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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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진 안경
2010.07.19 월요일 오늘은 유난히 더워서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났다. 학교에서 받은 묵직한 새 교과서를 가방에 한가득 메고 오는데, 몸은 무겁고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땀은 폭포수처럼 흘렀다. 꼭 숯불 가마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처럼 옷이 끈적끈적,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오늘이 초복 날이라는데, 꼭 내가 닭 대신에 고기가 되어 익는 기분이었다. 아무튼, 이 일은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더운 날에 일어난 일이었다! "잘 가, 석희야! 잘 가, 민석아!", "그래, 상우야, 잘 가!", "너도 잘 가!" 우리는 각자 집으로 가는 4단지의 끝 길에서 뿔뿔이 헤어졌다. "허억허억~" 정말로 더웠다. 사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시무시한 태양이 커다랗게 떠서, 나에게 햇빛을 내려보내 지렁이처럼 말려 죽이려..
2010.07.21 -
과학실 가는 길
2010.06.25 금요일 2교시 쉬는 시간, 교탁에 앉은 선생님과 앞줄에 앉은 경훈이가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호기심에 다가가 보았다. 그런데 경훈이가 돌아서서 나에게 "상우야, 마침 잘됐다. 너도 학습부지? 나하고 같이 가자!" 나는 짐작하였다. 바로 다음 시간이 과학 시간인데, 과학 시간에 쓸 실험도구를 가져오라는 선생님의 부탁이 있으셨던 것이다. 나는 '이번엔 무슨 실험을 할까?' 궁금해하면서 경훈이를 뚱깃뚱깃 따라나섰다. 우리 반에서 과학실로 가는 길은 꽤 멀다. 과학실은 우리 반에서 또르르르~ 계단을 두 층 내려가, 후관 복도를 가로질러서 별관 복도도 가로지르고, 또르르르~ 본관 복도 끝에 있다. 나는 계단과 복도를 미끄럼 질 치며 여행하는 것처럼 길을 나섰다. 가는 동안 경훈이가 "이번엔 전..
2010.06.26 -
하늘의 눈물
2010.05.24 월요일 지금은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있다. 엊그제 저녁부터 내리던 비가, 아직도 하늘을 깜깜하게 덮어버리고 있다. 꼭 1년 전 돌아가신 그분을 애도하듯이 말이다. 어린 손녀 딸과 함께 자전거를 타면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에 반항이라도 하듯, 개구쟁이 옆집 할아버지처럼 푸근하게 웃어주고, 나이 어린 학생에게도 진심으로 고개 숙여 인사하셨던 그분! 그분을 잃고 나서야 후회하며, 온 국민이 오늘 내리는 비처럼 펑펑 울었던 날이 바로 1년 전이다. 그날, 세상에 지진이 난 것처럼 충격적인 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셨던 그날! 내가 처음으로 아빠의 눈물을 보았던 날이었다. 아! 사실 나는 그분이 대통령이었을 땐, 너무 꼬맹이였다. 그래서 그냥 인상 좋은 대통령 아저씨로만 생각했었다. 내가..
2010.05.26 -
할머니와 동물원에 간 날 - 2탄
2010.05.02 일요일 이제 동물원에는 마지막 하루해가 뜨겁게 저물어 가고 있었다. 주홍빛으로 빛나는 해를 머리 위에 짊어지고, 우리는 이번 동물원에 클라이막스! 맹수들을 보러 갔다. 갈색 곰은 꼭 '시턴 동물기'에 나온 곰을 연상시키고, 엄청난 덩치이지만 꼭 덩치만큼이나 마음은 따뜻할 것 같았다. 온몸에 촉촉하게 젖은 땀이 햇빛에 빛나니, 꼭 야생의 곰을 보는 것처럼 신비하고 마음을 잡아끌었다. 길을 얼마나 걸었을까? 사각 철창에 표범, 치타, 재규어 같은 조금 작은 맹수들을 지나치다, 어느 순간 철창이 없어지고 큰 산같이 올록볼록한 지형이, 인도에서 멀리 떨어져서 보였다. 그리고 그곳에는 여유롭게 앉아서 낮잠을 즐기고, 어깨를 웅크리고 사나운 눈빛으로 번뜩이는 호랑이들이 보였다! 호랑이는 특이하게..
2010.05.06 -
찬솔이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까?
2009.11.20 금요일 1교시 수업 시작을 앞두고 주위를 한번 비잉 둘러보았는데, 찬솔이 자리가 오늘도 텅 비어 있었다. 어제 찬솔이가 결석했을 때는 '에구, 이 녀석 시험 점수 나오는 날이라 안 온 거 아냐?' 했는데, 오늘은 왜 안 왔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요즘처럼 추운 날씨에도 반바지를 입고 와서, 선생님께 제발 긴 바지 입고 다니라고 걱정을 들을 만큼 건강한 찬솔이가 어디 아픈 건 아닐까? 나는 내 짝 수빈이에게 "오늘 찬솔이, 왜 안 온 줄 아니?" 하고 물었다. 수빈이는 아무 말 안 했는데, 그때 나보다 두 칸 더 앞에 앉은 경모가 약간 찡그린 얼굴로 속삭였다. "찬솔이 할아버지, 돌아가셨어어~!" 나는 머리가 멍했다. 순간 1교시 수업 준비를 하며 평화롭게 술렁거렸던 교실 안이..
2009.11.21 -
벌아, 쏘지 마!
2009.09.26 토요일 우리 가족은 광릉 수목원 근처에 있는 분재 공원에서 산책했다. 막 분재로 꾸며진 비닐하우스를 구경하고 나올 무렵이었다. 코스모스가 잔뜩 피어 있는 정원에서, 돌탑을 기지 삼아 영우랑 지구 정복 놀이를 하며 뛰놀다가 엄마, 아빠를 뒤쫓아 가려는데, 갑자기 큰 벌 하나가 내 주위를 붕붕 돌다 사라졌다. 나는 순간 놀랐다가 휴~ 다행이다 생각했는데, 갑자기 내 오른쪽 목 뒷쪽이 간지러우면서 뭔가 척~ 붙는 느낌이 들었다. 순간 등골이 오싹하며 온몸이 떨렸다. 나는 뒷목에, 물컵에 맺힌 물방울 같은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돌처럼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단지 끌껍 끽~ 침을 반 정도만 삼키며, 두 눈을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굴렸다. 그리고 머릿속엔 끔찍한 기억이 ..
2009.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