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성(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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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나간 시험 결과
2010.04.29 목요일 오늘 아침 눈뜨자마자 번쩍! 하고 든 생각은 '시험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였다. 학교 가는 길에도 기대, 혹시나 모를 걱정, 성취감에 애드벌룬 같이 부풀어서, 둥실둥실 붕 뜬 기분으로 걸었다. 오늘은 왠지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아서 휘파람 소리를 유후후, 유후후~ 흉내 내며, 다리를 높이 들고 걸었다. 일 년에 네 번, 언제나 시험 다음 날의 긴장감은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처럼 존재한다. 사실 그 시간은 시험 준비를 열심히 한 아이에게는 기대를, 시험 준비를 안 한 아이에게는 지옥 같은 기다림의 시간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어제 시험지를 받아든 순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초등학교 6학년의 시험에서, 올백을 받아보고 싶다는 야망이 생기는 것이었다. 나는 이번에 나름대로 준..
2010.05.01 -
추운 날의 라틴 댄스
2009.11.22 일요일 포천 허브 아일랜드 연못은 벌써 살얼음이 얼었다. 추워서 덜덜 떨며 걷다가, 우리는 라틴 댄스 공연을 하는 임시 야외무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야외무대를 둘러싼 울타리 바깥에서 공연을 지켜보았다. 나무로 만든 무대 끝 사람들 앞으로,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어린 무용수들이 줄지어 걸어나왔다. 모두 석고상같이 하얀 얼굴에 고양이처럼 길게 올라간 눈 분장을 하였다. 남자 아이들은 가슴이 파진 검은 블라우스에 꽉 끼는 검은 바지를 입었고, 여자 아이들은 화려한 비키니 수영복같이 거의 살이 드러나는 무대 옷을 입고 나왔는데, 바람이 차가운데다 빗방울까지 날려서 참 딱해보였다. 대부분 키는 나보다 조금 커 보이는데, 몸은 내 반쪽만큼 말랐을까? 추워서 그런지 긴장해서 그런지 다 ..
2009.11.23 -
산마을에 없는 것
2009.07.01 수요일 이틀 뒤면 있을 기말고사를 앞두고 나는 막바지 공부를 하였다. 사회 과목을 정리하다가 이라는 단원 중, 산촌에 관한 설명과 사진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지난 주말에, 아빠의 친한 친구 분들 가족과 문경새재란 곳으로 여행을 다녀왔는데, 그곳에서 보았던 산마을의 모습과 사진이 똑 닮았기 때문이다. 교과서에서 배우기를, 우리나라의 촌락은 농촌, 어촌, 산촌으로 나뉘어 있고, 그중 산촌이 경치가 제일 좋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 내가 가는 곳마다 시원하고 푸른 속리산 자락이 그림처럼 쫓아오고, 계단식 논밭에 심어진 키다리 옥수수와 산마을 허수아비가 나를 열렬히 환영하듯, 뜨거운 바람에 추와아~ 흔들렸다. 내 입에서는 오직 "우와~!" 하는 탄성만 가슴 밑에서부터 팡팡 터졌다. 그런..
2009.07.02 -
날아라 계란!
2008.09.09.화요일 요즘 우리가 운동회 연습 때문에 지쳐 있자, 선생님께서 우리를 위해 뭔가 재미있는 것을 고안하셨다. 미술 시간 1교시부터 2교시에 걸쳐서, 계란 낙하산 놀이 준비를 하느라, 우리 송화 반은 한참 분주하였다. 계란 낙하산 놀이란, 수수깡으로 집을 만들어 그 안에 계란을 넣고, 신문지로 낙하산을 만들어 실로 계란 집과 연결한 후, 높은 곳에서 떨어뜨려 과연 계란이 깨지는가 안 깨지는가 해보는 놀이다. 우리는 모둠마다 어떻게 하면 계란이 깨지지 않을까를 고민하며, 계란을 넣을 수수깡 집을 조금씩 다르게 만들었다. 종이컵에 계란을 넣고 그 위에 수수깡 지붕을 덮은 모둠도 있고, 수수깡을 별모양으로 엮어 그 속에 계란을 넣은 모둠도 있었는데, 그 중 우리 모둠은 가장 단순한 모양이 안전..
2008.09.12 -
2007.05.15 싱그러운 길
2007.05.15 화요일 내가 점심을 먹고 피아노 학원에 가려고 공원 트랙을 접어 들었을 때, 태양이 온 세상을 비추고 있었다. 하늘은 황금빛으로 찬란히 빛나고 있었고, 나무들은 어느 새 그만큼 컸는지 건장한 청년들처럼 우뚝 서 있었다. 어떤 나무들은 잎사귀들이 덥수룩하게 자란데다 가지가 낮게 내려와 내 머리를 쓰다듬는 것도 있었다. 이제 풀들도 트랙 양 옆길 을 하나도 빠짐없이 초록색으로 자라나 꽉 메꾸었다. 바람도 선선하게 불어서 나도 모르게 "이야!" 하고 탄성을 지르며 바람을 들이마셨다. 지금은 한 낮이고, 나는 한 손엔 쿠키 봉지를 들고, 또 한 손엔 피아노 선생님께 드릴 엽서를 들고 있고 들이마신 바람으로 속이 시원했다. '이게 사는 맛이야!' 하면서 계속 깡총깡총 걸어 갔다.
2007.05.15 -
2006.07.29 파업
2006.07.29 토요일 우리는 차 트렁크에 짐을 꾸역 꾸역 실어 놓고 안면도로 출발했다. 처음에는 우리도 들뜬 마음으로 출발했는데 어디서 부턴가 배가 고파오고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배는 밥 달라고 꼬르륵 조르는데 피서가는 차들이 밀려 꼼짝도 안하는 것이다. 창 밖 보니 차들이 긴 기차처럼 이어져서 사고가 나서 한 발자국도 못 가는 것 같았다. 우리는 휴게소까지만 참아 보기로 했으나 나는 못 참고 엉엉 울었다. 서해 대교를 거북이처럼 지나 행담도 휴게소에 도착 했을때 우리는 탄성을 질렀다. 하지만 웃음은 문 앞에서 뚝 그쳤다. 휴게소 곳곳에 빨간 파업 깃발이 꽃혀 있었다. 처음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식당가 문에 붙어있는 글을 보곤 실망에 차서 화장실로 갔다. 나는 생각했다. 휴게소 사장이 직원들..
2006.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