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사(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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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철마야!
2010.06.06 일요일 현관문을 열어 자전거를 끌고 나오는데, 계단을 쿵쿵~ 울리는 소리가 났다. 석희가 어느새 올라와 내 어깨를 잡으며 "상우, 잡았다!" 하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자전거를 타러 나온 석희와 나, 그리고 재호의 한편의 자전거를 탄, 서부 영화 같은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석희와 재호는 먼저 4단지 쪽으로 쭉~ 도망쳤다. 곧이어 나도 그들을 따라 달렸다. 영리한 석희는 큰길로 빠져서 멀리 나가는 듯하더니, 교묘하게 내 뒤로 다시 돌아와 달렸다. 그리고는 또 사라졌다. 나는 계속 헉헉거리면서 4단지를 돌았지만, 석희와 재호가 눈에 띄지 않았다. 왠지 헛고생을 한다는 느낌이 들어, 중앙공원으로 가보았다. 역시나! 자전거를 탄 재호와 석희가 매복해있었다. 석희와 재호는 눈치채고 "야, 상우다..
2010.06.07 -
트라이더를 타고 날아요!
2010.04.25 일요일 조금은 늦은 저녁에 가족과 걸어나가 아파트 단지를 산책하였다. 나는 시험공부에 매달려 있다가 오랜만에 트라이더라는 기구를 타고, 초저녁에 자유로운 바람을 만끽하고 있었다. 트라이더는 킥보드 비슷한 형태인데, 발판이 양쪽에 한 개씩 있고 다리를 오므렸다가 벌렸다가 하면 그 힘으로 앞으로 나가는 기구다. 자전거도 인라인 스케이트도 썩 잘 타지 못하는 나에게는 안성맞춤인 운동 기구였다. 나는 오랜만에 그리 빠른 속도는 아니었지만,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트라이더를 타니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영우랑 나는 교대로 트라이더를 탔는데, 서로 한 바퀴만 한 바퀴만 하면서 더 욕심을 내다가, 꽥~하고 으르렁대며 싸우기까지 했다. 엄마는 화가 나서 트라이더를 압수하려 하셨다. 트라이더는 아..
2010.04.29 -
뒷산 오르기
2009.08.01 토요일 친구들과 아파트 단지를 구석구석 뛰어놀다가, 5단지 뒤쪽에 있는 등산로 입구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나, 영우, 석희, 경훈이, 경훈이 동생 지훈이, 이렇게 우리 5명은 땀에 촉촉 젖은 채,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 무턱대고 천보산 등산로로 향하는 나무계단을 올랐다. 나무 계단을 다 올라가기도 전에 나는 벌써 다리가 후들거리고, 앞머리에 물방울 같은 땀이 맺혔다. 동작이 빠른 석희와 지훈이가 계단을 몇 칸씩 펄쩍 뛰어올라, 등산로로 시작하는 작은 나무문을 삐끽~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뒤에 처진 우리가 들어오지 못하게 손으로 문을 꽉 막았다. 몸집이 큰 경훈이와 나는 똥 누듯이 '이이이익~' 힘을 주어 문을 밀어젖혔다. 시원하게 우거진 나무 사이로 난, 좁다랗고 가파른 등산길을..
2009.08.04 -
개미들이 떠내려가는 골짜기
2009.06.20 토요일 비바람이 심하게 몰아치는 하교길, 간신히 붙잡고 오던 낡은 우산 살이 휘어지면서, 우산도 확 뒤집혔다. 내 몸은 더 젖을 것이 없을 만큼 스펀지 상태였다. 이제 물에 잠긴 놀이터 맞은 편 인도를 따라 오른쪽으로 돌면, 오르막이 보이고, 이 오르막만 넘으면 집 앞에 도착할 것이다. 이 오르막길에서는, 위쪽에서부터 흙길에 고인 듯한 빗물이 아래로 쉬지 않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폭이 좁게 흐르는 물줄기가, 마치 암벽들 사이로 흐르는 물길처럼 거침없었다. 그래, 그것은 세차게 물이 흐르는 깊고 긴 산골짜기와도 닮았다. 그런데 무언가 까만 점 같은 것들이 물길에 섞여 동동거렸다. 몸을 수그려 자세히 보니, 그 물길과 물길 주위로, 미처 비를 피해 집으로 들어가지 못한 개미들이 허둥대..
2009.06.21 -
놀이터 묘사하기
2008.11.10 월요일 402동 앞에는 아담한 놀이터가 하나 있다. 놀이터는 동그란 원모양이고, 놀이터 안에는 커다란 수상가옥 모양의 놀이 시설이 우뚝 서 있다. 놀이터 안을 꽉 메우는 이 놀이 시설은, 정글에 지은 집처럼 나무 기둥과 나무판자를 덧대어서 아주 재밌게 만들었다. 놀이시설 왼쪽에는 암벽 등반 놀이를 할 수 있도록 굵은 나무판을 비스듬히 기울여 세워놓았고, 그걸 지지대로 하여 굵고 튼튼한 나무 기둥 대여섯 개가 하늘을 찌를 듯이 위로 쭉쭉 뻗어 있다. 오른쪽에도 커다란 집 모양의 놀이 시설이 있는데, 왼쪽의 나무 기둥과 밧줄로 구름다리처럼 이어져 있다. 여기에도 역시 암벽 등반 놀이를 할 수 있는 굵은 나무판이 더 경사가 가파르고 높게 세워져 있다. 밑에서 보면 높은 골짜기 같다. 그리고..
2008.11.11 -
구사일생
2008.01.21 월요일 피아노 학원 수업을 마치고, 선생님께서 잘했다고 주신 젤리를 냠냠 먹으며 돌아올 때, 공원에 쌓인 눈이 나뭇가지로 새어들어 오는 햇살을 받으며 짠 녹고 있었다. 그러자 공원 길 전체가 이제 막 녹기 시작한 거대한 얼음 덩어리처럼 꿈틀거리는 것 같았고 무지 미끄러웠다. 나는 문득, 지금은 방학이라 한동안 가보지 않았지만, 학교 다닐 때 우석이랑 잘 다녔던 우리만의 지름길인 가파른 언덕 위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언덕은 풀이 많고 몹시 경사가 험해서, 한번 발을 내딛으면 중력의 작용 때문에 높은 곳에서 아래로 쉬지 않고 굴러 떨어지는 사과처럼, 단숨에 와다다다 멈추지 않고 아래로 뛰어내려 와, 우리 집과 우석이네로 갈라지는 길 위에 떨어지게 된다. 언덕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하..
2008.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