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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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 나라
2007.11.04 일요일 날씨도 좋고 햇빛이 아까워 우리 가족은 물과 김밥과 새우깡을 싸가지고 서둘러 공순영릉으로 갔다. 공순영릉에 가니 많은 가족들이 가을을 느끼려고 우리처럼 나무 냄새도 맡고 돗자리를 펴고 앉아 햇볕을 쬐고 있었다. 공순영릉 안의 산책 길은 노랑, 주황, 갈색, 황금 빛 나뭇잎들이 카페트처럼 촤르르 깔려 있었는데, 어떤 곳은 발이 움푹 빠지도록 쌓여서 혹시 수렁이 아닐까 겁이 나기도 하였다. 겁이 없는 영우는 온 공원 안을 내 세상이다 하고 벼룩이처럼 폴짝 폴짝 뛰어다녔다. 두 팔을 양 옆으로 날개처럼 펼치고 "부엉 부엉!" 외치며 뛰어다니는 영우의 모습이 숲의 왕자처럼 자유로워 보였다. 그 모습이 부러워 아픈 내 신세가 처량하게만 느껴졌고, 피톤 치드라도 마음껏 들이마시자고 코로 ..
2007.11.07 -
2007.10.27 말과 함께 달려요
2007.10.27 토요일 원당 서삼릉과 종마 목장 입구는 형제처럼 나란히 붙어있었다. 서삼릉 입구는 한산했고, 종마장 입구는 사람들로 바글바글 넘쳐났다. 나는 여기까지 사람들에게 치이면서 힘들게 걸어왔기에 또 사람들로 북적대는 종마장 입구를 보자 징그러워져서 서삼릉으로 들어가자고 했다. 그런데 아빠 엄마는 종마장이 더 좋다며 그리로 들어가버렸다. 하지만 나는 곧 종마장이 입장료를 받지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사람들 그늘을 따라다니며 힘겹게 걸어오르다 커다란 단풍 나무가 그늘을 드리워주는 벤치에 앉아서 좀 쉬고 나니 힘이 돌아왔다. 나는 영우랑 땅 바닥에 주저앉아 떨어진 단풍 나무 가지와 돌을 줏어 놀다가 "말을 보러 가자! 저기 백마도 있어!" 하고는 앞장 서 뛰었다. 울타리를 따라 언..
2007.10.28 -
2007.10.22 빛을 쏘는 아이들
2007.10.22 월요일 4교시 체육 시간에 과학 시간 때 못했던 실험을 하려고 운동장으로 나갔다. 우리는 먼저 손거울을 가져온 사람과 안 가져온 사람으로 나누어, 3m 정도 거리를 두고 나란히 마주 섰다. 그런 다음 손거울을 가져온 사람이 거울을 자기 쪽으로 향하지 않게 반대 편으로 거울을 돌려 비추었다. 나는 낙건이 가슴을 향해 거울을 비추었다. 그랬더니 거울에서 광선이 나가듯이 노란 빛이 낙건이 가슴을 맞추었다. 낙건이는 그 빛을 지우려는 듯이 두 손으로 가슴을 박박 문질렀다. 어떤 애는 빛을 더 맞으려고 두 손을 펼치고 빛을 향해 뛰어다녔고, 또 어떤 애는 빛을 피하려고 요리조리 뛰어다녔다. 빛을 쏘는 아이들은 사냥꾼처럼 한 명이라도 더 맞추려고 안달이 나서, 그야말로 레이저 쇼처럼 정신없는 수..
2007.10.22 -
2007.08.27 소나무
2007.08.27 월요일 소나무 숲 아래에는 다른 세상이 있다. 수 천 그루 소나무가 마구 뛰어 노는 어린애들처럼 맘대로 뒤틀리게 서 있고 매미 붙어 맴맴거리고 청솔모, 사마귀, 개미들 나무 위로 모이고 사람과 벌레에게까지 가장 큰 파라솔이 되어 준다. 소나무 틈 사이로 하늘이 끼어 들지 못하고 부러운 듯 살짝 내려다 본다.
2007.08.27 -
2007.07.27 텐트
2007.07.27 금요일 드디어 우리는 동해안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고속 도로는 막히지 않았지만, 시커먼 야산을 따라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을 며칠처럼 달려왔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밤 11시가 지나서 바다고 뭐고 자는 것이 급하였다. 그리고 어렵게 어렵게 속초 해수욕장에 있는 오토 캠프장을 찾아 텐트를 쳤다. 이미 사람들이 좋은 자리는 다 차지해버려서 빙글빙글 돌다가 구석진 곳 네 그루의 앙상한 소나무 아래 자리를 잡았다. 텐트를 치고 누우니 우리 집같이 안정되고 편안했다. 비록 텐트 지붕에 가려 별을 볼 순 없었지만, 왠지 하늘엔 별이 가득 총총총 떠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자꾸만 바람이 심하게 불어 텐트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것은 보통 바람이 아니었다. 누군가를 겨냥해서 기습 공격을 하는 ..
2007.07.27 -
2007.05.15 싱그러운 길
2007.05.15 화요일 내가 점심을 먹고 피아노 학원에 가려고 공원 트랙을 접어 들었을 때, 태양이 온 세상을 비추고 있었다. 하늘은 황금빛으로 찬란히 빛나고 있었고, 나무들은 어느 새 그만큼 컸는지 건장한 청년들처럼 우뚝 서 있었다. 어떤 나무들은 잎사귀들이 덥수룩하게 자란데다 가지가 낮게 내려와 내 머리를 쓰다듬는 것도 있었다. 이제 풀들도 트랙 양 옆길 을 하나도 빠짐없이 초록색으로 자라나 꽉 메꾸었다. 바람도 선선하게 불어서 나도 모르게 "이야!" 하고 탄성을 지르며 바람을 들이마셨다. 지금은 한 낮이고, 나는 한 손엔 쿠키 봉지를 들고, 또 한 손엔 피아노 선생님께 드릴 엽서를 들고 있고 들이마신 바람으로 속이 시원했다. '이게 사는 맛이야!' 하면서 계속 깡총깡총 걸어 갔다.
2007.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