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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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에게 미안해!
2009.07.08 수요일 난 오늘 엄마에게 딱 걸렸다. 그동안 내 방을 청소하지 않고, 기말고사가 끝나면 정리하겠다고 얼렁뚱땅 미루어오다가, 결국 엄마를 폭발하게 한 것이다. 엄마는 쓰레기가 쌓여 날파리가 맴도는 내 책상을 부숴버릴 듯한 기세로 화를 내셨다. 나는 한바탕 혼이 난 다음, 묵묵히 내 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우선 내 책상을 한참 바라보다가, 흐음~하고 한숨을 쉬었다. 햇빛을 받지 못한 낡은 성 안에, 난쟁이들이 마구 타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계단처럼, 책, 공책, 교과서, 종이 쪼가리, 휴지들이 겹쳐서 층층이 쌓여 있었고, 책더미 사이로 생긴 구멍에선 금방이라도 생쥐들이 들락날락할 것 같이 지저분했다. 나는 허리를 조금 굽혀서 책상을 자세히 살폈다. 그리고는 월요일마다 집앞에 재활용품..
2009.07.09 -
비밀 일기
2008.01.14 월요일 이 책은 12살 때부터 16살 될 때까지 아드리안 모올 이라는 소년이 쓴 일기 모음집이다. 그리고 전편과 속편으로 나누어져 있다. 내가 이 낡은 책을 책장 한 귀퉁이에서 발견했을 때, 우리 집에 이런 책도 있었나? 하고 의아해했다. 엄마가 이 책은 큰 삼촌이 어렸을 때 좋아했던 책이라고 하셨다. 라는 제목이 흥미로웠고, 이 책에는 그림이 전혀 나와 있지 않아서 주인공과 등장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전부 새롭게 상상하며 읽었다. 주로 인물들의 이름이나 특징을 살펴서, 내가 전에 읽었던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얼굴을 집어넣어 보았다. 예를 들면 주인공 아드리안 모올은, 의 주인공 소년, 푸셀을 갖다 붙이고, 아드리안 모올의 여자 친구 판도라는 에 나오는 베키 대처를 상상했다. 아드..
2008.01.15 -
2007.03.15 새 책상
2007.03.15 목요일 영우와 나는 저녁을 먹고 들뜬 마음으로 주문한 새 책상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쓰던 책상과 책장이 너무 낡아져서 아빠가 영우 것과 함께 새 책상을 주문하셨는데 오늘 오기로 한 것이다. 내가 쓰던 책상은 책장이 옆에 있어 책을 꺼내고 꽂기가 불편했는데, 새 책상은 책꽂이가 바로 앞에 놓여 있어서 책을 꺼내기가 쉽게 돼있다. 나는 봄방학 끝날 때 쯤 아빠와 함께 가구점에서 이 책상을 만났는데, 마음에 쏘옥 들어서 기다리고 기다려왔다. 그런데 밤 9시에 도착한다는 연락을 받고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엄마 청소도 돕고 아빠가 낡은 책상을 옮기는 것도 도우며 기다렸는데, 10시가 거의 다 되어 가는데도 안오는 것이다. 게다가 잠이 슬슬 오기 시작했다. 엄마는 먼저 자라고 하셨지만 영우와..
2007.03.15 -
2006.11.01 집현전 헌책방
2006.11.01 수요일 오늘은 집현전 헌책방이라는 아빠의 친구로부터 알게 된 레코드 가게에 갔다. 나는 레코드 가게라는 소리만 듣고 아주 삐까 뻔쩍한 가게인 줄 알았는데, 모양새가 아주 촌스럽고 옛날식 작고 평범한 집이었다. 그 안에는 먼지가 소복하게 쌓여 있는 옛날 책들이 있었다. 하지만 레코드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레코드판은 책방 바깥에 플라스틱 박스에 차곡 차곡 쌓여 있었다. 아빠와 엄마는 나란히 허리를 구부리고 굶은 사람들이 음식을 고르듯이 허겁지겁 레코드판을 고르는 동안 나와 영우는 요때다 하고 만화책을 잽싸게 골라 읽었다. 책방 안은 미로 같았다. 책장을 밀면 또 다른 책장이 나오고 또 밀면 또 나오고 '혹시 조선시대 집현전이 이렇지 않았을까?' 나는 갑자기 집현전 학자가 된..
2006.11.01 -
2006.02.10 내 취향
2006.02.10 금요일 우리는 저녁에 파주에 사는 상욱이 아저씨네 놀러 갔다. 엄마는 선물로 작고 예쁜 화분을 사 가셨다. 그 집엔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형아가 둘이나 있었는데 둘 다 컴퓨터 광이었다. 나는 그 형아들과 진지하게 이야기 나눌 마음에 기대했으나 그냥 물끄러미 서서 컴퓨터 하는 것만 지켜 봐야 했다. 그러다가 나는 지겨워져서 마루로 나와 여기저기 둘러 보았다. 그 중에서 책장 앞에 있는 그물 침대가 제일 마음에 들었다. 나는 책을 하나 꺼내 들고 그물 침대에 누워서 읽었다. '역시 이게 나하고 딱 맞아!' 하고 침대를 건들 건들 흔들었다.
2006.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