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집에서 옷 말리기

2010. 2. 25. 08:55일기

<친구 집에서 옷 말리기>
2010.02.22 월요일

"아, 이게 뭐야? 다 젖었잖아!", "아, 엄마한테 뭐라고 하지? 이런!" 석희와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307동 문앞, 계단에 앉아서 고민하고 있었다. 내가 집에서 가져온 축구공으로 놀다가, 그만 서로서로 물을 튀기며 장난을 친 것이다.

장난을 친 뒤 우리는 온통 물 범벅이 되어 있었다. 우리가 장난치는 걸 바라보던 영우는, 고개를 저으며 골치 아프다는 듯이 눈을 감고 "하~!" 한숨을 내쉬었다.

겨울 동안 꽁꽁 얼었던 눈이 슬슬 녹아서, 단지 전체가 조금이라도 움푹 팬 곳에는 물로 가득 채워지고, 맨땅에도 물구덩이가 여러 곳이 생겼다. 그 속에서 우리는 철벅 철벅 공을 발로 차고 놀았으니, 꼴이 말이 아니었다. 내 바지는 물에 젖어 무거워졌고, 양말도 축축해지고 신발 안에까지 물이 차서, 걸을 때마다 서해안 갯벌을 걷는 느낌이었다.

석희도 양말과 털신발이 엉망이 되고, 남색 잠바에 물 얼룩이 온통 생겼다. 우리는 고민을 하다가 결국 석희집으로 들어가 옷을 말리기로 하였다. 이 상태로 집에 들어가면, 막 새 옷을 갈아입고 나왔는데 엄마가 화를 내실 것이 분명했고, 엄마가 화를 내시면 건강에 안 좋을 텐데 이를 어쩌나? 마침 석희는 엄마, 아빠 두 분 다 나가셨고, 곧 학원에 가야 해서 석희네 집에서 잠깐 옷을 말리기로 하였다.

나는 석희 집으로 가는 사이에 젖은 바지가 너무 꿉꿉해서, 겉에 바지를 아래로 내려 발목에 족쇄처럼 걸치고 내복 바지를 내놓고 다녔다. 난 마치 똥이 너무 마려워 실수로 바지에 조금 싼 사람처럼, 펭귄처럼 양다리를 벌리고 어기적, 어기적~ 하며 걸었다. 석희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나는 잠바와 조금 젖은 후드 티와, 걸레처럼 변한 바지와 진짜로 걸레처럼 보이는 양말을 벗어서, 석희 옷과 같이 전기 난로 앞에 오징어를 말리듯이 늘어놓았다.

석희와 나는 신세 한탄을 하며 "니 탓이야!", "아니, 니가 먼저 그랬으니까 니 탓이야!" 하면서 투닥투닥 싸웠다. 영우는 눈썹을 찌푸리며 우리를 말리고, 그때 민석이가 석희집에 놀러 와 블루마블 보드게임을 함으로써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우리는 나와 영우, 석희와 민석이로 팀을 짜서 블루마블 게임에 푹 빠져 버렸다. 그리고 아까전에 싸웠던 것은 완전히 잊어버린 듯 했다.

그 사이에 전기 난로에 오징어 굽는 것처럼, 올려놓았던 양말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영우는 "아이구! 어떻게!" 하며 얼른 양말을 난로에서 떼어내었다. 양말은 정말로 오징어구이처럼 김이 모락모락 났다. 뒤쪽으로 뒤집어보니 갈색으로 진하게 타고 있었다. 영우는 그걸 만져보고 "이제 어쩔거야?" 하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진흙이 묻었다고 해야지! 그런데 웬 진흙이 이렇게 따뜻하고 안 빨아지냐고 하시면 어쩌지!"라고 했는데, 아이들은 모두 통쾌하게 "푸하하!" 웃었다.

봄 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