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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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서 도시락 먹기
2015.03.09 월요일 어제와는 다르게 엄청난 꽃샘추위가 살을 파고드는 월요일이다. 1학년 때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지만, 2학년 들어 큰맘 먹고 신청한 방과 후 야간자습의 첫날이기도 하다. 학교 후문에서 전해 받은 엄마의 도시락을 안고 면학실로 들어가려는데, 대청소 한다고 나가란다. 그러면 면학실에서 나가 도시락을 먹어야 하는데 참 난감했다. 야간자습 전의 석식 신청을 제때 하지 못하여, 내가 유일하게 있을 곳인 면학실을 뺏겨버린 셈이라 막막했다. 날은 어두워지고 학생들은 전부 환하게 불 켜진 교실을 찾아 석식을 먹으러 삼삼오오 모여가는데, 나 혼자 불 꺼진 복도와 계단을 계속 오르락내리락하며 한 바퀴를 돌고 있다. 벌써 지겹고 지나온 사람들을 또 마주친다. 그냥 집에 갈까? 몸이 아프신데 방금 ..
2015.03.16 -
친구와 새옷
2014.02.02 일요일 갑오년 새해다. 동학혁명이 일어난 지 120년 만에 다시 맞는 갑오년! 갑오년 새해를 맞아 내가 제일 해 보고 싶은 것은 새옷을 사는 일이었다. 구정이 지나고 주머니에 불룩한 세뱃돈에 의지하여 태어나서 처음으로 친구와 새옷을 사려고 나섰다. 난 지금까지 내 손으로 옷을 사 본 적이 한차례도 없다. 어떻게 입어야 보기 좋은지, 중고생이 입는 기본적인 옷의 종류를 어디서 사는지 알지 못했다. 함께 옷을 사러 따라와준 친구가 없었다면 정말 막막했을 것이다. 그 친구는 옷을 아주 잘 입는다. 나처럼 돈이 궁하기는 마찬가지지만, 멋부리는데 관심이 많은 친구였고 나의 비루한 옷차림을 보는 걸 괴로워하는 친구라서, 함께 가 옷을 골라줄 수 있겠냐는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었다. 친구는 불광동 ..
2014.02.06 -
땀 비 쏟아지는 체육 시간
2011.04.13 수요일 1교시 시작하기 전이다. 나는 교실에 남아 아직 떠들고 있는 친구들을 뒤로한 채, 시간에 늦지 않게 커다란 고양이에 쫓기는 생쥐처럼, 복도 계단을 2칸씩 뛰어 내려간다. 현관문을 빠져나와 운동장으로 잽싸게 달려나가니, 모래 먼지가 섞인 바람이 불어온다. 새의 부드러운 깃털로 간지르는 것처럼 목이 간질간질하다. 이제 남은 아이들이 모두 운동장으로 후다닥 오고, 체육 선생님께서 저벅저벅 우리 쪽으로 걸어오셨다. 체육 선생님께서 손을 위로 올리시며 "달려~!" 하시자마자, 맨 앞줄부터 아이들은 앞을 향해 주르르륵~ 밀리듯 달려나간다. 그렇게 더운 날씨는 아니었지만, 시간에 쫓겨 교복 와이셔츠 위에 체육복을 덧입다 보니, 금방 땀이 흐르고 몸을 찜통 속에 가둔 것 같다. 그래도 이제는..
2011.04.14 -
꽃보다 귀한 손님
2010.01.09 일요일 교과부에 송고할 기사를 작성하려고 서울 국립과학관을 찾았다. 마침 할머니도 컴퓨터를 배우는데 숙제라며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하셔서 함께 길을 나섰다. 엄마랑 할머니랑 나는 갈 때는 지하철을 타고, 집에 올 때는 버스를 탔다. 우리는 취재를 마치고 뿌듯한 기분으로, 과학관 앞에서 파는 붕어빵을 와작와작 과자 먹듯이 씹어먹었다. 너무 뜨거워 여기저기 팥을 떨어뜨리면서! 그리고 성대 앞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기다리던 272번 버스는 곧 도착하였고, 우리는 버스 안으로 발을 동동거리며 쏙 들어갔다. 버스는 출퇴근 시간도 아니었지만,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할머니는 운전기사 아저씨 뒤편 셋째 자리에 앉으시고, 나와 엄마는 할머니 앞에 서서 덜컹거리는 버스와 함께 휘청거리면서 갔..
2011.01.13 -
영풍문고에서 터진 코피
2011.01.03 월요일 "큼, 킁~!" 갑자기 코가 간지럽고 촉촉했다. 그리고 콧물 같은 것이 조금 새어 나왔는데, 콧물보다는 더 따뜻하고 더 끈끈하지 않고 물 같았다. 나는 왼손 검지 손가락으로, 물이 새는 것 같은 왼쪽 콧구멍을 살짝 훔쳤다. 그러자 이게 웬일인가? 진한 빨간색 액체가 왼손 검지에 묻어나왔다. 그리고 이내 방울방울 눈물처럼 흐르기 시작하였다.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도대체 왜 코피가 나는 것일까?' 가장 먼저 이 생각부터 들었다. 어젯밤 새벽 3시까지, '아홉살 인생', '아르네가 남긴 것', '별을 헤아리며'라는 책을 재밌게 읽었었다. 그래서 오늘 하루는 살짝 감기 기운도 있는 듯 피곤하고 몸이 매우 무거웠다. 아, 그러고 보니 어젯밤에 책을 읽는 중에도 살짝 코피가 났었다...
2011.01.04 -
동생과 샤워를!
2010.07.06 화요일 영우랑 나는 학교 끝나고 나서, 두 시간 쯤 축구를 하고 놀았다. 우리 몸은 사우나 안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땀으로 흠뻑 젖었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벌레가 허물을 벗듯이, 옷을 홀딱 벗고 샤워부스 안에 들어갔다. 나는 먼저 샤워기를 높은데다가 고정하고, 물을 틀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폭포처럼 떨어졌다. 우리는 잡혔다가 풀려난 물고기처럼 몸을 닿는 대로 적시고, 입안에도 떨어지는 물을 한 움큼 물고, "가가가각~!" 한 다음에 풉~ 뱉어내었다. 나는 더 시원한 물로 샤워하고 싶어 수도꼭지를 오른쪽으로 돌렸는데, 영우는 "우게겍~!" 하면서 몸을 웅크리고 덜덜 떨었다. 할 수 없이 미지근한 물로 온도를 맞추었다. 나는 이번엔 샤워기를 들고 얼굴부터 물을 맞고, 한 바..
2010.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