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문(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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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진 바지
2011.08.20 토요일 오늘따라 왠지 교복 바지의 움직임이 자유롭고, 다리를 마음껏 벌릴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교실에서 편한 바지의 느낌을 즐기기 위해, 마이클 잭슨처럼 문워크도 흉내 내고 허벅지를 뱅뱅 돌렸다. 교복 바지는 몸에 딱 맞아서 다리의 움직임이 한정돼 있었는데, 이상하게 오늘은 그렇지가 않았다! 아마 수업이 짧은 토요일이라서 마음이 가벼워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을까? 하며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1교시는 진로 교육으로 TV에서 박태환 선수의 이야기가 주르륵 나왔다. 악재를 딛고 다시 한번 세계선수권대회 1등을 한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선수를 보다가, 잠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바지 아래쪽으로 무언가 가느다란 실 같은 것이 풀려, 삐쭉삐쭉 삐져나와 있는 것을 보았다. '어..
2011.08.23 -
전학 간 친구의 빈자리
2010.11.20 토요일 오늘은 민재가 전학 간 지 하루가 지났다. 어제 민재는 우리 반에서 6학년 때 처음 전학을 간 기록을 남겼다. 5학년 때까지 많은 아이가 전학 가는 것을 보며 울었던 나는, 이제 전학 가는 것이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들 모두가 민재와 인사를 나누며 울고 있을 때, 나는 사실 눈물 한 방울도 나지 않았다. 그렇게 슬프지도 않고 실감이 나지도 않았다. 하지만, 오늘 하루 동안은 민재의 빈자리가 너무나 크게 느껴졌다. 나는 민재의 뒷자리에 앉았는데, 앞에 민재가 없으니 무언가 한구석이 텅~ 비어 버린 것 같았다. 수업 시작할 때도, 회장인 민재를 대신해서 부회장인 은철이가 수업이 시작함을 알렸다. 그러니 여기저기서 "이상해!", "어색하다." 하는 소리가 들렸..
2010.11.22 -
다시 만난 학교
2010.02.02 화요일 오늘은 드디어 개학을 하는 날이다. 이번 방학은 유난히 길고도 짧았다. 오랜만에 아침 시간에 밖에 나와서 신선하고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니, 폐가 갑자기 첫 숨을 쉴 때처럼 놀라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오후에만 나다니다가 갑자기 아침에 나와서 그런지, 바람이 볼을 찰싹찰싹 쓰라리게 하고, 옷을 두껍게 입었는데도 소매하고 품 안으로 바람이 어느새 들어와 있었다. 5단지에서 나오니 꼭 동물들이 대이동을 하듯이, 삼숭초등학교 학생들이 한길로 우르르 몰려가는 모습은, 심장이 뛰도록 흥겹고 신이 났다. 바람이 매섭게 핏발이 선 날씨였지만, 나와 같이 배우러 가는 친구와 학생들이 있다는 생각에 기쁘고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학교 언덕 밑 교문에서는 1,2단지 쪽 횡단보도에서 건너오는 아이들..
2010.02.04 -
물속을 걷다!
2009.07.09 목요일 오~ 이럴 수가! 세상에 이렇게 많은 비가 내리다니! 수업이 끝나고 학교 현관에서 신발을 갈아신으려던 나는, 엄청나게 내리는 비를 보고 순간 주춤하였다. 학교 밖은 우산을 써도 피할 수 없을 만큼 비가 사정없이 내리치고 있었다. 어젯밤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오늘 내내 멈추지 않고 쏟아졌고, 시간이 갈수록 더 강해지고 있다. "집은 괜찮나요? 혹시 떠내려가진 않았죠?" 나는 복도에 있는 학교 전화기로 집에 전화를 걸어 안전을 확인한 다음, 비와 맞서는 전사가 된 기분으로 학교를 나섰다. 교문으로 내려가는 언덕 위에서 보니 세상은 물바다였다. 도로, 인도 곳곳에 조금이라도 움푹 팬 자리는, 빗물이 흙탕물 호수처럼 고였고, 그 위로도 거친 빗물이 포봉 퐁 포봉~! 하고 운석처럼 ..
2009.07.11 -
지각한 날
2009.06.15 월요일 나는 아침부터 이상한 꿈에 시달리다, 어느 순간 간신히 눈을 떠서 시계를 보았다. 오전 8시 40분! 순간 방안이 흔들리도록 "으악~ 완전 지각이다, 망했다~!" 하고 소리치며, 방바닥에 쌓여 있는 옷을 아무거나 입고, 가방을 들고 뛰어나갔다. "어? 상우야, 그냥 쉬지~." 하시는 엄마의 말소리를 뒤로한 채. 학교 가는 아이는 아무도 없고, 아파트 입구에서 엄마와 손을 흔들며, 유치원 버스를 타는 어린아이들을 보니 왠지 쓸쓸해졌다. 그보다 더 마음을 괴롭히는 건, 아무리 빨리 걸어도 지각을 면할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급하게 뛰어나오느라, 난 내가 밤새 아팠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걸을수록 기침이 콜록콜록 쏟아지고, 머리는 산처럼 무겁고, 하아하아~ 가슴이 쥐어짜듯 아팠다...
2009.06.18 -
2007.06.04 지각
2007.06.04 월요일 아침에 눈을 떴더니 엄마가 졸린 목소리로 "아우, 상우야, 지각이다." 하셨다. 나는 너무 졸려서 그 소리가 귀에 잘 들리지 않았다. "뭐어?" 하며 시계를 보았더니, 8시 30분이었다. 나는 놀라긴 하였지만 그 때까지도 잠결이었다. 다급해진 엄마가 계속 "미안해." 하시며 나보다 더 허둥대셨다. 하지만 오히려 미안한 건 나였다. 어제 밤 엄마가 밤새워 작업하시는 동안 나도 그 틈을 타 몰래 책을 읽다 잠들었기 때문이다.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서 공원 길로 접어드는 순간 미지근한 온도의 끈적끈적한 바람이 불어 잠이 완전히 달아나면서, 나는 '에잇, 완전 지각이군!' 하며 난감한 기분과 후회가 뒤섞여 학교로 갔다. 오늘따라 학교 가는 길이 왜 이리 무거운지 마치 내가 피고가 되어..
2007.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