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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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진 바지
2011.08.20 토요일 오늘따라 왠지 교복 바지의 움직임이 자유롭고, 다리를 마음껏 벌릴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교실에서 편한 바지의 느낌을 즐기기 위해, 마이클 잭슨처럼 문워크도 흉내 내고 허벅지를 뱅뱅 돌렸다. 교복 바지는 몸에 딱 맞아서 다리의 움직임이 한정돼 있었는데, 이상하게 오늘은 그렇지가 않았다! 아마 수업이 짧은 토요일이라서 마음이 가벼워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을까? 하며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1교시는 진로 교육으로 TV에서 박태환 선수의 이야기가 주르륵 나왔다. 악재를 딛고 다시 한번 세계선수권대회 1등을 한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선수를 보다가, 잠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바지 아래쪽으로 무언가 가느다란 실 같은 것이 풀려, 삐쭉삐쭉 삐져나와 있는 것을 보았다. '어..
2011.08.23 -
보성 3호의 갈매기
2011.03.26 토요일 위이이잉~ 취이이이이~! 갑자기 일정하게 웅웅대던 엔진 소리가 몰라보게 커지고, 배가 한번 흔들렸다. 꾸웅~! 소리가 들리면서, 땅과 배를 연결하던 다리가 올라가고, 보성 3호는 바다를 향해 힘차게 출발하였다! 우리는 지금 인천 월미도에서 영종도로 가는 바다 한가운데, 시끄러운 엔진 소리를 내며 물살을 가르는 보성 3호에 타고 있다. 아직 날이 덜 풀리고 바다라서 바람은 매섭지만, 전혀 춥지 않았다. 너무 오랜만에 본 바다가 반갑고 정겨울 뿐이었다! 반가운 것이 또 하나 더 있었다. 바로 뾰쪽한 콧날, 부드럽고 하얀 피부, 길게 뻗은 팔다리로 힘차게 나는 갈매기이다! 갈매기들은 꼭 술래잡기를 하듯이, 보성 3호를 졸졸 따라다니며 승객들에게 새우깡을 얻어먹었다. 나와 영우도 갈매..
2011.03.28 -
처음으로 싸운 날
2011.03.21 월요일 안경이 나가떨어졌다. 여기가 어디인지,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도 잊을 뻔하였다. 세상이 어지럽게 흔들렸다. 다리도 풀리려고 했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쓰러지면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아이가 동정은커녕, 좋다고 달려들 걸 알기에, 땅을 밟은 두 다리에 더욱 힘을 주고 버텼다. 그리고 안경이 날아가 잘 보이지는 않지만, 주먹을 힘껏 내질렀다. 오늘 아침부터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친구 태식이가 나를 화나게 했다. 태식이가 욕을 하는 걸 보고 듣기 싫어서 하지 말라고 했더니, 계속 더러운 욕을 쓰고, 나에게 욕도 못한다고 놀리는 것이었다. 나는 슬슬 흥분하여 목소리가 떨리며 그만 하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태식이는 오히려 더 빈정대며 약을 올렸다. 학교 수업시간을 빼놓고 쉬는 시간, 급..
2011.03.23 -
순수 퀴즈를 즐겨요!
2009.11.02 월요일 6교시 실과 시간에 재미있는 퀴즈 놀이를 했다. 선생님께서 "자, 이 퀴즈는 7살, 8살 어린이들이 문제를 낸 것인데 문제를 맞추는 열쇠는, 여러분의 관점이 아니라 어린이들의 관점에서 문제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에요!"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TV 화면 하얀색 바탕에 라는 예쁜 파란색 글자가 둥~ 떠올랐다. 나는 왠지 그 글자가 마음에 들었다. "먼저 손을 들고 자기 이름을 크게 부르는 사람에게 맞출 기회를 줄게요. 개인이 얻은 점수는 그 모둠의 점수가 됩니다!" 하며 선생님이 칠판 중간에 분필로 모둠 점수판을 차례차례 똑 또 뚝 써넣으셨다. 첫 번째 문제는 '이것은 쓸 때마다 인사를 해요!'였다. "저거 뭔 줄 알겠어?", "나도 몰라~." 문제가 나가자마자 아이들은 난리가..
2009.11.05 -
벚꽃 축제가 뭐 이래?
2009.04.11 토요일 우리 가족은 아침 일찍, 지방에 있는 어떤 마을에서 열린다는 벚꽃 축제를 보러 갔다. 나는 난생처음 가보는 벚꽃 축제라서 마음이 퐁퐁 들떴다. 그런데 한적한 시골 길을 들어서니 이정표도, 벚꽃 축제를 알리는 현수막도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그래서 수시로 차를 세우고, 지나가는 아저씨, 할머니에게 벚꽃 축제 어디서 하냐고 물어보았다. 그러면 "그냥 길 따라 쭉 가면 나와유~" 하셨다. 나는 기분이 좋아서 우리를 따라오는 나무들과 넓은 밭에서 뛰어다니는 노루를 보고, 마구 마구 손을 흔들어주었다. 우리 차도 신이 나서 '부우우' 소리 내며 축제장을 향해 부드럽게 미끄러지듯이 달려갔다. 그런데 아빠가 갑자기 더럽고 작은 하천이 흐르는 곳 근처, 자갈밭에 차를 세우셨다. 나는 어리둥..
2009.04.13 -
나무 타기
2009.02.12 목요일 영우와 피아노 학원 차를 기다리는 동안, 놀이터 나무에 올라가 보았다. 그것은 굵은 나무를 원기둥 모양으로 가공해서 놀이터 안에 말뚝처럼 박아놓고, 몸통 여기저기에 도끼로 찍은 듯한 흠을 만들어, 그것을 잡거나 밟고 올라갈 수 있게 만든 거대한 놀잇감이었다. 나무의 감촉은 매끄러운 돌 같았다. 나는 먼저 왼발을 제일 낮은 틈에 딛고, 조금 더 높은 틈에 오른발을 디뎠다. 일단 그렇게 몇 번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해보았다. 그러자 요령이 붙었다. 나무 둥치를 안고 허리와, 등, 어깨 순서로, 뱀처럼 양쪽으로 번갈아 흔들며 올라가니, 발을 딛기가 더 쉬웠다. 정말로 새 알을 훔쳐 먹으려고 나무 위를 올라가는 뱀이 된 기분으로, 나는 신이 나서 어깨춤을 추듯이 더 심하게 몸을 흔들며 ..
2009.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