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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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날의 라틴 댄스
2009.11.22 일요일 포천 허브 아일랜드 연못은 벌써 살얼음이 얼었다. 추워서 덜덜 떨며 걷다가, 우리는 라틴 댄스 공연을 하는 임시 야외무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야외무대를 둘러싼 울타리 바깥에서 공연을 지켜보았다. 나무로 만든 무대 끝 사람들 앞으로,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어린 무용수들이 줄지어 걸어나왔다. 모두 석고상같이 하얀 얼굴에 고양이처럼 길게 올라간 눈 분장을 하였다. 남자 아이들은 가슴이 파진 검은 블라우스에 꽉 끼는 검은 바지를 입었고, 여자 아이들은 화려한 비키니 수영복같이 거의 살이 드러나는 무대 옷을 입고 나왔는데, 바람이 차가운데다 빗방울까지 날려서 참 딱해보였다. 대부분 키는 나보다 조금 커 보이는데, 몸은 내 반쪽만큼 말랐을까? 추워서 그런지 긴장해서 그런지 다 ..
2009.11.23 -
책상에게 미안해!
2009.07.08 수요일 난 오늘 엄마에게 딱 걸렸다. 그동안 내 방을 청소하지 않고, 기말고사가 끝나면 정리하겠다고 얼렁뚱땅 미루어오다가, 결국 엄마를 폭발하게 한 것이다. 엄마는 쓰레기가 쌓여 날파리가 맴도는 내 책상을 부숴버릴 듯한 기세로 화를 내셨다. 나는 한바탕 혼이 난 다음, 묵묵히 내 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우선 내 책상을 한참 바라보다가, 흐음~하고 한숨을 쉬었다. 햇빛을 받지 못한 낡은 성 안에, 난쟁이들이 마구 타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계단처럼, 책, 공책, 교과서, 종이 쪼가리, 휴지들이 겹쳐서 층층이 쌓여 있었고, 책더미 사이로 생긴 구멍에선 금방이라도 생쥐들이 들락날락할 것 같이 지저분했다. 나는 허리를 조금 굽혀서 책상을 자세히 살폈다. 그리고는 월요일마다 집앞에 재활용품..
2009.07.09 -
그리운 사람
2009.06.12 금요일 피아노 학원 끝나고 돌아오는 길은, 오늘따라 따뜻하고 편안한 주황색 햇살이 세상을 물들이고 있었다. 나는 학원버스 안에서, 3학년 여자 동생 아이랑 여느 때처럼 끝말잇기를 하며 쿡쿠~ 즐겁게 웃고 있었다. 그러다가 무심코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나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고, 내 몸의 혼이 일부 빠져나가는 줄 알았다. 왜냐하면, 창문 바로 옆 인도에 아주 낯익은 사람의 모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학원버스 바로 옆 잡힐 듯한 거리에서, 조금 앞서 자전거를 타고 여유 있게 달리는 아저씨는, 누군가를 꼭 빼닮았다. 챙이 있는 밀짚모자를 헐렁하게 얹어 쓰고, 하얀색과 하늘색 체크무늬 남방에 허름한 바지를 입고, 바람을 느끼듯 페달을 밟았다 놓았다 하며 그림처럼 달리는 그 사..
2009.06.13 -
2007.04.27 앞자리
2007.04.27 금요일 6교시가 시작됐다. 선생님께서는 "이제부터 자리를 바꿀테니 선생님이 부르는 사람은 교실 오른쪽 벽으로 나와 모이세요'" 하고 말하셨다. 아이들이 다 나오자 반대로 선생님이 지정해 준 자리에 앉는 순서가 왔다. 드디어 선생님께서 나의 자리를 지정하여 주셨다. 그런데 왠지 뜻밖이었다. 나는 키가 커서 뒷자리에 속하는 데 앉을 줄 알았는데, 앞자리에 앉게 된 것이다. 그것도 맨 앞자리에! 나는 선생님께서 왜 그런 생각을 하셨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조금 뒤 선생님께서 나의 생각을 읽으셨는지 "상우, 앞자리에 앉아서 지난 일 반성 좀 해." 하셨다. 나는 드디어 기억했다. 원래 앞자리는 말썽을 많이 피우고 혼이 많이 나는 애들이 앉는 자리였다. 나는 "흐음" 하고 반성하는 마음을 ..
2007.04.27 -
2006.09.07 운동회 연습
2006.09.07 목요일 요즘 들어 선생님들께서 다른 때보다 유달리 바빠지셨다. 아침 조회 시간에 2학년 전체가 운동장에 모여 뉴 둘리송 연습을 하였다. 2학년 전체가 모이니 와글 와글 시끌벅적 하였고 각 반 선생님들은 흐트러진 아이들을 바로 잡느라 남의 반도 혼내셨다. 나도 이상한 소리를 지르고 간격이 벌어져서 혼이 났다. 연습이 시작 되자 우리 모두가 군대같이 움직였다.스피커에서는 둘리송 음악이 울려 퍼졌고 아이들의 발소리가 쿵쿵쿵 운동장을 때렸다.그런데 준영이는 다른 노래를 부르면서 하는둥 마는둥 뒤를 보고 자꾸 발길질을 했다. 더운 바람이 불고 땀도 났지만 모두 함께 할 수 있는 운동회 연습이 나는 즐거웠다.
2006.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