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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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여행을 앞두고
2014.08.06 수요일 '여행'이란 두 글자는 얼마나 오랜만에 써보는 단어인가? 언젠가부터 밖으로 나가는 것보다는 집안에 틀어박혀 있는 걸 좋아하는 나의 내향성과 어디 놀러 가기에는 부담이 되는 우리 집의 경제적인 상황 때문에, 몇 년간 여행이란 단어를 써 볼 기회가 없었다. 지난 7월 말, 친할아버지, 할머니 생신 때 대구에 내려갔다가, 생신 축하하는 자리에서 할아버지는 당장 전화로 중국행 비행기를 예약하셨다. 할아버지께서 우리 가족 네 명과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 총 여섯 가족의 북경여행을 예약 상담하는 동안 나는 그 옆에서 기분이 얼떨떨했었다. 할아버지는 우리 가족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하시는 데다 그 고민과 애증을 항상 격한 말투로 풀어내셔서 듣고 있자면 마음이 무거웠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2014.08.06 -
항문외과 의사의 단호함
2013.09.25 수요일 얼굴이 씨뻘개지고 머리에서부터 식은땀이 지리릭~! 전기에 감전되듯 온몸으로 흘러내렸다. 눈앞은 캄캄해지고 머리는 차갑고 어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결국 나는 안 나오는 똥을 포기하고 변기 뚜껑을 닫았다. 점심 시간이 지나서야 간신히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선생님, 오늘 아파서 학교에 못 갔는데요, 진작 전화를 드렸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그래, 상우야, 어디가 아픈데?", "저... 치질 앓고 있던 게 도졌나 봐요. 너무 아파서..." "어~ 어... 그랬구나, 그럼 내일 결석계 가지고 오너라~" 선생님의 자상하고 차분한 목소리가 내 마음을 달래주었다. 난생 처음 가 보는 항문외과 병원 문을 열자, 카운터를 지키고 있는 간호사 아주머니께서 "오늘은 의사선생님께서 멀리..
2013.09.26 -
꽉 잡아, 출발!
2011.02.12 토요일 오늘은 강화도에 있는 옥토끼 우주센터를 취재하기 위해, 큰마음 먹고 이른 아침부터 서둘렀다. 한적한 시골 길에 과연 우주센터가 있을까? 궁금했는데, 거대한 우주 발사대 모양의 건물을 보고 나는 앗! 여기다! 할 만큼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나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거대한 놀이공원에 온 듯이 우주 체험을 하고, 재미있게 취재하였다. 취재를 거의 마치고 휴게실에 들렀다. 휴게실을 통해 야외로 나가니 높고 파란 강화도의 하늘에 눈이 부셨다. 그리고 야외 공원에선 꽁꽁 언 얼음장 위에서 썰매를 타는 어린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썰매장 옆에는 튜브를 타고 언덕에서 아찔하게 내려오는 어마어마한 눈썰매장이 있었다. 여기선 입장료만으로 썰매장을 이용하게 해준다. 나는 처음에 내 눈을..
2011.02.14 -
찬솔이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까?
2009.11.20 금요일 1교시 수업 시작을 앞두고 주위를 한번 비잉 둘러보았는데, 찬솔이 자리가 오늘도 텅 비어 있었다. 어제 찬솔이가 결석했을 때는 '에구, 이 녀석 시험 점수 나오는 날이라 안 온 거 아냐?' 했는데, 오늘은 왜 안 왔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요즘처럼 추운 날씨에도 반바지를 입고 와서, 선생님께 제발 긴 바지 입고 다니라고 걱정을 들을 만큼 건강한 찬솔이가 어디 아픈 건 아닐까? 나는 내 짝 수빈이에게 "오늘 찬솔이, 왜 안 온 줄 아니?" 하고 물었다. 수빈이는 아무 말 안 했는데, 그때 나보다 두 칸 더 앞에 앉은 경모가 약간 찡그린 얼굴로 속삭였다. "찬솔이 할아버지, 돌아가셨어어~!" 나는 머리가 멍했다. 순간 1교시 수업 준비를 하며 평화롭게 술렁거렸던 교실 안이..
2009.11.21 -
후회 없는 시험
2008.12.06 토요일 첫째 시간, 우리 반은 어제 보았던 기말고사 시험지를 나누어 받았다. 이번 시험은 중간고사보다 난이도가 쉬운 편이라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지만, 나는 이번이 4학년 최악의 시험이 되지 않을까 초조했었다. 기말고사를 보기 전까지 나는 내 실력을 끝없이 의심하면서 마음고생을 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나누어주는 시험 대비 학습지를 풀 때마다, 번번이 점수가 엉망이었고, 점수가 척척 잘 나오는 친구들을 보면 신기하고 부러워서 한숨이 푹~ 나왔다. 특히 이번에는 내가 그렇게 좋아하던 수학이 나를 괴롭혔다. 그중에 라는 단원이 머리에 뿔이 날 정도로 힘들었다. 항상 소수점 몇째 자리까지 정확하게 계산하는 법에 재미를 붙였었는데, 갑자기 모든 수를 대충 어림해서 계산하라니, 도무지 적응할 ..
2008.12.07 -
귀신 소동
2008.01.05 토요일 어제부터 나는 지독한 감기를 앓고 있다. 그것은 잔물결처럼 시작해서 폭풍우처럼 거세졌다. 처음엔 잦은 기침이 헥켁켁 계속되다가, 시간이 갈수록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고 열이 나는 것이었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께서 코감기에 목이 심하게 부었다고 하시며 약을 처방해주셨다. 집에 와 약을 먹고 누웠는데도, 점점 열이 심해지면서 머리도 심하게 아파져 갔다. 열이 얼마나 끓어 올랐는지 가만히 있어도 온몸이 불에 덴 것처럼 화끈거렸고, 내가 만져서 손이 닿은 곳마다 불도장을 찍은 것처럼 뜨거워졌다. 나는 일어나 앉기도 힘들만큼 괴로웠지만, 이를 악물고 방안을 기어다니며 차가운 마룻바닥이나 소파 위에 몸을 문질러서 열을 식히려고 애썼다. 귀까지 먹먹하게 아파지자, 나는 덫에 걸린 호..
2008.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