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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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이가 코피 흘린 날
2011.06.22 수요일 오랜만에 공부를 한다. 엄마와 나, 내 친구 풀잎이 이렇게 셋이서 사직 도서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한 열람실에 엄마는 좀 멀리 떨어져서, 나와 풀잎이는 마주 보고 앉아 기말고사 준비를 했다. 엄마까지 도서관에 오게 된 사연은 이렇다. 요즘 나는 학교 끝나고 풀잎이와 쏘다니며 놀았다. 뭐하고 노냐면 그냥 풀잎이랑 함께 도로와 골목길을 배회하면서 수다도 떨고, 계란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를 쓰다듬어주며 논다. 풀잎이는 귀엽게 생겼는데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어서 조금 무뚝뚝해 보이는 게 특징이다. 그래도 나는 안다. 풀잎이가 맑은 영혼을 가졌다는 것을. 주위에서 욕을 안하는 애는 풀잎이 밖에 없으니까! 그런데 엄마는 언젠가부터 내가 기말고사가 다가왔는데도 별로 열심히 준비하지 않고,..
2011.06.25 -
처음으로 다녀온 수영교실
2010.02.01 화요일 오늘부터 나는 동네 문화체육센터에서 2월 한 달간, 수영과 농구를 배운다. 나에게 초등학교 졸업선물로 운동하게 해주신 큰삼촌께 박수를 쳐 드리고 싶다. 나는 나름대로 수영을 즐길 줄은 알지만, 배워본 적이 없어서 마구잡이 수영을 한다. 이번에는 체계적으로 배워서 수영다운 수영을 하리라! 나는 얼마나 서둘렀는지 골목길에서 튀어나오는 오토바이와 부딪힐 뻔하였다. 그러고도 숨 돌릴 틈 없이 두다다다~ 사직공원을 지나, 가파른 언덕에 있는 문화체육센터로 쏜살같이 달렸다. 체육센터에 들어서자마자 먼저 그동안의 허물을 벗겨 내듯이, 콧노래를 부르며 샤워를 하였다. 샤워하면서 목도 돌리고 학교 힘찬이 교실에서 배웠던 몸풀기 체조도 하였다. 그런데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샤워실의 따뜻한 공기..
2011.02.02 -
병원 갔다 오는 길
2010.12.27일 월요일 "띵동! 권상우, 권상우 손님께선 들어와 주십시오!" 하고, 내 차례가 되었음을 알리는 소리가 작은 전광판에서 작게 흘러나왔다. 아파서 며칠을 씻지 않은 나는 꼬재재한 모습으로 제1진료실로 들어갔다. 그 안에는 눈빛은 조금 날카로우며 얼굴이 동그란 여의사 선생님께서 앉아 계셨다. 의사 선생님은 꼭 만화영화에서 본 듯한 분위기였고, 왠지 커피를 홀짝이며 마실 것 같았다. 나의 열감기는 3일 전인가? 친구들과 외박을 하며 진탕 놀고 돌아온 다음 날부터 시작되었다. 친구들과 밤을 새우고 놀아서 집으로 돌아온 나는 오후부터 저녁까지 잠을 쓰러진 듯이 잤다. 그런데 일어나니 몸이 엄청 무겁고 머리가 꼭 야구방망이로 얻어맞은 것 같이 아프고 뜨거웠다. 그리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꼭 기름을..
2010.12.29 -
추운 골목길
2010.12.15 수요일 오후 4시쯤, 나랑 영우는 그냥 산책할 생각으로 밖으로 나왔다. 오늘 아침, 날씨가 매우 춥고 감기 기운이 있어 학교에 가지 못하였다. 오늘은 교과부 블로그 원고 마감일인데, 그 바람에 나는 잠을 푹 자고 기사를 여유롭게 송고할 수 있었다. 매번 기사를 쓸 때마다 느끼는 건데, 글을 격식에 맞추어 쓴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그러나 엄청 재미있고 보람 있다. 기사를 송고하고 오랜만에 끙끙거리며 누워 빈둥거리다가 엄마가 해준 카레를 든든하게 먹고 나왔다. 그런데 장난이 아니고 내 귀는 1분도 못 견디고 얼어서 터져버릴 것 같았다. 세상에나! 나는 잠바 속에 얇은 옷 두 개만 껴입고 목도리를 하고 나왔는데, 잠바가 내 몸보다 살짝 큰 것이 문제였다. 큰 잠바를 입어서 허리..
2010.12.16 -
TNM 송년회에서 만난 식구들
2010.12.09 목요일 나는 6시, 압구정역 2번 출구에서 엄마를 만났다. 오늘은 내가 파트너로 소속해 있는 태터앤미디어 파트너 송년회가 있는 날이다. 난 파트너로서 한 건 별로 없지만, 이번에는 꼭 참석해보고 싶었다. 엄마랑 나는 초행길이라 이빨 닦듯이 골목길 구석구석을 찾아다녔다. 문구점에서도 물어보고 아파트 경비 아저씨에게도 물어보고 길가는 사람에게도 물어보고 간신히 컨벤션 에이치라는 건물을 찾아내었다. 컨벤션 에이치는 지하 1층에 있는데, 내부가 들여다보이도록 돼 있고, 조명도 번쩍이고 꼭 으리으리한 방공호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하 궁전으로 가듯 계단을 내려가 송년회장 안으로 들어가니 아직 파트너들은 많이 모이지 않았다. 제일 먼저 나를 알아본 사람은, 태터앤미디어의 대표인 그만님이었다. 얼..
2010.12.12 -
화장실에서 읽은 시
2009.03.10 화요일 급식을 먹고 나서 나는 2층 화장실로 향했다. 우리 학교는 층마다 화장실벽에, 액자에 시를 써서 걸어놓았는데, 난 쉬는 시간에 화장실을 골고루 돌아다니며 시를 읽는 걸 즐겼다. 단 2층 화장실은 한 번도 안 가봐서 오늘은 특별히 들러본 것이다. 세면대 위쪽에 붉은 보리밭 그림을 바탕으로 아름다운 시가 쓰여있었다. 나는 그 액자에서 가장 가까운 소변기에서 쉬를 하며 시를 읽었다. '여울에서 놀던 새끼 붕어, 다 커서 떠나고, 여울은 그때 그 또래 꼭 똑같네! 동네 아이들이 뛰어놀던 골목길, 아이들은 다 커서 떠나지만, 그 골목길은 그 또래 그대로이다!' 이 시를 읽고 나는 순간 멍해졌다. 뭔가 많은 느낌과 생각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마치 우리가 어릴 때는 엄마 아빠 품에 잘 놀다..
2009.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