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이가 코피 흘린 날

2011. 6. 25. 09:00일기

<풀잎이가 코피 흘린 날>
2011.06.22 수요일

오랜만에 공부를 한다. 엄마와 나, 내 친구 풀잎이 이렇게 셋이서 사직 도서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한 열람실에 엄마는 좀 멀리 떨어져서, 나와 풀잎이는 마주 보고 앉아 기말고사 준비를 했다.

엄마까지 도서관에 오게 된 사연은 이렇다. 요즘 나는 학교 끝나고 풀잎이와 쏘다니며 놀았다. 뭐하고 노냐면 그냥 풀잎이랑 함께 도로와 골목길을 배회하면서 수다도 떨고, 계란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를 쓰다듬어주며 논다.

풀잎이는 귀엽게 생겼는데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어서 조금 무뚝뚝해 보이는 게 특징이다. 그래도 나는 안다. 풀잎이가 맑은 영혼을 가졌다는 것을. 주위에서 욕을 안하는 애는 풀잎이 밖에 없으니까! 그런데 엄마는 언젠가부터 내가 기말고사가 다가왔는데도 별로 열심히 준비하지 않고, 풀잎이랑 놀다 집에 들어오는 것을 걱정하신 모양이다.

그런데 나는 엄마의 걱정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마침내 엄마께서는 나와 풀잎이를 도서관으로 불러내셨다. 엄마가 떡 버티고 앉았으니 어디로 도망을 가겠는가? 우리는 할 수 없이 문제집을 풀었다. 풀잎이는 아무 것도 안가져와 내가 국어 문제집을 빌려주었다. 나는 수학을 풀었다. '으~ 으아아~!' 오랜만에 한자리에 오래 앉아있으려니 좀이 쑤시고 몸이 뻐근했다.

어깨를 돌리고 기지개를 크게 켜면서, 몸을 풀어주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제 시험은 1주일 남았는데, 별로 준비한 것이 없어서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문제를 풀었다. 도서관의 공기는 시원하고 깨끗하며 속을 많이 비워주는 느낌을 주었다. 공부하는 중에 풀잎이와 책상 틈으로 노트를 찢어 이야기를 주고 받고 하였다. 중간에 풀잎이가 나에게 쪽지를 보내는데, 그때 엄마가 오셔서 딱 걸렸다.

엄마는 처음에는 화를 내셨지만, 우리가 반성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것을 보시고는, 부드럽고 달달한 음료수도 한 캔씩 사주셨다. 그렇게 부드러운 느낌의 음료수를 꿀꺽꿀꺽 들이키며 수학 필기를 계속 하는데, 갑자기 풀잎이가 손으로 코를 싸쥐고 일어나는 것이었다. 풀잎이 손가락 사이로 삐져나오는 붉은색 물을 보고 나는 풀잎이가 코피를 흘린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조금 놀라서 비상용으로 가져온 휴지를 꺼내어 풀잎이와 함께 화장실로 들어갔다. 나는 피묻은 풀잎이의 손과 옷을 살짝 닦아내고 휴지로 코를 막아주었다. 필립이는 꼭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다시 자리에 앉아 공부를 시작했지만, 나의 마음은 너무 벅찼다. 친구들 사이에서 학원도 안다니고 놀기로 유명한 우리 두명이 도서관에 와서 열심히 공부하다 코피까지 쏟다니! 만약에 나혼자 그랬다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 테지만, 친한 친구와 이런 일을 겪으니 꼭 아프리카의 원주민에게 신앙을 전도한 것 같은 성취감이 들었다.

풀잎이가 코피 흘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