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13)
-
하수구 물세례를 맞은 날
2011.05.20 금요일 지금 내 몸에서는 하수구의 폐수 냄새가 나고, 온몸이 찝찝하도록 꼬질꼬질 더러운 똥물이 묻어 있다. 게다가 하늘에서는 "투 툭, 투 톡~!" 비까지 내리지만, 신기하게도 전혀 비참한 기분이 안 든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필립이와 지홍이와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도롯가에 하수구 공사를 했는지, 하수구 뚜껑이 열려 있었다. 하수구 안에서 나온 걸로 보이는 형형색색의 물질과 비가 뒤섞여, 인도와 차도 사이에 신기한 물감 같은 액체가 엄청 고여 있었고 비릿한 냄새가 났다. 나와 친구들은 호기심이 들어 하수구 앞에 가까이 가 보았다. 구멍이 뚫린 하수구는 안까지 훤히 들여다보였는데, 구더기 같은 벌레들이 꾸물꾸물 거리고 있었다. 필립이는 "상우야! 이거 되게 불쾌하다! 빨리 가자!" 하..
2011.05.24 -
종로 도서관에서
2010.08.12 목요일 오늘은 이사 온 지 3일째, 아직 컴퓨터는 개통이 안 되었지만, 아빠 컴퓨터를 빌려 일기를 쓴다. 할머니 댁은 옛날 주택가다. 그래서 할머니 댁으로 들어가는 좁은 골목길에 이삿짐을 싸놓고, 하나하나 옮기면서 풀었다.그런데 소낙비가 주룩주룩 내려서, 쌓인 짐에 비닐 지붕을 얹고 기다렸다 날이 개면 풀고 하였다. 오늘도 짐 풀기는 끝날 줄을 몰랐다. 그러다가 갑자기 날씨가 맑아져서, 나는 서울특별시 어린이 도서관으로 책을 읽으러 갔다. 나는 영우 손을 꽉 잡고 출발하였다. 도서관까지 가는 길에는, 넓은 찻길에 중간중간 차들이 휙휙~ 옆으로 지나가서, 인도 끝에 접착제처럼 달라붙어서 걸었다. 한차례 오르막길을 오르고 나면, 자그마한 언덕에 올라온다. 오른쪽으로는 사직공원이 있고, 사..
2010.08.14 -
헌법재판소 판결처럼 우울한 날씨
2009.10 31 토요일 점심을 먹고 축농증 치료를 받으러 상가 병원으로 가는 길이었다. 어제까지 아파트 단지마다 붉고 노란 나뭇잎이 땅바닥에 가득 뒹굴었고, 나뭇가지에도 빨간색 등불을 켜놓은 것처럼 예뻤는데, 오늘은 다르다. 오전부터 내리던 비가, 그동안 가을을 지켰던 풍성한 나뭇잎을 한 잎도 남기지 않고 모두 떨어내버렸다. 그래서 나뭇가지들은 바짝 말라서 쪼글쪼글해진 할머니 손처럼, 또는 X레이에 찍은 해골의 손뼈처럼 가늘가늘 앙상하다. 내가 조금만 건드려도 톡 부러질 것 같다.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밝혀주었던, 가을의 빨간 축제가 매일 열리던 길목은 이제 끝났다. 내가 걷는 길은, 차가운 비가 투툴투툴 내리는 추억 속의 쓸쓸한 길이 돼버리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우산 속에서 햇빛을 못 받아 어..
2009.11.01 -
현장 학습 가는 날
2009.04.24 금요일 나는 아침 6시에 눈을 떴다. 학교에서 경기도 용인 민속촌으로 현장 학습을 가는 날이라, 아침 7시 20분까지 운동장에 모이기로 하였다. 얼마나 설레었는지 가방과 돗자리를 메고 집을 나설 땐, 세상 속으로 빨려드는 것처럼 짜릿했다. 그러나 기대했던 것처럼 '아, 정말 멋진 체험이구나!'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아쉬운 점 1. 현장 학습을 갈 때, 버스 안은 내가 너무 큰 건지, 버스 좌석이 작은 건 지, 2시간가량 묶여 있기는 너무나 힘들었다. 날씨는 후덥지근하고 습기가 많아 꿉꿉하고, 아이들은 시끄럽게 떠들어대고, 완전히 해적선 안에서 포로로 잡혀 있는 기분이었다. 창밖으로 아름다운 경치를 보려고 고개를 돌리면, 척박한 공사현장과, 우중충한 구름이 습기 가득한 빨래같이 ..
2009.04.27 -
날씨가 추워져요!
2008.10.23 목요일 오늘, 갑자기 날씨가 추워져서 놀랐다. 아침에 학교에 가려고, 아파트 입구를 나서며 경비 아저씨께 인사를 할 때, 갑자기 매서운 칼바람이 내 몸을 쓱~ 휩쓸고 갔다. 나는 너무 추워서 온몸이 핸드폰 진동처럼 즈즈즈즉 흔들렸다. 그리고 '후~' 숨을 한번 내뱉었는데, 입에서 입김이 눈보라처럼 흘러나왔다. 나는 속으로 '아! 그동안 그렇게 덥더니, 드디어 제대로 된 추위가 오는구나!' 생각했다. 깡 말라서 쪼글쪼글 비틀어진 나뭇잎들이 칼바람을 못 이기고 후두 두둑 떨어져 내렸다. 나는 다리를 오므리고 으으~ 하면서 걸었다. 영우는 아흐흐흐~ 앓는 소리를 내면서도 바람에 대항하듯,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걸었다. 자꾸 바람이 얇은 잠바 옷깃으로 스며들어 와서, 뼛속까지 관통하고 빠져나..
2008.10.24 -
파란 하늘
2008.07.09 수요일 요즘 들어 나는 파란 하늘이 그리웠다. 매일 같이 날씨는 죽을 만치 더운데, 두껍고 무거운 구름이 뿌옇게 하늘을 꽉 막고 있어서, 학교 오고 가는 길이 괴로웠고 가슴까지 타들어가듯 답답했다. 오늘 아침 교실 앞, 복도 창문에서 바깥을 내다보았을 때, 깃털 구름 사이로 가슴이 확 풀리듯 파란 하늘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나는 오랫동안 창문에 기대어, 볼수록 시원한 하늘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내 마음도 새가 되어 하늘을 가르며 마음껏 날다가, 깃털 구름에 매달려 더 먼 하늘까지 날아갔다 돌아왔다. 그리고 다른 때보다 훨씬 상쾌해진 마음으로 1교시 말하기.듣기.쓰기 수업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런 시를 배웠다.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여름엔 여름엔..
2008.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