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을 걸어온 그대에게

2014. 11. 12. 17:45일기

<12년을 걸어온 그대에게>

2014.11.12 수요일


투두두둑~ 닫지 않은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냉기와 빗소리에 잠을 깬다. 가을이 언제 왔다 갔는지도 모르게 이젠 겨울인가 보다.


새벽 5시 50분, 아직 아침이라기에는 어스름이 전혀 가시지 않았다. 밤새 비가 와서 그런지 추위와 구름의 그림자가 창밖을 가득 메우고 있다.


나는 이 시간이 좋다. 이 세상에 나만이 깨어 있는 듯한 착각이 드는 시간, 의식을 가지고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시간, 어쩌다 한 번씩 새벽의 냄새를 흠뻑 맡을 수 있는 이 시간이 참 좋다.


하지만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의 수능을 이틀 남긴 오늘이기도 하고, 나와 수능 사이가 이제 얼마 남지 않게 느껴지는 오늘은, 흘려보냈던 많은 나날처럼 거리낌 없이 여유를 즐기기가 어렵다.


불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마 나 말고도 모든 고등학생이 그렇지 않을까? 당장 내일 수능을 치르는 수험생들은 말할 필요도 없으며, 성적의 높고 낮음에 사활을 거는 학생, 남들이 뭐라던 공부에 매진하는 학생, 예체능 준비로 분주한 학생, 취업 준비하는 학생, 하물며 그냥 포기한 듯 시간을 흘려보내기만 하는 학생이라 할지라도, 어찌 불안하지 않을까?


고등학교 3학년, 12년 교육과정의 끝자락. '사회'라는 곳으로 드디어 첫발을 내딛고, 이제는 정말 누구 하나 자신의 미래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없는 시기, 친구들 사이에서 사회적 계급이 표면적으로 분화되는 시기, 이런 심각한 말들을 붙이지 않아도 당장 2년 후에는 교복을 입을 일이 없다는 사실만 생각해도, 매일 나오는 급식이 없다는 것만 생각하여도 정신이 아득해진다.


대구 사는 나의 사촌 형은 바로 내일 수능시험을 본다. 지금 나는 적막한 새벽 안갯속에서 체온이 가시지 않은 이불 속에 누워 잠깐의 여유를 즐길 수 있지만, 우리 사촌 형에게는 자신의 12년 시간을 뒤로한 채, 좋든 싫든 이제는 걸어가야 하는 수능시험장과 1초 1초, 가까워지는 초침이 야속하기만 한 시간일 것이기에 나는 그의 생각을 한다. 동시에 '학교'라는 틀에서 처음으로 벗어나서, 자유와 책임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모든 수험생의 생각을 하고, 2년 뒤에 내 모습을 생각한다.


당장 나 자신의 미래도, 아직 걷히지 않은 이 비구름과 새벽안개 속처럼 흐릿하고 어둡기만 하고, 전국의 학생 그 누구보다도 낫다고 말할 수 없지만, 이 말만은 꼭 전해주고 싶다. 당장 수능시험에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는 결과가 나왔다 한들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자기 자신을 자책하지도 말고, 자기연민에 빠져 허우적거리지도 말라고. 형들이 지금까지 숨 쉬고, 먹고, 떠들고, 놀고, 울고, 웃었던 12년은 결코 시험 한번으로 우위를 매길 수 없는 소중한 가치이고, 누구의 시간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온전한 자기 스스로의 것이므로...


수학능력 시험은, 대학이라는 것은, 원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활용할 수 있는 도구일 뿐이지, 결코 학교생활 12년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육이 과정보다는 결과만을 중시하는 풍토인데다가, 대학의 서열화에 맞춘 획일화된 교육방식, 적자생존의 가치관으로 무장해야 하는 가혹함을 담고 있기에, 12년 동안 마음 한구석은 억눌리고 상처받고 찌그러져 이제는 아픈 줄도 모르는, 겉만 멀쩡한 학생이 거의 대부분일 것이다.


수험생 선배들이 이제 학교라는 길을 벗어나 나아갈 길이, 경쟁자가 너무도 많아 짓눌리고 숨이 막히는 길이던지, 아무도 가지 않아 온몸을 내던져 개척해야 하는 길이던지간에, 이제는 정말 하고 싶어 하는 일에 대해 스스로 솔직해졌으면 한다. 지금까지의 12년 인생처럼, 앞으로의 삶도 누구 하나 보이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은 없기에,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가치있게 여기고, 또 수능이 끝난 뒤라도 자기에게 중요한 가치를 찾았으면 좋겠다.


자신이 보내온 학교생활 12년에 대해 웃으며 구김살 없이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았으면 얼마나 인간적일까? 그저 이렇게라도 살아남은 것에 정말 수고했다고, 대단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선배들의 시작에, 12년의 마무리에, 어떤 결과가 있던지, 똑같은 크기의 박수를 쳐주고 싶은 아침이다.


사진출저-http://www.bottong.com/bbs/board.php?bo_table=bbs7&wr_id=3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