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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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 3호의 갈매기
2011.03.26 토요일 위이이잉~ 취이이이이~! 갑자기 일정하게 웅웅대던 엔진 소리가 몰라보게 커지고, 배가 한번 흔들렸다. 꾸웅~! 소리가 들리면서, 땅과 배를 연결하던 다리가 올라가고, 보성 3호는 바다를 향해 힘차게 출발하였다! 우리는 지금 인천 월미도에서 영종도로 가는 바다 한가운데, 시끄러운 엔진 소리를 내며 물살을 가르는 보성 3호에 타고 있다. 아직 날이 덜 풀리고 바다라서 바람은 매섭지만, 전혀 춥지 않았다. 너무 오랜만에 본 바다가 반갑고 정겨울 뿐이었다! 반가운 것이 또 하나 더 있었다. 바로 뾰쪽한 콧날, 부드럽고 하얀 피부, 길게 뻗은 팔다리로 힘차게 나는 갈매기이다! 갈매기들은 꼭 술래잡기를 하듯이, 보성 3호를 졸졸 따라다니며 승객들에게 새우깡을 얻어먹었다. 나와 영우도 갈매..
2011.03.28 -
6학년의 졸업식
2010.02.18 목요일 오늘은 6학년 선배들이 졸업하는 날이다. 우리 5학년은 오늘을 위해, 졸업식 노래를 연습하고 어제 총연습을 마쳤다. 하지만, 나는 6학년을 썩 축하해주고 싶지만은 않았다. 6학년 선배들은 자기보다 나이 어린 후배들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욕을 하고, 학교에서도 불량학생처럼 건들건들 걸음도 이상하게 걸었다. 또 머리 모양도 뾰족뾰족하게 하고, 표정도 웃는 얼굴 없이 이상하게 짓고 껄렁껄렁 거리면서, 그게 멋있는 줄 알고 다니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그래서 노래 연습을 할 때도 입만 뻥긋 뻥긋하고, 6학년들 앉을 의자를 나르는 일을 할 때도, '도대체 6학년들이 우리한테 뭘 해줬기에 우리가 이런 고생을 해야 하지?' 생각했다. 심지어는 옆에 있는 애들한테 "야, 넌 6학년들이 마음에 들..
2010.02.22 -
운동장에 나타난 좀비
2009.09.11 금요일 요즘 우리 반 남자 아이들은, 급식을 먹고 난 뒤 학교 뒷마당에 모두 모여, 가위 바위 보로 술래를 두 명 정한 다음 '좀비 놀이'를 한다. 좀비는 인간에서 변형된 끔찍한 모양의 괴물을 뜻한다. 이 놀이에서는 술래 두 명이 좀비 역할을 맡아, 도망가는 아이들을 잡아 차례차례 똑같은 좀비로 만든다. 사실 술래잡기와 다름이 없는데, 좀비라고 하니 오싹해서 더 짜릿하다. 오늘은 평소 때면 제일 먼저 잡혔을 내가, 행운이 따르는지 도망을 잘 쳐서, 오랫동안 잡히지 않고 살아남았다. 나는 아직 잡히지 않은 형빈이, 현국이, 민웅이와 함께, 뒷마당에서 숨을 곳을 찾아 뛰어다니다, 술래가 잘 찾지 않는 운동장으로 넘어갔다. 처음엔 길잃은 양들처럼 운동장을 헤매다가, 운동장 가장자리에 있는 ..
2009.09.14 -
나의 첫 인라인 스케이트
2008.03.22 토요일 어제저녁, 난생처음으로 인라인 스케이트를 갖게 되었다. 나는 내일이 생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들떠서 밤새 잠을 설쳤다. 꿈속에서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다가, 하늘로 날아올라 쌩쌩 달리다 몸에 불이 붙어버리기까지 했다. 아침 일찍 안전 보호 장치를 팔꿈치, 손바닥, 무릎에 단단히 매고, 아빠의 손을 잡고 공원으로 나갔다. 처음에는 공원 트랙 평평한 곳에서 왔다 갔다 하며 균형을 잡았다. 아빠가 앞에 서서 두 손을 내밀어 잡아 끌어주셨다. 발 모양을 일직선으로 하고 서 있으면, 다리가 바깥쪽으로 점점 벌어졌고, 발 모양을 오므리면, 다리가 안쪽으로 모이면서 엉켰다. 그래서 쉬지 않고 발끝을 오므렸다 벌렸다 하는 연습을 했다. 나를 끌어주는 아빠 발보다 내 인라인 스케이트가 더 빨리 미..
2008.03.23 -
둥지
2008.02.11 월요일 도롯가에 잎을 다 떨어뜨려낸 겨울 나무 줄지어 서 있네. 수없이 많은 나무 곁으로 차들이 쌩쌩 스쳐가네. 차가운 바람이 불 때마다 빼빼 마른 나뭇가지들이 힘겹게 떨고 있네. 이제 막 태양은 저물어 도로와 하늘은 포도색으로 물들고 수천 개의 은빛 핏줄처럼 뻗어 있는 나뭇가지 사이로 포도즙이 흘러내린 것처럼 스며들다가 곧 세상은 거대한 암흑으로 변한다. 나는 갑자기 길을 잘못 흘러든 것처럼 불안하다. 빨라지는 걸음 따라 노란 가로등이 하나 둘 켜진다. 저 높이 시커먼 나무 꼭대기에 무엇이 걸려 있네. 비닐봉지가 걸린 것일까? 작은 먹구름이 걸린 걸까? 올라가서 잡아보고 싶네. 꺾어놓은 나뭇가지를 아무렇게나 쌓아 올린 듯 거칠고 칙칙해 보이지만 그렇게 아늑해 보일 수가 없구나! 나도..
2008.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