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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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꼭대기 위에 봉사활동
2013.06.27 목요일 한걸음 한걸음 걸을 때마다 다리에서 후루룩~ 힘이 빠져나가고, 온몸과 머리에서는 '힘들다, 힘들어!' 하는 말만 맴도는데, 내 발은 기계적으로 한걸음 한걸음 산 정상을 향해 내딛는다. 오늘 우리 학교가 봉사활동을 하러 인왕산 꼭대기를 향해 행군하는 중이다. 머리 위 뙤약볕은 내 몸을 녹여버릴 듯이 이글거리고 있다. 몸에서는 뜨거운 물에서 막 빼낸 빨래를 쫙~하고 짜는 것처럼 땀이 샘솟는다. 몸은 땀 범벅이 되어 미끄적흐느적거리면서 한걸음 내딛는 것도 힘겨울 정도로 체력이 고갈되고 있다. '이게 뭔 봉사활동이야?'하는 아이들의 불평 소리가 산을 메운다. 나는 처음엔 안간힘을 써서 선두에 나섰는데 체력이 좋지 않은 편이라, 어느새 같이 산을 오르던 아이들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
2013.06.28 -
제주도의 하얀말
2013.05.13 월요일 수학여행 첫날 점심을 먹고난 뒤, 제주도 산기슭에 올라 승마체험을 하였다. 내가 탄 말은 몸이 하얗고 엉덩이에 갈색 반점이 박힌 말이었다. 제주도의 말은 다른 곳의 말보다 작다고 들었는데, 직접 말에 올라타 보니 어린 시절 아빠 어깨에 무등을 탈 때 만큼 높이 느껴졌다. 말은 생각보다 키가 컸고, 말과 땅 사이의 거리도 생각보다 높았다. 종아리부터 엉덩이까지 꿈틀거리는 말의 체온이 전해져서, 차나 버스 같은 이동 수단과는 달리 살아있다는 느낌이 온몸에 강하게 퍼졌다. 말이 한걸음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온몸이 위아래로 흔들렸고, 특히 헤드셋을 끼고 비트감이 강한 음악을 감상하며 고개를 흔드는 사람처럼 말은 머리를 계속 위아래로 움직였다. '뚜부닥, 뚜부~' 소리가 말 발이 땅과 ..
2013.05.25 -
하수구 물세례를 맞은 날
2011.05.20 금요일 지금 내 몸에서는 하수구의 폐수 냄새가 나고, 온몸이 찝찝하도록 꼬질꼬질 더러운 똥물이 묻어 있다. 게다가 하늘에서는 "투 툭, 투 톡~!" 비까지 내리지만, 신기하게도 전혀 비참한 기분이 안 든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필립이와 지홍이와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도롯가에 하수구 공사를 했는지, 하수구 뚜껑이 열려 있었다. 하수구 안에서 나온 걸로 보이는 형형색색의 물질과 비가 뒤섞여, 인도와 차도 사이에 신기한 물감 같은 액체가 엄청 고여 있었고 비릿한 냄새가 났다. 나와 친구들은 호기심이 들어 하수구 앞에 가까이 가 보았다. 구멍이 뚫린 하수구는 안까지 훤히 들여다보였는데, 구더기 같은 벌레들이 꾸물꾸물 거리고 있었다. 필립이는 "상우야! 이거 되게 불쾌하다! 빨리 가자!" 하..
2011.05.24 -
꽉 잡아, 출발!
2011.02.12 토요일 오늘은 강화도에 있는 옥토끼 우주센터를 취재하기 위해, 큰마음 먹고 이른 아침부터 서둘렀다. 한적한 시골 길에 과연 우주센터가 있을까? 궁금했는데, 거대한 우주 발사대 모양의 건물을 보고 나는 앗! 여기다! 할 만큼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나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거대한 놀이공원에 온 듯이 우주 체험을 하고, 재미있게 취재하였다. 취재를 거의 마치고 휴게실에 들렀다. 휴게실을 통해 야외로 나가니 높고 파란 강화도의 하늘에 눈이 부셨다. 그리고 야외 공원에선 꽁꽁 언 얼음장 위에서 썰매를 타는 어린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썰매장 옆에는 튜브를 타고 언덕에서 아찔하게 내려오는 어마어마한 눈썰매장이 있었다. 여기선 입장료만으로 썰매장을 이용하게 해준다. 나는 처음에 내 눈을..
2011.02.14 -
여름 밤 산책
2010.07.16 금요일 밤 9시, 엄마, 아빠는 갑자기 나갈 준비를 하시며 "엄마, 아빠 산책간다!" 말씀하셨다. 나와 영우도 얼떨결에 축구공을 가지고 따라나섰는데, 아빠는 신경이 쓰여서 산책을 못하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축구공을 놀이터 옆 풀숲에 묻어두고 본격적으로 밤 산책을 시작하였다. 낮에는 느낄 수 없었던 풀의 향기가 밤의 어둠과 고요에 떠밀려왔다. 밤 공기는 살짝 으스스 추웠다. 나는 소매가 없는 옷을 입어서 더 춥게 느껴졌다. 나는 달렸다. 빠르지는 않지만, 천천히 '흠하~ 흐음 하아~' 숨을 쉬면서 규칙적으로 팔을 저으며 달리니, 속도는 느려도 오랫동안 지치지 않고 달릴 수 있었다. 한참 달리고 잠시 멈춰 서서 뒤를 돌아다보았다. 이미 아파트 단지는 멀어져 있었고, 가족들은 한참 뒤에 따..
2010.07.17 -
찬솔아, 미안해!
2009.08.05 수요일 해가 끓는 듯한 오후, 영우와 함께 학교 도서관에서 대출했던 책을 반납하고, 다시 새책을 빌려나오는 길에, 배가 출출해서 불타는 토스트 가게에 들렀다. 토스트를 한 개씩 먹고 막 나가려는 참에, 가게를 먼저 나간 영우가 밖에서 손뼉을 치면서, 누군가에게 엉덩이를 샐록샐록 흔들고 있었다. 그리고 카랑카랑 찢어지는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나는 서둘러 가게에서 나와 무슨 일인가 두리번거렸다. 그랬더니 가게 앞에는 우리 반 친구 찬솔이가 있었다. 자전거를 탄 찬솔이는, 이제 바로 우리 앞에 날렵하게 자전거를 세우는 중이었다. 운동을 잘하는 근육질의 찬솔이는, 자전거를 탄 모습이 오토바이를 탄 것처럼 늠름해 보였고, 말을 탄 사람처럼 굳세 보였다. "상우야, 마침 너희 집에 다녀오는 길..
2009.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