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12)
-
8월의 왕푸징 거리
2014.08.09 토요일 '중국'하면 떠오르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네 발 달린 것은 의자 빼고는 다 먹는다!'라는, 어릴 적 들어왔던 중국인의 폭넓은 식습관이다. 북경 여행을 온 내내, 나는 밥 먹으러 간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머릿속으로 온갖 상상을 했다. '메뚜기 볶음? 말벌 조림? 풍뎅이 튀김? 생바퀴벌레?' 같은 끔찍한 상상을 하며 밥을 기다렸다. 다행스럽게 모두 평범한 식당에 걸맞은, 평범함이라는 범주 안에 넣을 수 있는 소박한 밥과 기름진 반찬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내 앞에 펼쳐져 있는 이 왕푸징 시장 골목에서는 '평범함'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아주 특이한 음식들이 많았다. 입구에서부터 짭조름하고 찌릿찌릿한 향신료 냄새가 진동하며, 꼭 콩나물 지하철에서 시장판이 열..
2014.08.13 -
추운 골목길
2010.12.15 수요일 오후 4시쯤, 나랑 영우는 그냥 산책할 생각으로 밖으로 나왔다. 오늘 아침, 날씨가 매우 춥고 감기 기운이 있어 학교에 가지 못하였다. 오늘은 교과부 블로그 원고 마감일인데, 그 바람에 나는 잠을 푹 자고 기사를 여유롭게 송고할 수 있었다. 매번 기사를 쓸 때마다 느끼는 건데, 글을 격식에 맞추어 쓴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그러나 엄청 재미있고 보람 있다. 기사를 송고하고 오랜만에 끙끙거리며 누워 빈둥거리다가 엄마가 해준 카레를 든든하게 먹고 나왔다. 그런데 장난이 아니고 내 귀는 1분도 못 견디고 얼어서 터져버릴 것 같았다. 세상에나! 나는 잠바 속에 얇은 옷 두 개만 껴입고 목도리를 하고 나왔는데, 잠바가 내 몸보다 살짝 큰 것이 문제였다. 큰 잠바를 입어서 허리..
2010.12.16 -
나로호야! 용기를 잃지 마!
2010.06.10 목요일 나는 오늘 엄마가 전화로 말해주기 전까지는, 나로호가 발사된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자전거를 타고 밖에서 놀던 중, 엄마에게 휴대전화가 왔다. "10분 뒤에 TV에서 나로호가 발사한다는데 보지 않을래?" 사실 나는 나로호, 처음 발사할 때부터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이상하게도, 이번 재발사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은 복잡한 감정이 엉켜버린 국수처럼 밀려왔다. 결국, 발사 4분 전 집에 부랴부랴 자전거를 끌고 헉헉거리면서 들어왔다. 엄마는 나로호 발사가 생중계되는 TV를 켜놓고, 작은 식탁을 펴서 냉면을 차려놓고 계셨다. 냉면을 먹는 동안, 4분이라는 시간은 참 빠른 속도로 흘러갔다. 발사 전, 30초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자, 나는 입안에 ..
2010.06.11 -
하늘의 눈물
2010.05.24 월요일 지금은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있다. 엊그제 저녁부터 내리던 비가, 아직도 하늘을 깜깜하게 덮어버리고 있다. 꼭 1년 전 돌아가신 그분을 애도하듯이 말이다. 어린 손녀 딸과 함께 자전거를 타면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에 반항이라도 하듯, 개구쟁이 옆집 할아버지처럼 푸근하게 웃어주고, 나이 어린 학생에게도 진심으로 고개 숙여 인사하셨던 그분! 그분을 잃고 나서야 후회하며, 온 국민이 오늘 내리는 비처럼 펑펑 울었던 날이 바로 1년 전이다. 그날, 세상에 지진이 난 것처럼 충격적인 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셨던 그날! 내가 처음으로 아빠의 눈물을 보았던 날이었다. 아! 사실 나는 그분이 대통령이었을 땐, 너무 꼬맹이였다. 그래서 그냥 인상 좋은 대통령 아저씨로만 생각했었다. 내가..
2010.05.26 -
새 안경
2009.12.17 목요일 바람이 살벌한 저녁, 하아하아~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나는 엄마와 함께 상가에 새로 생긴 안경집 문을 힘껏 밀었다. 안경집 벽을 따라 쭉 늘어선 네모나고 기다란 유리 상자 안에는, 온갖 종류의 보석 같은 안경테들이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 어젯밤 자려고 안경을 벗다가, 며칠 동안 간당간당했던 오른쪽 테가 툭! 하고 떨어졌다. 그래서 오늘 안경테에 테이프를 감고 썼는데, 그것도 떨어져 버려 한쪽 테만 붙잡고 해적이 된 기분으로 수업을 들어야 했다. 주인아저씨는 "네, 아드님하고 다시 오셨군요~" 하며 밝게 맞아주셨다. 엄마가 오후에 아이 지킴이 활동을 하시다가, 내 부러진 안경을 고치러 안경점에 들렀는데, 심하게 부러져 고칠 수 없다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엔 테를 바꾸러 나와..
2009.12.19 -
찬솔아, 미안해!
2009.08.05 수요일 해가 끓는 듯한 오후, 영우와 함께 학교 도서관에서 대출했던 책을 반납하고, 다시 새책을 빌려나오는 길에, 배가 출출해서 불타는 토스트 가게에 들렀다. 토스트를 한 개씩 먹고 막 나가려는 참에, 가게를 먼저 나간 영우가 밖에서 손뼉을 치면서, 누군가에게 엉덩이를 샐록샐록 흔들고 있었다. 그리고 카랑카랑 찢어지는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나는 서둘러 가게에서 나와 무슨 일인가 두리번거렸다. 그랬더니 가게 앞에는 우리 반 친구 찬솔이가 있었다. 자전거를 탄 찬솔이는, 이제 바로 우리 앞에 날렵하게 자전거를 세우는 중이었다. 운동을 잘하는 근육질의 찬솔이는, 자전거를 탄 모습이 오토바이를 탄 것처럼 늠름해 보였고, 말을 탄 사람처럼 굳세 보였다. "상우야, 마침 너희 집에 다녀오는 길..
2009.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