 보였지만, 멀리 앞서가는..
2008.10.10 -
애기 동물원
2008.06.14 토요일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포천에 있는 식물원으로 소풍을 갔다. 식물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입장권에 그려진 약도를 보고 애기 동물원이라는 곳을 찾아갔다. 나는 동물원이라고 해서 여러 종류의 동물들이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토끼들만 있는 아주 작은 동물원이었다. 처음엔 조금 실망하였지만, 나보다 어려보이는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철창 울타리 사이로 토끼들에게 풀을 넣어주는 것을 보고, 나랑 영우도 질세라 뛰어들어 자리를 잡고, 풀을 뜯어 토끼들에게 넣어주었다. 어떤 토끼들은, 세 마리가 한꺼번에 울타리에 몸을 딱 붙이고 입을 동그랗게 오므려 암냠냠냠 받아먹었는데, 난 그걸 보고 얼마나 귀엽든지 마음이 녹아내리는 줄 알았다. 이 애기 동물원에서 제일 몸집이 큰 갈색 토끼는, 먹이를 ..
2008.06.16 -
얼음 땡
2007.11.23 금요일 급식을 다 먹고 나서 복도를 돌아다니고 있을 때, 희지가 갑자기 나타나서 "상우야, 얼음 땡 놀이하자!" 그래서 "음, 좋아, 그럼 우석이도 같이 하자!" 했다. 우리는 비를 피해 본관과 별관을 이어주는 통로를 찾아갔다. 그런데 이미 그 통로에는 5,6학년 형들이 모여 잡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눈치가 보여 다른 곳으로 갈까 생각했지만 희지가 용감하게 끼어들어 자리를 잡았다. 내가 먼저 술래다. 우석이는 쉽게 도망가지 않고 한 곳에 서서, 팔짱을 끼고 몸을 건들건들 흔들며 나 잡아봐란 듯이 여유를 부렸다. 내가 달려가 바로 코앞까지 손을 뻗었을 때, 우석이가 "얼음!"하고 외쳤다. 희지는 형들이 잡기 놀이 하는 사이를 너구리처럼 샥샥샥샥 빠져나가며 열심히 도망을 다녔다. 빠른 ..
2007.11.23 -
눈 온 날
2007.11.21 수요일 어제 아침 학교에 가려고 집을 나섰는데 엄마가 뒤에서 "상우야, 어젯밤에 첫눈이 왔어! 공원이 하얘!"라고 외치셨었다. 나는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와아아아!" 소리 지르며 뛰어나갔었다. 오늘 아침에도 학교에 가려고 옷을 입고 있는데 엄마가 베란다 창문을 열며 외치셨다. "상우야, 오늘은 어제보다 더 많이 쌓였어. 어제처럼 눈이 온 듯 만 듯 어정쩡하게 쌓여 있지 않고 온 세상이 다 눈밭이야!" 나는 또 깜짝 놀라 얼른 베란다로 가서 "와아아아!" 하고 소리쳤다. 나는 내 모습이 꼭 영화에서 같은 장면을 두 번 찍는 것 같이 느껴졌다. 놀랍게도 우리 동네는 하얀 카페트 같은 흰 눈으로 깨끗하게 덮여있었다. 마치 2년 전에 보았던 영화 에 나오는 나니아 세상 같았다. 나니아는 ..
2007.11.22 -
2007.09.22 친할아버지
2007.09.22 토요일 우리가 대구에 도착했을 때는 비가 부슬부슬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맨처음 벨을 아빠가 누르니까 집 안에서 할머니가 "방앗간 아저씨, 벌써 왔슈?" 하셨다. 아빠가 그 말을 듣고 급하게 "아니요, 상우네가 왔습니다!" 라고 하셨다. 안에서는 "상우야?" 하는 할머니의 놀란 목소리가 들렸고, 잠시 뒤 "끼이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할아버지는 우리를 기다리시느라 양복까지 입고 계셨다.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할아버지 댁 마루에 모여 할아버지, 할머니께 큰 절을 드렸다. 할아버지는 나를 안아주시려다가 "아이쿠, 이젠 할아버지가 상우를 안는 게 아니라 상우가 할아버지를 안아주어야겠구먼!" 하셨다. 처음에 할아버지 얼굴은 항상 그랬듯이 인조 인간처럼 빳빳하고 엄숙하셨는데, 오..
2007.09.22 -
2007.01.17 로망스
2007.01.17 수요일 오늘 따라 내 피아노 발표곡인 `로망스`가 물결 흐르듯 잘 쳐졌다. 피아노 학원에서 다른 피아노 치는 사람들이 요란하게 치는 중에도 내 로망스만은 엉키지 않고 잘 쳐졌다. 어떤 부분은 잔 물결이 일어나는 것 같이 쳐지고, 어떤 부분은 해일이 일어나는 것 같이 강하게 쳐졌다. 내가 오래 연습을 해서 아마도 로망스가 내 손에 배었나 보다. 인터넷에 공유된 로망스 피아노 연주 모음 출처: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1979360 출처: http://www.youtube.com/watch?v=NjYmRe0QFOk 출처: http://youtube.com/watch?v=fn4nAIXr4kQ 출처에 트랙백이라도 남기고 싶은데..., ..
2007.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