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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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와 수업하는 아이들
2008.05.29 목요일 3교시 체육 시간이 끝나고 중앙 화단에서 실내화를 갈아 신는데, 화단 풀숲 여기저기에서 달팽이가 보였다. 실내화를 갈아신던 아이들은 달팽이를 보고, 아무렇지도 않게 집어 올리기도 하고, 만져보기도 하였다. 달팽이를 자세히 보니, 조그만 게 귀엽기도 하고, 툭 튀어나온 까만 눈에 뭔가 닿으면, 눈을 살 속으로 집어넣었다가, 다시 쑥 나오기도 하였다. 아이들은 하나둘씩 제각기 달팽이를 몰래몰래 교실로 가져갔다. 수업 시간 내내 아이들은 달팽이를 나름대로 보관하며 수업을 들었는데, 나는 그 모습이 신기하여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떤 아이는 언제 준비했는지, 커다란 병뚜껑에 휴지를 깔고, 물을 적셔 그 위에 풀잎을 몇 장 얹어, 달팽이를 올려놓았다. 또 어떤 아이는 책상 위에..
2008.06.02 -
얼어붙은 호수
2008.1.27 일요일 호수는 살얼음이 얼었고, 그 위로 흰 눈이 얇은 담요처럼 깔렸다. 호수 전체가 햇살을 반사해 반짝반짝 빛난다. 호수는 얼마나 깊은지, 얼마나 얼었는지, 속을 알 수 없을 만큼 드넓다. 언 호수 위에 놓인 나무다리가, 마치 한 세계와 또 한 세계를 이어주는 다리처럼 보인다. 나는 무엇에 끌려가듯 성큼성큼 그 다리로 뛰어간다. 나는 나무다리를 삐걱삐걱 밟고 내려가, 다리 위에 털썩 주저앉아 언 호수를 내려다본다. 언 호수와 내 발끝은 닿을락 말락 가깝다. 멀리서 보았을 땐, 얼음이 얇아 보였는데, 가까이서 보니 돌처럼 단단해 보인다. 신기하게 호수 위 쌓인 눈에 발자국이 나있다. 그것도 온 호수를 가로질러 촘촘하게 눈도장을 찍은 것처럼! 누군가 언 호수 위에 이름을 남기려 죽음을 무..
2008.01.28 -
사법연수원에서 술래잡기
2008.01.15 화요일 우리 가족은 사법연수원 졸업생 가족 대기실을 찾아 허둥지둥 뛰어갔다. 제2교실에서 수료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막내 삼촌을 찾아보려고 애썼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교실 입구부터 사람들이 꽉 들어차 있어서, 뚫고 들어가기가 힘들었고, 어른들 키에 가려 앞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영우 손을 꽉 잡고 단단한 돌을 밀어내듯이 사람들 사이를 헤쳐나가, 고개를 자라같이 쑥 내밀고 교실 안을 둘러보았다. 졸업생들이 수료증을 받으려고 책상 앞에 대기하고 앉아 있다가, 이름이 불리면 차례대로 교탁 앞으로 나와 수료증을 받았다. 하나같이 양복을 입고 있어서 다 삼촌같이 보였다. 삼촌은 뒷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놀랍게도 우리를 먼저 알아보고 번쩍 손을 흔들어 주었다. 마치 우리를 애타게 기다..
2008.01.16 -
2007.10.27 말과 함께 달려요
2007.10.27 토요일 원당 서삼릉과 종마 목장 입구는 형제처럼 나란히 붙어있었다. 서삼릉 입구는 한산했고, 종마장 입구는 사람들로 바글바글 넘쳐났다. 나는 여기까지 사람들에게 치이면서 힘들게 걸어왔기에 또 사람들로 북적대는 종마장 입구를 보자 징그러워져서 서삼릉으로 들어가자고 했다. 그런데 아빠 엄마는 종마장이 더 좋다며 그리로 들어가버렸다. 하지만 나는 곧 종마장이 입장료를 받지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사람들 그늘을 따라다니며 힘겹게 걸어오르다 커다란 단풍 나무가 그늘을 드리워주는 벤치에 앉아서 좀 쉬고 나니 힘이 돌아왔다. 나는 영우랑 땅 바닥에 주저앉아 떨어진 단풍 나무 가지와 돌을 줏어 놀다가 "말을 보러 가자! 저기 백마도 있어!" 하고는 앞장 서 뛰었다. 울타리를 따라 언..
2007.10.28 -
2007.01.23 눈
2007.01.23 화요일 12월 처음 내린 뒤로 겨울 방학 내내, 공원 트랙 옆 길 흙밭에 흰 눈이 녹지 않고 쌓여있다. 나도 고집이 세지만 이 눈도 나못지 않다. 올 겨울이 따뜻하니까 나라도 없으면 그게 겨울이냐 절대로 녹지 않을테다 하는 것 같다. 피아노 학원 가거나 영어 특강하러 학교에 오고 갈 때, 나는 어김없이 눈을 밟고 만져본다. 보기에는 부드러운 솜털같지만 만지면 차갑고 뻣뻣하다. 그 눈은 아직 싹이 나지 않은 흙밭 전체를 하얀 지도처럼 만들어 놓았다. 겨울같지 않은 겨울, 힘들게 쌓여 있으면서 자존심을 지켰구나! 녹을 때는 편안하게 녹기를 바란다.
2007.01.23 -
2006.10.25 기쁨의 노래
2006.10.25 수요일 오늘은 피아노 학원에서 오카리나를 부는 날이다. 그리고 오늘 처음으로 오카리나 곡을 불어 보았다. 바로 '기쁨의 노래' 라는 곡이었다. 그런데 오카리나를 입에 물고 연주하면 등푸른 물고기를 문 것 같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악보를 보며 2번 불어 보았다. 불다 보니 나도 모르게 진짜 제목처럼 기쁨이 드릴처럼 땅을 뚫고 올라 오는 걸 느꼈다. 절망에 빠진 사람이 이노래를 들으면 다시 벌떡 일어날 것 같다. 이곡은 베토벤이 지은 곡이라고 한다.
2006.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