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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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말 고사를 마치고
2007.12.05 수요일 드디어 기말 고사가 끝났다. 얼마나 이날을 기다렸는지 모른다. 3학년의 마지막 기말 고사를 후회 없이 보고 싶어서 일기까지 미뤄가며 열을 올렸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이번 기말 고사도 아쉬운 점이 있다. 그건 사흘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엄마한테 혼나고 걱정까지 들어가며 몰아붙인 벼락치기 공부였다. 내가 왜 그랬을까? 만약 이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3학년 1년이 허무하게 가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나를 벼락공부로 몰아간 것 같다. 과정은 끔찍했지만 시험날인 오늘만큼은 여유를 가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나는 아침부터 자신만만했다. 자신에 넘치다 못해 심장이 바람을 꽉 채운 자동차 바퀴처럼 팽팽해져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나는 가방 속에 아무것도 넣지 않았다...
2007.12.06 -
길 잃은 양들
2007.11.30 금요일 박영은 선생님께서 이틀째 안 나오고 계신다. 어제는 교사 연수 때문에 못 나오셨고, 오늘은 작은아버지께서 돌아가셔서 못 오셨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반은 다른 때보다 시끄럽고 어수선하다. 한 교시마다 다른 선생님들께서 교대로 봐 주시기는 하지만, 틈만 나면 여기저기 흩어져서 모이를 쪼고 짹짹짹 떠드는 참새들처럼 질서가 없다. 단, 1학기 임시 선생님이셨던 서미순 선생님이 들어 오실 때만 빼고. 4교시 체육 시간이 되자 우리 반은 어떤 선생님이 오실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선생님은 들어오지 않으셨다. 우리 반 아이들은 점점 떠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속닥속닥 재잘재잘하던 소리가 갈수록 거세게 번지면서 툭탁툭탁 캉캉캉 천둥소리처럼 바뀌더니 교실이 코끼리 발 구르듯..
2007.12.01 -
사탕
2007.11.28 수요일 학교에서 영어 특강이 있는 월요일과 수요일은 수업을 마친 후 교실 청소를 두 명씩 번갈아가며 하는데, 오늘은 5학년 예슬이 누나와 내 차례다. 누나와 나는 교실을 반으로 나누어 비질하였다. 나는 책상과 의자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가며 먼지와 종이 쪼가리를 싹싹 쓸어담아 쓰레기통에 버렸고, 흐트러진 책상을 바로잡아 줄을 맞추었다. 청소가 끝나고 영어 선생님께서 잘했다고 막대 사탕 한 개씩을 주셨다. 나는 "고맙습니다!"하고, 사탕을 싼 종이 껍데기를 벗겨 잠바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사탕을 입에 물고 피아노 학원으로 가는데 사탕이 너무 달콤해서 나도 모르게 "음~"하고 눈을 감았다. 구슬 같은 동그란 사탕 알을 입 속에 넣고 굴려가며 먹었는데, 딸기 밀크 셰이크 맛이 혀끝부터 입 안..
2007.11.29 -
얘들아, 가지마!
2007.11.25 일요일 오늘은 내가 큰맘 먹고 반 친구들을 초대하였다. 원래는 우석이, 우석이 동생 서진이, 민석이, 현승이, 재완이, 낙건이를 초대하려고 했는데, 우석이는 갑자기 어디 갔는지 전화 연락도 안 되고, 집에도 없었고, 민석이는 목욕탕 간다고 못 왔다. 그래서, 현승이, 재완이, 낙건이만 우리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 놀다가 집안에만 있는 것이 답답해서, 공놀이를 하려고, 축구공을 가지고 공원으로 나갔다. 아이들은 풀밭에서 놀고 싶어 했는데, 내가 청소년 수련관 앞에 있는 운동장에서 놀자고 우겨서 아이들을 운동장으로 데려갔다. 그런데 운동장에서는 이미 동네 형들이 자리를 차지했고, 축구 연습이 한창이었다. 현승이가 "역시나 그럴 줄 알았어!" 하면서, 모두 툴툴거리며 발걸음을 ..
2007.11.26 -
얼음 땡
2007.11.23 금요일 급식을 다 먹고 나서 복도를 돌아다니고 있을 때, 희지가 갑자기 나타나서 "상우야, 얼음 땡 놀이하자!" 그래서 "음, 좋아, 그럼 우석이도 같이 하자!" 했다. 우리는 비를 피해 본관과 별관을 이어주는 통로를 찾아갔다. 그런데 이미 그 통로에는 5,6학년 형들이 모여 잡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눈치가 보여 다른 곳으로 갈까 생각했지만 희지가 용감하게 끼어들어 자리를 잡았다. 내가 먼저 술래다. 우석이는 쉽게 도망가지 않고 한 곳에 서서, 팔짱을 끼고 몸을 건들건들 흔들며 나 잡아봐란 듯이 여유를 부렸다. 내가 달려가 바로 코앞까지 손을 뻗었을 때, 우석이가 "얼음!"하고 외쳤다. 희지는 형들이 잡기 놀이 하는 사이를 너구리처럼 샥샥샥샥 빠져나가며 열심히 도망을 다녔다. 빠른 ..
2007.11.23 -
눈 온 날
2007.11.21 수요일 어제 아침 학교에 가려고 집을 나섰는데 엄마가 뒤에서 "상우야, 어젯밤에 첫눈이 왔어! 공원이 하얘!"라고 외치셨었다. 나는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와아아아!" 소리 지르며 뛰어나갔었다. 오늘 아침에도 학교에 가려고 옷을 입고 있는데 엄마가 베란다 창문을 열며 외치셨다. "상우야, 오늘은 어제보다 더 많이 쌓였어. 어제처럼 눈이 온 듯 만 듯 어정쩡하게 쌓여 있지 않고 온 세상이 다 눈밭이야!" 나는 또 깜짝 놀라 얼른 베란다로 가서 "와아아아!" 하고 소리쳤다. 나는 내 모습이 꼭 영화에서 같은 장면을 두 번 찍는 것 같이 느껴졌다. 놀랍게도 우리 동네는 하얀 카페트 같은 흰 눈으로 깨끗하게 덮여있었다. 마치 2년 전에 보았던 영화 에 나오는 나니아 세상 같았다. 나니아는 ..
2007.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