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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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에 모인 가족
2010.09.21 화요일 나는 작지만 힘차게 말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저희 왔어요!", "어휴, 그랴~ 이제 오는 겨?" 할머니는 웃는 얼굴로 엘리베이터 앞에서 우리를 마중 나와 주셨다. 그 옆에는 "왔어요?" 하며 팔짱을 끼고 맞아주는 둘째 고모와, 뒤에서 지현이 누나와 수연이가 얼굴을 빼꼼히 내밀고서 가만히 인사하였고, 더 뒤에 집안에서는 할아버지께서 뒷짐을 지고 "왔냐?" 하시는 모습이 그림처럼 보였다. 할아버지 댁에 들어서자, 오랜만에 아파트의 탁 트인 넓은 마루가 보여 신이 났다. 우리는 할아버지, 할머니께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절을 하였다. 그렇게 우리 가족의 추석은 시작되었다. 할아버지는 소파에 앉아서 TV에 초점을 맞추셨다. 할아버지는 새로운 소식을 찾는 호기심 많은 어린이처럼..
2010.09.25 -
담뱃갑 만들기
2009.09.30 수요일 3교시 보건 시간, 지난 시간에 이어 담배에 대한 수업이 이어졌다. 보건 선생님께서는 텔레비전 화면으로, 우리나라 담뱃갑과 외국 담뱃갑 사진을 차례차례 보여주셨다. 우리는 그 둘이 얼마나 극과 극으로 다른지 몸서리쳤다. 우선 우리나라 담뱃갑에 그려진 그림은, 예쁘고 단순했다. 시원한 대나무 그림, 파란 동그라미 그림, 귀여운 고양이 그림! 이들은 오히려 몸에 좋은 것처럼 보일 정도로, 깨끗하고 신선해 보였다. 거기에 반해 외국의 담뱃갑들은, 처참하기 짝이 없었다. 담배 때문에 입을 벌린 채 파랗게 일그러진 얼굴로 사망한 시체 사진, 뇌에서 피가 입체적으로 콸콸 솟구치는 사진, 쭈글쭈글 썩어가는 폐사진! 담배로 파괴된 몸을 나타낸 그림들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나조차 저렇게 되지..
2009.10.02 -
토란국
2008.09.14 일요일 우리는 차가 밀려 점심 시간을 훨씬 넘겨 외가댁에 도착했다. 나는 외가댁에 도착하기 전부터 토란국이 먹고 싶어 입에 침이 고였다. 엄마가 할머니께서 토란국을 끓여놓고, 기다리신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토란국을 먹어본 적이 없었기에 어떤 맛일까 궁금해졌다. 이름이 탱탱한 공 같은 느낌이 나는 걸 보니, 혹시 살구처럼 아삭아삭한 열매 맛이 날까? 외가댁 식탁에 앉아 할머니께서 부랴부랴 내주신 토란국을 보고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고기와 무, 다시마 국물에 잠겨 있는 뿌연 토란은 물에 펄펄 끓여서 퍼진 마늘처럼 보였다. 머뭇거리는 나에게 엄마가 "이게 토란이야, 먹어 봐!" 하셨다. 나는 젓가락 두 개로 토란을 쿡 찌르고, 크레인으로 바위를 들어 올리듯이, 국물 속에서 토..
2008.09.16 -
2007.09.24 할아버지의 다리
2007.09.24 월요일 보름달이 밝게 뜬 추석 전날 밤, 막내 고모와 나는, 술에 취해 쓰러지신 할아버지의 다리를 주물러 드렸다. 나는 할아버지의 다리를 두 손으로 한 웅큼 잡았다가 놓았다가 하며 꾹꾹 주물러 드렸는데 할아버지께서 "상우가 손 힘이 아주 좋구나." 하셨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더욱 힘을 주어 정성껏 주물러 드렸는데, 할아버지께서 "가운데 다리는 주물르지 말아라." 하시는 것이었다. 고모에게 "가운데 다리가 뭐예요?" 하고 물었더니 고모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가운데 다리는 여기를 말하는 거다." 하며 할아버지의 고추 부분을 가리켰다. 할아버지 다리를 계속 주무르니까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아빠 다리도 엄마 다리도 내 다리도 살이 있어 통통한 편인데 할아버지는 뼈만 남아 앙상한 나뭇가지 ..
2007.09.24 -
2006.10.07 상차리기
2006.10.07 금요일 드디어 추석날 아침이 밝았다.나는 잠이 덜 깨어, 한복을 입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그러나 제사 준비로 온 집안이 시끌벅적 하였다. 영우는 신이 나서 엄마 옆을 바짝 붙어 다니며 음식을 날랐다. 엄마와 고모는 과일을 깎고,아빠와 작은 할아버지는 문어라던가 수박이라던가 특별히 무거운 음식을 나르셨다.할머니는 대장처럼 국자로 이쪽 저쪽 가리키며 빨리 하라고 하셨다. 나도 슬며시 끼어 들어 배도 나르고 고기도 날랐다.그리고 아빠를 도와 제삿상에 음식을 예쁘게 정돈했다.상에 음식이 너무 많아 '조상님들이 먹다가 배 터지는 거 아니야?' 하고 걱정했다. 그리고 나도 그 음식들을 먹고 싶어 '으음,짭.'거리며 참았다. 상을 다 차리고 보니 너무 화려해서 마치 음식으로 빚어 놓은 용 모양 같..
2006.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