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료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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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이가 코피 흘린 날
2011.06.22 수요일 오랜만에 공부를 한다. 엄마와 나, 내 친구 풀잎이 이렇게 셋이서 사직 도서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한 열람실에 엄마는 좀 멀리 떨어져서, 나와 풀잎이는 마주 보고 앉아 기말고사 준비를 했다. 엄마까지 도서관에 오게 된 사연은 이렇다. 요즘 나는 학교 끝나고 풀잎이와 쏘다니며 놀았다. 뭐하고 노냐면 그냥 풀잎이랑 함께 도로와 골목길을 배회하면서 수다도 떨고, 계란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를 쓰다듬어주며 논다. 풀잎이는 귀엽게 생겼는데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어서 조금 무뚝뚝해 보이는 게 특징이다. 그래도 나는 안다. 풀잎이가 맑은 영혼을 가졌다는 것을. 주위에서 욕을 안하는 애는 풀잎이 밖에 없으니까! 그런데 엄마는 언젠가부터 내가 기말고사가 다가왔는데도 별로 열심히 준비하지 않고,..
2011.06.25 -
엉금엉금 거북이 마라톤
2011.05.14 토요일 '덜컹딜킥~ 덜컹딜킥~' 흔들리는 지하철에 맞추어서 내 몸도 조금씩 흔들렸다. 내가 오랜만에 지하철 4호선 열차를 타고 있는 이유는 오늘 있을 마라톤 때문이다. 우리 학교에서는 1년에 한 번 씩 1,2,3학년 모두가 함께 마라톤을 한다. 선수들처럼 42km의 장거리를 달리는 게 아니라 7km만 달리면 되지만, 난생처음 그렇게 작정하고 많이 달려야 한다는 생각에 긴장되었다. 어두운 지하철에서 대공원역 2번 출구로 나와, 집합 장소인 분수대 앞까지 왔다. 분수대에는 아무도 없고, 분수대 조금 뒤에 '청운 중학교 거북이 마라톤'이라고 쓰여진 큰 현수막 아래에, 우리 학교 체육복을 입고 있는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나는 조금 엉뚱한 상상이 들었다. 왜 하필 거북이 마라톤일까?..
2011.05.19 -
아빠와 함께 도서관에서 공부를!
2010.08.18 수요일 오늘은 아빠와 같이 저녁때 종로 도서관에 가서 공부했다. 오늘은 어린이 도서관이 아니라, 고등학생, 대학생들이 즐겨 찾는 거대한 종로 도서관이다. 사직공원 계단을 높이 올라가면, 보라색인데 어두침침한 보라색이라서 조금 갑갑해 보이는 건물이 나온다. 그 건물의 옆면 창가와 벽에는 담쟁이 덩굴이 살짝살짝 초록색으로 덮여 있고, 군데군데 낡아서 금도 조금 가 있었다. 도서관 입구에는 금색의 조금 벗겨진 쇠붙이로 이라고 글자가 크게 박혀있다. 아빠랑 나는 아빠의 손가방에 공부할 것들을 잔뜩 넣어서 함께 출발했다. 가파른 계단들을 올라오니, 종로도서관의 입구가 하마처럼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종로도서관을 흐린 날 멀리서 봐왔기 때문에, 무시무시한 고성 같은 느낌이었는데, 입구를 들어서..
2010.08.25 -
2006.04.19 토하다
2006.04.19 수요일 나는 장염인데도 불구하고 오늘 과학 특강 시간에 쥬스 실험을 하였다. 그래서 쥬스를 많이 마셔서 한밤중에 쥬스를 다 토해 내었다. 느낌이 끔찍하고 쓰고 독했다. 토한 뒤 내 가슴은 불에 탄 잿더미처럼 되어 있었다. 정말이지 기분이 나빴다. 엄마 아빠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위로해 주고 보살펴 주었다. 나는 다시는 음료수를 억지로 마시지 않기로 맹세코도 결단코도 결심했다.
2006.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