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실(4)
-
예능발표회의 꽃은 줄넘기야!
2010.09.30 목요일 "야, 어떻게! 우리 차례야! 빨리빨리~!" 내 앞에 은철이는 비장하게 이 말을 남기며, 대기실에서 강당 무대로 쏜살같이 뛰쳐나갔다. 무대에서는 두 아이가 마주 보고 커다랗게 줄을 돌렸다. 나는 1초 정도 어리버리해져서 가만히 있다가 얼른 무대로 뛰어나갔다. 관객들은 볼 새가 없었다. 벌써 2번째 주자인 경래가 넘고 있었다. 나는 4번째다. 긴장감이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퍼져서, 등골에서 얼음물이 흐르는 듯한 차가움이 쫙 퍼졌다. 나는 고개를 살짝 돌려, 관객석 오른쪽 앞줄에 있던 엄마를 보았다. 그리고는 바로 고개를 돌려서 막 은철이가 돌고 나온, 거대한 도넛 모양의 줄 안으로 뛰어들고, 두 발을 왼발부터 차례로 들어 올려 줄을 넘고 줄 밖으로 뛰쳐나갔다. '첫 번째를 무사히 ..
2010.10.02 -
김포공항에서
2008.09.20 토요일 오후 6시, 우리 가족은 김포공항 출구에서 큰삼촌 가족을 기다렸다. 큰삼촌과 외숙모, 그리고 조카 진우는 제주도에서 5시 비행기를 탄다고 했다. 큰삼촌 가족은 제주도에 사셔서 자주 뵙지를 못한다. 하나밖에 없는 외사촌 동생 진우는 올해 5살인데, 돌잔치 때 보고 나서 4년 만에 만나는 거라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했다. 나는 비행기에서 내린 사람들이 걸어나오는 문 앞 기둥에 기대어서, 뒷짐을 지고 몸을 앞뒤로 흔들며 기다렸다. 영우는 사람들이 나오는 자동문 안으로 뛰어들어 갔다가 경비 아저씨에게 불려 나왔다. 나도 가까이 가서 유리문에 코를 대었다가 역시 아저씨에게 뒤로 물러나란 소리를 들었다. 도착 예정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삼촌 가족의 모습이 보이질 않자, 엄마는 비가 와서 ..
2008.09.25 -
홍역 예방 주사를 맞아요!
2008.02.27 수요일 오늘 보건소에는 3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홍역 예방 접종을 하러 온 아이들과 가족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영우도 입학을 앞두고 주사를 맞으러 접수를 하고 대기실에서 엄마와 함께 기다렸다. 나는 기다리기가 지루해서, 보건소 앞마당으로 나가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놀았다. 내가 대기실 안으로 다시 들어갔을 때는, 영우 차례가 꽤 가까워져 있었다. 나는 영우 옆에 앉아 주사는 무서워할 게 아니라, 받아들여서 몸을 건강하게 하는 거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키도 재보고 몸무게도 재보면서 차례를 기다렸다. 주사실 안에서 영우 이름이 불렸다. 동작이 빠른 영우는 이름이 불리자마자 황급히 주사실로 뛰어들어 갔다. 나도 따라 들어 갔다. 주사실은 대기..
2008.02.29 -
사법연수원에서 술래잡기
2008.01.15 화요일 우리 가족은 사법연수원 졸업생 가족 대기실을 찾아 허둥지둥 뛰어갔다. 제2교실에서 수료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막내 삼촌을 찾아보려고 애썼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교실 입구부터 사람들이 꽉 들어차 있어서, 뚫고 들어가기가 힘들었고, 어른들 키에 가려 앞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영우 손을 꽉 잡고 단단한 돌을 밀어내듯이 사람들 사이를 헤쳐나가, 고개를 자라같이 쑥 내밀고 교실 안을 둘러보았다. 졸업생들이 수료증을 받으려고 책상 앞에 대기하고 앉아 있다가, 이름이 불리면 차례대로 교탁 앞으로 나와 수료증을 받았다. 하나같이 양복을 입고 있어서 다 삼촌같이 보였다. 삼촌은 뒷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놀랍게도 우리를 먼저 알아보고 번쩍 손을 흔들어 주었다. 마치 우리를 애타게 기다..
2008.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