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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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엔 정말 눈이 오지 않을까?
2010.01.01 금요일 새해 첫날을 맞이하여, 아빠 엄마가 다니는 성서 학당에서, 같이 공부하는 부드러운 이웃 할아버지께서 저녁을 사주셨다. 우리는 꼭꼭 자리를 좁혀 함께 차를 탔는데, 꼭 추운 한밤중에 이사하는 곰돌이 가족처럼, 하얀 눈이 쌓인 어두운 길을 덜컹덜컹 밥집을 찾아 달려갔다. 달리는 차 안에서 옆에 앉으신 할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우리가 살았던 플로리다에서는 1년 내내 따뜻해서 이렇게 추운 날이 없었단다! 가장 추운 겨울이 영상 5도, 6도였는데, 그렇게만 되도 사람들이 춥다고 난리였지!" 난 할머니 말씀이 신기했다. 겨울 내내 꽁꽁 추워서, 내가 사는 세상이 온통 추위로 얼어붙은 줄만 착각하고 있다가, 우리나라의 날씨와 전혀 다른 곳이 지구 안에 있다는 게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지금 ..
2010.01.03 -
눈 내리는 점심 시간
2009.12.08 화요일 4교시 과학 시간이 끝나고, 현국이와 학교생활 이야기를 하며 교실 뒤를 나란히 어슬렁어슬렁 걷는데, 갑자기 현국이가 "눈이다~!" 하며 창문 쪽으로 푸두두닥~ 뛰어갔다. 뛰어가면서도 "눈이다!" 하는 현국이의 짧고 큰 외마디가, 벌써 내 눈을 시원하게 깨우는 것 같았다. 나도 몇 분 전부터 공기가 이상하게 움직이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는데, 이제 하늘에서 눈이 퐁야퐁야 내리고 있다. 나도 창문으로 달려가 "나도 좀 보자!" 하고 현국이를 밀어내고, 창밖을 바라보며 "후아아~!" 소리를 질렀다. 아이들은 순식간에 사탕에 개미가 꼬이듯 바글바글 창 앞으로 모여, "진짜 눈 와?", "와! 눈이다아~! 눈이야아~!" 외쳤다. 눈은 촘촘하게 짜진 그물처럼, 엄마가 나물 위에 뿌리는 깨처..
2009.12.09 -
다시 듣는 수업
2009.09.05 토요일 어제 기침을 많이 해서 수업에 빠졌기 때문에, 오늘에서야 비로소 제대로 된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수업 시작하기 바로 전, 나는 빨리 수업이 듣고 싶어 온몸이 떨렸다. 그동안 학교는 신종플루라는 녀석 때문에, 개학을 하고도 본격적인 수업을 하지 못하고,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이번 주만 잘 넘기면, 아마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을까 희망하면서 읽기 책을 쓰다듬었다. 내 주위엔 나처럼 수업에 목이 말라 눈을 반짝거리며 기다리는 애들도 보였지만, 수업이 그리 기다려지지 않는지 엎드려서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틱톡~ 두드리고, 피곤한 듯 축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며 수업준비를 하는 아이도 있었다. "자, 모두 읽기 책을 펴세요!" 오랜만에 듣는 선생님의 밝은 목소리가, 오늘 첫 수업..
2009.09.08 -
느끼한 연극
2008.11.21 금요일 1교시 말하기.듣기.쓰기 시간이었다. 교과서에 나오는 선인장 이야기를 읽고, 역할을 정하여 앞에 나가서 발표하기를 하였다. 나는 일단 눈으로 어떤 이야긴가 읽어보았다. 선생님께서 "이 이야기를 역할을 맡아, 인물에 알맞은 표정과 목소리로 잘 연기하여 보세요!" 하시며 연습할 시간을 주셨다. 다른 모둠은 약간 티걱태걱하며 역할을 정했는데, 우리 모둠은 아무렇지도 않게 나는 아빠, 유나는 엄마, 경훈이가 오빠, 정원이가 여동생을 맡겠다고 동시에 딱 정했다. 우리 모둠은 4번째로 교탁 앞에 나와 연극을 하였다. 나는 진짜 아빠가 된 심정으로 아이들에게 조언을 해주는 것처럼 목소리를 낮고 근엄하고 부드럽게 내려고 했다. 나는 두 팔을 넓게 벌리며 "애들아, 아빠는 지금 너희들 모습이 ..
2008.11.23 -
반성합시다!
2008.10.24 금요일 5교시 쉬는 시간, 우리 반은 6교시 계발활동을 앞두고, 교실 이동을 준비하느라 한창 소란스러웠다. 갑자기 선생님께서 막대기로 책상을 탕탕 치셨다. "지금 우리 반이 너무 소란해요! 좀 조용히 합시다!" 하셨는데, 아이들은 그 말을 깡그리 무시하듯 계속 떠들었다. 거의 컴퓨터 게임 이야기거나, 사소한 말다툼, 시시한 잡담이었는데, 마치 헬리콥터가 이륙할 때처럼 엄청난 소음이, 교실 안을 꽉 메웠다. 요 몇 주 전부터 계속 그랬다. 우리 반은 다 좋은데, 너무 시끄럽게 떠든다.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들으면 우리 반 떠드는 소리가 가장 크게 들린다. 어떨 땐 수업 시간에도 수업 내용과 관계없는 이야기를 꽥꽥거리듯 떠드는 몇몇 아이들 때문에, 수업에 집중하기가 어려울 때도 있다. 내..
2008.10.27 -
아이들 녹이는 아이스 홍시
2008.06.16 월요일 4교시 수업 시간이 끝나고, 급식을 먹기 전 청소하는 도중에, 우리 반이 갑자기 술렁이기 시작했다. 나는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지?'하고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보았다. 오늘 나오는 급식에 아이스 홍시가 나온다는 거였다. 아이스 홍시? 그게 그렇게 대단한 건가? 나는 아이들이 그렇게 설레어 하는 아이스 홍시 맛이 어떨까 궁금해졌다. 급식을 받아보니, 아이스 홍시는 투명한 플라스틱 그릇에 오목하게 담겨 있었다. 토마토처럼 붉은색이었고, 탱탱한 모양에서 서리처럼 하얗게 차가운 기운이 샤아아 뿜어져 나왔다. 나는 젓가락으로 요놈을 콕 찔러 들어 올려서 한입 '스읍' 베어 물었다. 입 안에서 차가운 눈을 먹는 것처럼 사르르 녹아들더니, 온몸이 찌릿찌릿해져서 나는 "오오우!" ..
2008.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