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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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2008.03.04 화요일 4학년의 첫 아침이다. 나는 아주 당연한 일처럼, 다른 때보다도 훨씬 일찍 일어나, 아직 자고 있는 엄마를 깨워 밥 달라고 졸랐다. 엄마가 졸린 눈을 비비며 아침밥을 준비하시는 동안, 나는 졸음기를 이기지 못하고 소파에 앉아 꾸벅꾸벅 잤다 깼다를 반복하였다. 집을 나선 시간은 7시 30분, 날은 흐리고 우중충했다. 게다가 공원 입구는 시커먼 구름과 안개가 깔려있어,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거대한 용이 엎드려 있는 것처럼 으스스한 느낌이 났다. 어제는 입었던 겨울 잠바가 무겁게 느껴질 정도로 땀을 많이 흘렸다. 그래서 오늘 얇은 잠바로 갈아입고 나왔더니, 이번엔 뼈가 으들들거릴 정도로 춥기만 했다. 나는 이게 학교 가는 길이 맞나? 의심이 들었다. 왜냐하면, 공원 길엔 학교 ..
2008.03.05 -
시소
2008.02.04 월요일 학교 수업 마치고 우석이랑 나는, 우석이네 옆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놀이터에 들어가 놀았다. 마침 놀이터에는 아무도 없었다. 우석이는 미끄럼틀 꼭대기에 올라서서 아파트 화단을 내려다보며, "저기 고양이다! 안녕, 고양아! 귀여운 고양아!" 하고 외쳤다. 그러자 우석이 목소리가 빈 놀이터 안을 쩌렁쩌렁 울리면서 검정 고양이가 놀라 허더덕 달아났다. 나는 모래성을 쌓다가 시소를 타고 싶어 우석이와 시소 양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런데 우석이와 내 무게 차이가 커서 내 쪽으로만 시소가 기울었다. 그래서 내가 시소 앞칸으로 얼른 옮겨 앉았는데, 시소가 탄력 있게 통통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지 못하고, 우석이만 공중에 떠있고, 나는 우석이 반만큼만 간신히 올라갔다가 끼이익 내려왔다...
2008.02.05 -
2007.10.22 빛을 쏘는 아이들
2007.10.22 월요일 4교시 체육 시간에 과학 시간 때 못했던 실험을 하려고 운동장으로 나갔다. 우리는 먼저 손거울을 가져온 사람과 안 가져온 사람으로 나누어, 3m 정도 거리를 두고 나란히 마주 섰다. 그런 다음 손거울을 가져온 사람이 거울을 자기 쪽으로 향하지 않게 반대 편으로 거울을 돌려 비추었다. 나는 낙건이 가슴을 향해 거울을 비추었다. 그랬더니 거울에서 광선이 나가듯이 노란 빛이 낙건이 가슴을 맞추었다. 낙건이는 그 빛을 지우려는 듯이 두 손으로 가슴을 박박 문질렀다. 어떤 애는 빛을 더 맞으려고 두 손을 펼치고 빛을 향해 뛰어다녔고, 또 어떤 애는 빛을 피하려고 요리조리 뛰어다녔다. 빛을 쏘는 아이들은 사냥꾼처럼 한 명이라도 더 맞추려고 안달이 나서, 그야말로 레이저 쇼처럼 정신없는 수..
2007.10.22 -
2007.08.15 나의 첫 해돋이
2007.08.15 수요일 나는 지금 하조대 해수욕장 바다 앞 모래 사장에 돗자리를 펴고 뜨는 해를 보려고 앉아있다. 지금 시각은 새벽 4시 30분이다. 내가 지금 이 시간에 여기 이렇게 있는 것이 믿기지 않지만, 중요한 건 내가 태어난 지 10년만에 처음으로 해돋이를 본다는 것이다. 그것도 광복절을 맞이하여! 아직 해는 떠오르지 않았지만 잔뜩 낀 구름 끝 사이가 차츰차츰 빨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발 밑의 파도가 무서웠다. 검은 파도가 집어삼킬듯이 거세게 몰아쳤기 때문이다. 그 파도 속에서 거대한 고래라도 솟아올라 나를 덮칠까 봐 조마조마했다.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해를 보려고 모여있었다. 어느 새 구름 전체가 붉게 물들었고 순식간에 온 바다가 핓빛으로 물들었다. 이런 광경은 처음이었다. ..
2007.08.15 -
2007.08.10 불 나다
2007.08.10 금요일 늦은 밤 11시, 엄마가 갑자기 현관 문 밖으로 나갔다 들어오시더니 마루에 모여있는 우리 가족에게 소리쳤다. "여보, 큰 일 났어요! 우리 아파트에 불 났대! 상우야, 영우야, 어서 나가자!" 그 다음부터는 급하게 일이 돌아갔다.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서 우리는 계단으로 걸어 내려 대피하였다. 우리 집은 5층인데 3층 쯤 내려가 보니 퀘퀘하고 시커먼 연기가 사방에 꽉 차 있었다. 그 때부터 나는 학교 안전 교육 시간에 배운 방법대로 머리를 숙일 수 있는대로 바짝 숙이고 두 손으로 코와 입을 막고 내려왔다. 뒤따라 오던 영우는 "엄마, 앞이 안 보여!" 하면서 울부짖었다. 간신히 바깥으로 나와 보니, 사람들이 아파트 앞에 구름처럼 모여있었고 소방차와 구급차가 도착해 있었다. 사람..
2007.08.10 -
2007.08.02 혹독한 여름
2007.08.02 목요일 올여름은 잔인하다. 어떻게 비가 이토록 매일 매일 쉬지도 않고 내릴 수 있단 말인가? 햇빛을 보는 날보다 시커먼 구름 덩어리와 무겁게 쏟아지는 비에 갇혀 사는 꼴이 되어버렸다. 오늘 오전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점점 거세져서 우리 집 창문 밖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영우랑 나는 베란다 창이 보이는 마루에 모여 앉아 상을 펴고 비 오는 모습을 글로 써 보기 놀이를 하였다. 그러나 천둥 소리가 팡팡 터지고 번개가 하늘로 승천하는 용처럼 우르릉 치고 마침내 하늘이 뚫려 버린 것처럼 비가 쏟아지자, 영우와 나는 겁에 질려 글을 쓰다 말고 서로 놀란 얼굴로 바라보기만 했다. 우리 아파트가 폭풍우에 휩쓸려 떠내려 가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다시 천둥이 치고 빗물이 온 세상을 뚜..
2007.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