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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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문외과 의사의 단호함
2013.09.25 수요일 얼굴이 씨뻘개지고 머리에서부터 식은땀이 지리릭~! 전기에 감전되듯 온몸으로 흘러내렸다. 눈앞은 캄캄해지고 머리는 차갑고 어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결국 나는 안 나오는 똥을 포기하고 변기 뚜껑을 닫았다. 점심 시간이 지나서야 간신히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선생님, 오늘 아파서 학교에 못 갔는데요, 진작 전화를 드렸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그래, 상우야, 어디가 아픈데?", "저... 치질 앓고 있던 게 도졌나 봐요. 너무 아파서..." "어~ 어... 그랬구나, 그럼 내일 결석계 가지고 오너라~" 선생님의 자상하고 차분한 목소리가 내 마음을 달래주었다. 난생 처음 가 보는 항문외과 병원 문을 열자, 카운터를 지키고 있는 간호사 아주머니께서 "오늘은 의사선생님께서 멀리..
2013.09.26 -
제주도의 하얀말
2013.05.13 월요일 수학여행 첫날 점심을 먹고난 뒤, 제주도 산기슭에 올라 승마체험을 하였다. 내가 탄 말은 몸이 하얗고 엉덩이에 갈색 반점이 박힌 말이었다. 제주도의 말은 다른 곳의 말보다 작다고 들었는데, 직접 말에 올라타 보니 어린 시절 아빠 어깨에 무등을 탈 때 만큼 높이 느껴졌다. 말은 생각보다 키가 컸고, 말과 땅 사이의 거리도 생각보다 높았다. 종아리부터 엉덩이까지 꿈틀거리는 말의 체온이 전해져서, 차나 버스 같은 이동 수단과는 달리 살아있다는 느낌이 온몸에 강하게 퍼졌다. 말이 한걸음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온몸이 위아래로 흔들렸고, 특히 헤드셋을 끼고 비트감이 강한 음악을 감상하며 고개를 흔드는 사람처럼 말은 머리를 계속 위아래로 움직였다. '뚜부닥, 뚜부~' 소리가 말 발이 땅과 ..
2013.05.25 -
달콤한 우물, 두리반
2013.05.01 수요일 중간고사가 끝나 오랜만에 머리를 이발 하고, 아빠, 엄마와 함께 홍대 두리반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 두리반으로 가는 서교동 골목에는 갑자기 여우비가 내렸다. 방금 이발한 머리에 비를 뚝뚝 맞으며 걷는데, 햇볕은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어 온세상을 황금색으로 반짝반짝 비추었다. 나는 몹시 배가 고팠다. 마침 두리반 아줌마가 밖으로 나와 핸드폰 통화를 하고 계시다가, 우리가 오는 것을 보고 크게 웃으며 반가와하셨다. 두리반으로 들어가니 주방 앞에서 일하고계시던 두리반 아저씨도 크게 웃으며 반기셨다. 두리반 벽에 걸려있는 물이 빙긋이 웃고 있는 그림과 이라는 문구도 우리를 반기는 것 같았다. "상우야, 머리를 시원하게 잘랐구나~!" 아저씨는 여전히 면도를 하지 않아서 도인 같은 분위..
2013.05.01 -
영풍문고에서 터진 코피
2011.01.03 월요일 "큼, 킁~!" 갑자기 코가 간지럽고 촉촉했다. 그리고 콧물 같은 것이 조금 새어 나왔는데, 콧물보다는 더 따뜻하고 더 끈끈하지 않고 물 같았다. 나는 왼손 검지 손가락으로, 물이 새는 것 같은 왼쪽 콧구멍을 살짝 훔쳤다. 그러자 이게 웬일인가? 진한 빨간색 액체가 왼손 검지에 묻어나왔다. 그리고 이내 방울방울 눈물처럼 흐르기 시작하였다.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도대체 왜 코피가 나는 것일까?' 가장 먼저 이 생각부터 들었다. 어젯밤 새벽 3시까지, '아홉살 인생', '아르네가 남긴 것', '별을 헤아리며'라는 책을 재밌게 읽었었다. 그래서 오늘 하루는 살짝 감기 기운도 있는 듯 피곤하고 몸이 매우 무거웠다. 아, 그러고 보니 어젯밤에 책을 읽는 중에도 살짝 코피가 났었다...
2011.01.04 -
강아지를 키우고 싶은 마음
2010.09.11 토요일 나는 얼마 전에 TV에서 나온 감동적인 영화, 를 보고서 개를 키우고 싶다는 마음이 다시 솟구쳐올랐다. 그리고 내가 학교에서 읽은 책 중에 개 키우기에 관한 책이 있었는데, 그 책에는 귀여운 개와 주인과 친하게 지내며 교감을 하는 개의 사진들이 애틋하게 실려 있다. 어느덧 나는 개를 키우고 싶은 마음이 조금씩 조금씩 쌓이다가 분화구처럼 폭발하게 되었다. 음, 개를 보고 있으면 나도 기분이 좋아지고, 다른 사람들이 개와 친하게 지내고 재미있게 놀며 마음을 나누는 것을 보면, 나도 그러고 싶다. 물론 개가 짖고, 털이 많이 빠지고, 사료비에 예방 접종, 똥 누고 오줌 싸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고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털이 안 빠지고 잘 짖지 않는 종의 개도..
2010.09.14 -
5등을 한 줄다리기
2010.04.08 목요일 오늘 우리 반은 일찍부터, 6교시 합동 체육 시간에 줄다리기를 한다는 소문에 웅성거렸다. 나는 줄넘기나 힘을 많이 빼는 운동이 아닌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줄다리기가 은근히 기다려졌다. 드디어 6교시 합체 시간, 운동장에는 기다란 밧줄이 놓여 있었다. 아주 길고 내 팔뚝만 한 굵기에, 크고 튼튼한 새끼줄로 만든 밧줄이었다. 일단은 몸 풀기 운동을 하고, 선생님께서 짜신 대진표대로, 6학년 1반과 6반이 먼저 경기를 하였다. 난 청군과 백군으로 나눠서 할 줄 알았는데... "자, 준비!" 5반 선생님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리자, 모든 아이는 숨을 죽였다. "뎅~에엥~" 징소리가 웅장하게 울리고, 1반과 6반이 일제히 일어서서 줄을 잡고 잡아당겼다. 동시에 응원하는 아이들도 ..
2010.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