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적(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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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서 읽은 시
2009.03.10 화요일 급식을 먹고 나서 나는 2층 화장실로 향했다. 우리 학교는 층마다 화장실벽에, 액자에 시를 써서 걸어놓았는데, 난 쉬는 시간에 화장실을 골고루 돌아다니며 시를 읽는 걸 즐겼다. 단 2층 화장실은 한 번도 안 가봐서 오늘은 특별히 들러본 것이다. 세면대 위쪽에 붉은 보리밭 그림을 바탕으로 아름다운 시가 쓰여있었다. 나는 그 액자에서 가장 가까운 소변기에서 쉬를 하며 시를 읽었다. '여울에서 놀던 새끼 붕어, 다 커서 떠나고, 여울은 그때 그 또래 꼭 똑같네! 동네 아이들이 뛰어놀던 골목길, 아이들은 다 커서 떠나지만, 그 골목길은 그 또래 그대로이다!' 이 시를 읽고 나는 순간 멍해졌다. 뭔가 많은 느낌과 생각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마치 우리가 어릴 때는 엄마 아빠 품에 잘 놀다..
2009.03.11 -
서러운 감기
2008.03.26 수요일 3교시 수업을 앞두고 화장실에 갔다 오는데, 갑자기 머리가 쑤시고 속이 울렁거리면서 아침에 먹었던 주먹밥 냄새가 속에서부터 올라왔다. 나는 속으로 '이제 소화가 되나 보네!'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 교실 앞 복도에서 순간적으로 몸이 앞으로 수그려지면서, 입에서 하얀색 액체가 액! 하고 쏟아져 나왔다. 그러더니 그것은 복도 바닥에 떨어져 눈사태처럼 쌓였다. 나는 놀라 '어마, 이게 무슨 일이야?' 하며 뒤로 물러났는데, 지나가던 아이들이 똥 싼 괴물을 본 것 마냥 "아아아악~!" 하고 비명을 질렀고, 어떤 아이는 코를 막고 "아이, 더러워!" 하며 나를 피해 갔다. 나는 진땀이 나면서 목이 찔리듯 따끔따끔 아파졌지만, 더 괴로웠던 것은 아이들이 나를 못 견디게 더러운 눈으로 바라..
2008.03.28 -
2007.09.24 할아버지의 다리
2007.09.24 월요일 보름달이 밝게 뜬 추석 전날 밤, 막내 고모와 나는, 술에 취해 쓰러지신 할아버지의 다리를 주물러 드렸다. 나는 할아버지의 다리를 두 손으로 한 웅큼 잡았다가 놓았다가 하며 꾹꾹 주물러 드렸는데 할아버지께서 "상우가 손 힘이 아주 좋구나." 하셨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더욱 힘을 주어 정성껏 주물러 드렸는데, 할아버지께서 "가운데 다리는 주물르지 말아라." 하시는 것이었다. 고모에게 "가운데 다리가 뭐예요?" 하고 물었더니 고모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가운데 다리는 여기를 말하는 거다." 하며 할아버지의 고추 부분을 가리켰다. 할아버지 다리를 계속 주무르니까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아빠 다리도 엄마 다리도 내 다리도 살이 있어 통통한 편인데 할아버지는 뼈만 남아 앙상한 나뭇가지 ..
2007.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