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스크로 가는 기차 - 부모님께 추천하고 싶은 책

2013. 7. 31. 00:57독서

<곰스크로 가는 기차>- 부모님께 추천하고 싶은 책

2013.07.30 화요일


중학교 3학년, 짧은 여름방학이 흘러간다. 그러나 긴 겨울방학보다 더 천천히, 더위 먹은 거북이가 땅바닥에 앉아 쉬는 것처럼 느긋느긋 지나간다. 방학 시작한 지 3일 째 접어드는 날부터 나는 다시 학교에 가고 싶다고 계속 내뱉을 정도로 무료함을 느끼고 있었다.


더위와 땀띠와 습기로 정지된 시간속에서 우연히 손에 잡힌 귀한 책이 있다. 프리츠 오르트만의 독일 단편소설집 <곰스크로 가는 기차>다. 독일문학 번역에 일가견이 있는 북인더갭 출판사의 대표, 안병률 아저씨께서 직접 번역하신 책이다.


작가 이름, 프리츠 오르트만!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꿈을 꿀 수 있는 곳, 곰스크! 참 이름이 낯설고 어렵다. 첫장을 여는 순간부터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까지 이책은 내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아주 오랜만에 앉은 자리에서 <곰스크로 가는 기차>부터 시작해서 8편의 단편소설에 푹 빠져 다 읽어버렸다. 사실 내가 이책의 내용을 이해하기에는 좀 어려웠는데도 한숨에 다 읽었다는 것이 신기하다. 전개가 빠르거나 감각적인 내용이 눈을 끄는 것도 아니었지만, 마치 책의 내용이 그냥 흡수되는 것처럼 지루하지 않았다. 그리고 책의 내용을 한번에 보고 이해하기에는 내 머리가 안 좋은 탓인지, 책을 읽고 난 다음 생각을 참 많이 했다.


어릴 때부터 주인공은 아버지로부터 곰스크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고, 곰스크를 상상하며 언젠가 꼭 멋진 희망의 도시 곰스크로 갈테야 하는 게 인생의 목표였다. 그리고 그 인생의 목표는 결혼식을 올리는 순간 이루어지려고 한다. 결혼식 직후 부인과 곰스크로 가는 여행을 계획했던 것이다. 드디어 엄청나게 비싼 차표를 끊고 곰스크로 가는 특급열차 1등석에 오른 주인공은 가슴이 부풀어 터질려고 한다. 그러나 부인은 곰스크는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고, 상상과 달리 그렇게 좋은 곳이 아니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뚱하고 창백해졌다. 잠시 휴식할 수 있는 시골 간이역에 내려 식사를 하고, 마을 언덕에서 산책을 하던 중, 곰스크로 가기 싫은 부인과 주인공은 옥신각신 하다 기차를 놓쳐버린다.


부인은 후련해 하고 주인공은 불쾌해 했다. 비싼 차표를 끊느라 두사람은 돈을 다 써버렸고, 이곳의 간이역은 기차가 규칙적으로 정차하는 곳이 아니라, 언제 다시 올 지 모르는 기차를 기다리며 두 사람은 이곳에 눌러앉는다. 부인은 이 작은 시골 마을에서 일도 하고 살 방도 마련하고, 이웃과 친하게 지내며 행복하게 잘 적응해 나간다. 오로지 주인공만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애타게 기다릴 뿐! 세월이 흘러 과연 주인공은 기차를 탔을까? 탈 수가 없었다. 그동안 자식이 둘 생기고, 주인공은 머슴살이를 하다가 선생님으로 취직하여, 집도 얻고 서재도 생기고 안정적으로 살게 된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는 이제 먼 얘기가 되었을 뿐, 주인공의 가슴 속에서만 이루지 못한 슬픈 계획으로 남는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마을에서 제일 연로하신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나도 한때는 떠나려고 했지만, 지금은 떠나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못 탄 것은 결국 당신이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그 삶은 그렇게 나쁜 삶이 아니며 만족할 만한 삶이다!'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얼마 전에 본 뉴스 기사가 떠올랐다. 인생에서 가장 불행하다고 느끼는 나이는 50대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50대가 되도록 자신의 꿈이나 야망이 이루어진 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이 주된 이유라고 한다. 난 이책이 그렇게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 불행을 느끼는 사람들이 읽으면 많은 도움이 될 책이라고 느낀다.


그리고 나는 우리 엄마, 아빠를 생각한다. 50대를 바라보는 우리 엄마, 아빠의 표정은 고달퍼 보인다. 부모님의 표정을 보면 나는 그분들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 두분은 누구보다 이상가인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점과, 어렵게 가게를 꾸렸는데 재건축으로 쫓겨 날 위기에 처했다가, 거의 전재산을 잃고 할머니 집에서 신세를 져야 한다는 미안한 현실, 두분은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 우리를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마음, 다시 재기를 꿈꾸지만 현실의 벽은 너무 높고... 부모님 얼굴에 내려앉은 실같은 주름살과 다크서클로 패인 눈 속에, 아직 부모님의 곰스크가 강력하게 살아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곰스크에 대한 열망이 크면 클수록, 현실이 곰스크와 더 멀어질수록, 부모님은 저항하는 것 같다.


나는 아빠, 엄마께 위로를 드리고 싶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완전히 이루지 못했어도, 우리의 삶은 결국 우리의 결정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이야기해 드리면 위안이 될까? <곰스크로 가는 기차>에서 늙은 선생님이 주인공에게 했던 말을 빌어 "아빠, 엄마가 원한 것이 두분의 운명이고, 두분의 운명은 아빠, 엄마가 원한 것이랍니다!" 하면 마음이 홀가분해질까? 아니, 아빠, 엄마께 그냥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꼭 읽어보세요!' 할란다. 나는 8월 7일이 되면 16살이 된다. 나이가 그렇게 많지 않지만, 시간을 무의미하게 허비하고, 나도 모르게 그 무의미하게 보낸 시간들을 후회하는데 쓴 것을 고백한다. 만약 이책을 좀 더 빨리 읽었더라면 그 멍청한 사실을 빨리 인정하고, 더 이상 시간낭비 하지 않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철학적인 면은 좀 부족하지만, 느끼는 것은 많으니까! 

 

혹시 진짜로 곰스크라는 지명을 가진 마을이 있을까? 호기심이 들어 당장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다. 역시 곰스크라는 도시는 없었지만, <곰스크로 가는 기차>에 대한 리뷰는 많이 있었고, 곰스크라는 이름을 가진 펜션도 있었다. 펜션 주인까지 영감을 얻어 곰스크란 이름을 짓다니, 확실히 유명한 책이로구나. 좋은 책은 정말 철이 들게 하는구나. 사실 아직도 이해가 안 가는 내용이 있는데, 럼주차는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미국에서 온 부자의 이야기는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건지, 다시 한번 독파하려 한다. 현재 나에게 있어서 가장 가까운 곰스크란, 이책의 모든 내용을 이해 하는 일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