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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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 발 도장 찍는 날!
2011.08.28 일요일 오늘은 나에게는 개학하고 맞은 2번째 휴일의 마지막 날이었고, 동생에게는 개학 전날로 밀린 방학숙제를 한번에 해결해야 하는 힘든 날이었다. 내가 영우만 할 때 주로 했던 방학 숙제는, 온통 빽빽하게 쓴 원고지 몇 장과 글투성이였는데, 영우는 종류도 다양했다. 시 모음집, 일기, 독서록, 환경 기록장, 건강 달리기 체크하기, 특히 4절 도화지에 가족들의 손도장, 발도장을 물감으로 찍어가는 숙제를 했다. 오랜만에 가족이 모두 모여 한 방에 네모나게 둘러앉았다. 가운데는 아무것도 없는 깨끗한 백지가 놓여 있었다. 나는 감격스러웠다. 사실 가족이 이렇게 둘러앉은 것도, 밥 먹을 때 빼고는 거의 없었다. 아니, 아빠는 얼굴 보기가 어려웠고 어쩌다 얼굴을 보아도 항상 피곤한 듯, 인상을 ..
2011.08.30 -
새 교과서 받는 날
2009.12.19 토요일 아침에 중이염과 축농증이 다시 겹쳤다. 머리가 어지럽고 목이 붓고, 기침이 쉬지 않고 커헉~ 커어~! 터지면서, 결국 제시간에 등교를 하지 못했다. 학교에 간신히 전화를 하고 죽은 듯이 잠들었다가, 늦은 3교시 시작할 때서야 나는 학교에 도착했다. 내가 쉬지 않고 학교에 간 이유는, 오늘 새 교과서를 받는 날이기 때문이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책도 좋지만, 매년 새 교과서를 받는 일은, 큰 상을 받는 것처럼 가슴을 뛰게 했다. 나는 흐음 후, 흐음 후~ 가쁜 숨을 내쉬며, 계단을 올라 복도를 따라 절름절름 교실 앞에 도착했다. 목을 가다듬고, 장갑을 껴서 미끄러운 손으로 교실 뒷문의 금빛 문고리를 꽉 잡고 서서히 돌렸다. 끼이익~ 소리와 함께 문이 빼끔 열렸다. 나는 그리로 ..
2009.12.21 -
은지와의 대화
2009.08.16 일요일 우리 가족은 아빠 친구, 동규 아저씨 가족을 만나, 중국 요리집으로 들어갔다. 동규 아저씨가 우리가 대구에 온 기념으로 맛난 것을 사주셨다. 우리는 신이 나서 떠들며 가족석으로 줄줄이 들어갔다. 나는 영우와 나란히 앉고, 나랑 나이가 같은 친구 은지와, 은지 동생 민재는 맞은 편에 앉아 자리를 잡았다. 낮에는 할아버지 생신이라 한식을 배불리 먹었는데, 저녁엔 중국 음식이라~ '이거 오늘 땡 잡았군!' 하면서 팔보채, 탕수육, 자장면을 쩌접쩌접 먹었다. 그중 자장면이 제일 맛있어서, 나는 후루룩~ 씹지도 않고 넘겼다. 엄마가 나와 은지에게 자꾸 대화를 나눠보라고 하셨지만, 우린 그럴 때마다 안녕? 응~ 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영우는 마주 앉은 민재에게 툭툭 장난을 치며 먹었고, ..
2009.08.19 -
힘든 나라 사랑
2008.12.11 목요일 도덕 선생님께서 2학기 교과서에 나오는 문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풀고, 그 중에 한 단원을 골라, 그에 대해 주장하는 글을 써오라는 숙제를 2주 전부터 내주셨다. 이 숙제는 2학기 마무리 겸, 평가가 되니 정성껏 해오라고 하셨다. 벌써 많은 아이가 숙제를 낸 상태였는데, 나는 미루고 미루다가 어제 하루 만에 그 숙제를 다해서 왔다. 하루 동안 하기엔 너무 양이 많아서, 밤늦게까지 하느라 애를 먹었다. 그런데 문제는 글쓰기 숙제였다. 교과서를 간신히 다 풀고, A4용지에 주장하는 글을 쓰려니 벌써 12시가 다 되었고, 나는 쏟아지는 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냥 4단원을 택하여 '나라 사랑'이란 주제로 주장하는 글을 쓰려는데, 도저히 써지지가 않는 것이다. 머릿속에 '나라 사..
2008.12.12 -
학교야, 사랑해!
2008.09.01 월요일 지난 토요일 수업이 끝날 때쯤, 선생님 컴퓨터에 메일이 딩동 오고 그걸 열어보신 선생님 표정이 조금 난처해지시더니, "얘들아, 정말 미안하지만 오늘 숙제가 하나 더 늘었구나!" 하셨다. 그러자 아이들은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 않아도 선생님께서 숙제를 3개나 가득 내주셨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9월 1일이 우리 학교 개교기념일이라서, 개교 기념을 주제로 글짓기를 하는 거예요. 이건 잘하면 상도 줘요." 하셨다. 아이들의 울상이 좀처럼 풀어지지 않자, 선생님께서는 가장 어려운 사회 숙제를 빼주시기까지 하셨다. 개교기념일이 사회 숙제를 빼주면서까지 챙겨야 할 중요한 날인 것은 분명한데, 왜 그것을 주제로 하는 글짓기 숙제가 우리에게 부담..
2008.09.01 -
음악과 함께 떠나는 어거스트 러쉬의 모험
2007.12.07 금요일 를 보기 전에 나는 이 영화에 대해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무슨 내용인지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전에 읽었던 라는 책에서 내용을 알면 기대가 반으로 줄어든다는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영화 첫 장면에서 어거스트 러쉬가 넓은 초록색 갈대밭에서 두 손을 펼치고 흔들면 갈대들이 따라서 파도처럼 출렁거리는 걸 보고, 나는 무슨 어린이 마법사 이야기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곧 어거스트 러쉬는 마법사가 아니라 고아였고, 주위의 모든 소리를 음악으로 느끼는 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웃음이 나왔다. 비록 어거스트 러쉬처럼 심하지는 않지만, 나도 가끔 공원에서 바람을 맞으며 시원한 바람 소리를 음악처럼 느끼고, 내가 바람과 함께 녹아 온 세상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상상에..
2007.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