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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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타기
2009.02.12 목요일 영우와 피아노 학원 차를 기다리는 동안, 놀이터 나무에 올라가 보았다. 그것은 굵은 나무를 원기둥 모양으로 가공해서 놀이터 안에 말뚝처럼 박아놓고, 몸통 여기저기에 도끼로 찍은 듯한 흠을 만들어, 그것을 잡거나 밟고 올라갈 수 있게 만든 거대한 놀잇감이었다. 나무의 감촉은 매끄러운 돌 같았다. 나는 먼저 왼발을 제일 낮은 틈에 딛고, 조금 더 높은 틈에 오른발을 디뎠다. 일단 그렇게 몇 번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해보았다. 그러자 요령이 붙었다. 나무 둥치를 안고 허리와, 등, 어깨 순서로, 뱀처럼 양쪽으로 번갈아 흔들며 올라가니, 발을 딛기가 더 쉬웠다. 정말로 새 알을 훔쳐 먹으려고 나무 위를 올라가는 뱀이 된 기분으로, 나는 신이 나서 어깨춤을 추듯이 더 심하게 몸을 흔들며 ..
2009.02.13 -
놀이터 묘사하기
2008.11.10 월요일 402동 앞에는 아담한 놀이터가 하나 있다. 놀이터는 동그란 원모양이고, 놀이터 안에는 커다란 수상가옥 모양의 놀이 시설이 우뚝 서 있다. 놀이터 안을 꽉 메우는 이 놀이 시설은, 정글에 지은 집처럼 나무 기둥과 나무판자를 덧대어서 아주 재밌게 만들었다. 놀이시설 왼쪽에는 암벽 등반 놀이를 할 수 있도록 굵은 나무판을 비스듬히 기울여 세워놓았고, 그걸 지지대로 하여 굵고 튼튼한 나무 기둥 대여섯 개가 하늘을 찌를 듯이 위로 쭉쭉 뻗어 있다. 오른쪽에도 커다란 집 모양의 놀이 시설이 있는데, 왼쪽의 나무 기둥과 밧줄로 구름다리처럼 이어져 있다. 여기에도 역시 암벽 등반 놀이를 할 수 있는 굵은 나무판이 더 경사가 가파르고 높게 세워져 있다. 밑에서 보면 높은 골짜기 같다. 그리고..
2008.11.11 -
재미있는 과학 시간
2008.08.28 목요일 개학한 지 3일째, 모든 것이 자리를 잡고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다. 선생님은 여전히 활기차게 수업을 이끄시고, 친구들은 변한 듯 안 변한 듯 한교실에 모였다.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온 것이 기뻐서 살 맛이 난다. 특히 수업 시간이 되면 태어나 처음 배우는 아이처럼 호기심이 넘치고 가슴이 두근거린다. 4교시 과학 시간, 선생님께서 텔레비전 화면으로에 관한 프로를 보여주셨다. 첫 장면부터 바다에 사는 몸이 말랑말랑하고 영화 에 나오는 로봇 이브처럼 생긴 생물이 유유히 바다 밑을 헤엄쳐다녔다. 물결을 타고 샤랄라 헤엄치는 그 뽀얀 생물은 마치 천사처럼 평화로워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화면에 '이 생물이 과연 악마같이 변할 수 있을까?'라는 문구가 떠오르자마자, 이 생물은 급하게 아래..
2008.08.29 -
인라인 스케이트 코치는 어려워!
2008.02.20 수요일 피아노 학원 마치고 영우와 함께 우석이네로 갔다. 우석이 남매가 며칠 전에 산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공원에서 연습한다는 것이다. 아직 인라인 스케이트가 익숙하지 않은 우석이와 서진이는 서로 손을 잡고 절뚝거리며 나타났다. 서진이는 넘어질까 봐 한쪽 손에 죽도를 짚고 있었다. 영우와 나는 우석이 옆에서 걸으며 우석이가 비틀비틀 넘어지려 할 때마다 팔을 잡아주며 공원 트랙까지 함께 걸어갔다. 그런데 공원 트랙까지 가는 동안 우석이가 자꾸 험한 길을 고집하여 애를 먹었다. 우석이는 벌써 인라인 스케이트 선수가 된 듯한 기분인지, 하늘로 목을 쭉 빼고 신이 나서 "와우~!" 하고 소리를 질렀지만, 옆에서 잡아주는 나는 우석이가 넘어질까 봐 가슴이 조마조마하여 따라다녔다. 공원 트랙 ..
2008.02.21 -
구사일생
2008.01.21 월요일 피아노 학원 수업을 마치고, 선생님께서 잘했다고 주신 젤리를 냠냠 먹으며 돌아올 때, 공원에 쌓인 눈이 나뭇가지로 새어들어 오는 햇살을 받으며 짠 녹고 있었다. 그러자 공원 길 전체가 이제 막 녹기 시작한 거대한 얼음 덩어리처럼 꿈틀거리는 것 같았고 무지 미끄러웠다. 나는 문득, 지금은 방학이라 한동안 가보지 않았지만, 학교 다닐 때 우석이랑 잘 다녔던 우리만의 지름길인 가파른 언덕 위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언덕은 풀이 많고 몹시 경사가 험해서, 한번 발을 내딛으면 중력의 작용 때문에 높은 곳에서 아래로 쉬지 않고 굴러 떨어지는 사과처럼, 단숨에 와다다다 멈추지 않고 아래로 뛰어내려 와, 우리 집과 우석이네로 갈라지는 길 위에 떨어지게 된다. 언덕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하..
2008.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