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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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진 안경
2010.07.19 월요일 오늘은 유난히 더워서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났다. 학교에서 받은 묵직한 새 교과서를 가방에 한가득 메고 오는데, 몸은 무겁고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땀은 폭포수처럼 흘렀다. 꼭 숯불 가마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처럼 옷이 끈적끈적,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오늘이 초복 날이라는데, 꼭 내가 닭 대신에 고기가 되어 익는 기분이었다. 아무튼, 이 일은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더운 날에 일어난 일이었다! "잘 가, 석희야! 잘 가, 민석아!", "그래, 상우야, 잘 가!", "너도 잘 가!" 우리는 각자 집으로 가는 4단지의 끝 길에서 뿔뿔이 헤어졌다. "허억허억~" 정말로 더웠다. 사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시무시한 태양이 커다랗게 떠서, 나에게 햇빛을 내려보내 지렁이처럼 말려 죽이려..
2010.07.21 -
하늘의 눈물
2010.05.24 월요일 지금은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있다. 엊그제 저녁부터 내리던 비가, 아직도 하늘을 깜깜하게 덮어버리고 있다. 꼭 1년 전 돌아가신 그분을 애도하듯이 말이다. 어린 손녀 딸과 함께 자전거를 타면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에 반항이라도 하듯, 개구쟁이 옆집 할아버지처럼 푸근하게 웃어주고, 나이 어린 학생에게도 진심으로 고개 숙여 인사하셨던 그분! 그분을 잃고 나서야 후회하며, 온 국민이 오늘 내리는 비처럼 펑펑 울었던 날이 바로 1년 전이다. 그날, 세상에 지진이 난 것처럼 충격적인 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셨던 그날! 내가 처음으로 아빠의 눈물을 보았던 날이었다. 아! 사실 나는 그분이 대통령이었을 땐, 너무 꼬맹이였다. 그래서 그냥 인상 좋은 대통령 아저씨로만 생각했었다. 내가..
2010.05.26 -
전망대에 올라
2010.05.08 토요일 우리는 북서울 꿈의 숲 전망대에 올랐다. 전망대로 오르는 사람들 줄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특이하게 옆으로 경사가 져서 움직이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을 지나니, 엘리베이터 2층이 기다린다. 그리고 계단, 또 계단을 오른다. 드디어 꼭대기 층 전망대를 가리키는 표지판이 보이자, 갑자기 쉬할 때처럼 온몸에 전기가 찌릿하면서 오드들~ 떨려왔다. 전망대에서는 위이이잉~ 꼭 배고픈 사냥개의 울음소리처럼, 바람 소리가 울리며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후으음, 하아아~! 전망대에 오르니 막힌 숨통이 탁 트였다. "우와아~!" 처음 전망대 꼭대기에 발을 내디뎠을 때, 나온 말은 오직 이말 뿐이었다. "우와아~!" 금방이라도 위로 날아갈 수 있을 것처럼, 천장 없이 뻥 뚫린 위로는 시원한 바..
2010.05.11 -
나무 타기
2009.02.12 목요일 영우와 피아노 학원 차를 기다리는 동안, 놀이터 나무에 올라가 보았다. 그것은 굵은 나무를 원기둥 모양으로 가공해서 놀이터 안에 말뚝처럼 박아놓고, 몸통 여기저기에 도끼로 찍은 듯한 흠을 만들어, 그것을 잡거나 밟고 올라갈 수 있게 만든 거대한 놀잇감이었다. 나무의 감촉은 매끄러운 돌 같았다. 나는 먼저 왼발을 제일 낮은 틈에 딛고, 조금 더 높은 틈에 오른발을 디뎠다. 일단 그렇게 몇 번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해보았다. 그러자 요령이 붙었다. 나무 둥치를 안고 허리와, 등, 어깨 순서로, 뱀처럼 양쪽으로 번갈아 흔들며 올라가니, 발을 딛기가 더 쉬웠다. 정말로 새 알을 훔쳐 먹으려고 나무 위를 올라가는 뱀이 된 기분으로, 나는 신이 나서 어깨춤을 추듯이 더 심하게 몸을 흔들며 ..
2009.02.13 -
광릉 수목원에서 함께 한 여름
2008.08.21 목요일 며칠 전 친구들이 현장 체험 학습 과제는 했느냐고 묻기에 아직 안 했다고 했는데, 오늘 광릉 수목원에 가게 되어 제대로 한번 체험해 보리라 마음먹고 길을 나섰다. 수목원 근처에서부터 싱그러운 냄새가 퍼져 나와 나는 코를 크게 벌리고, 공기를 한껏 빨아들였다. 1. 흥미로운 것 - 산림 박물관 내가 가장 흥미롭게 느낀 것은 수목원 안에 있는 산림 박물관의 전시물들이었다. 산림 박물관 안의 나무, 동물, 새, 곤충 전시물들은, '박물관이 살아있다!'라는 영화에서처럼, 금방 살아날 것 같이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특히 나무에 관한 모든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전시해놓은 것이 놀라웠다. 갖가지 나무들을 통째로 잘라 이름 붙여 세워놓았고, 계단에 붙어 있는 나무판자들도 전시품이..
2008.08.22 -
친구에게 낚이다!
2008.06.19 목요일 학교 끝나고 성환이와 수영이와 김훈이와 나랑 영우랑, 4단지 놀이터에서 온몸이 땀에 흠뻑 젖도록 뛰어놀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성환이와 수영이가 "우리 학원 때문에 집에 가야겠다!" 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제 막 놀이가 물이 올라 재미있어지려고 하는데, 애들이 간다고 하니까, 섭섭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성환이와 수영이도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다음에 또 놀자!" 하며 놀이터 바깥으로 가버렸다. 그런데 훈이까지 "난 시간은 있지만 나도 가야겠어!" 하며 아이들 뒤를 따라 '쌩'하고 가버렸다. 나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맥이 탁 풀려 울상이 되어서, 영우랑 힘없이 미끄럼틀 타기만 반복하였다. 얼마가 지났을까? 갑자기 김훈이가 다시 놀이터 입구에 뽀르르 나타났다. 나는 반갑..
2008.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