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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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 수업
2010.05.19 수요일 오늘 학교 시작부터 우리 반 아이들은 들뜨고 긴장되어 술렁거렸다. 바로 학부모 공개 수업 때문이었다. 1년에 단 한 번 있는 행사로 이번 공개 수업은, 6학년 마지막으로 하는 초등학교의 공개 수업이라서 더 의미가 있었다. 아이들은 점점 달아올라 쉬는 시간, 얼기설기 얽혀서 부모님이 오시는지, 안 오시는지를 묻느라 바빴다. 그리고 3교시 시작을 알리는 종이 치고 2명 정도의 학부모가 첫 타자로 들어오셨다. 시작한 지 2~3분 정도가 지나고, 엄마를 비롯해 오기로 한, 대부분의 부모님이 들어오셨다. 학부모님들은 마치 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보는 듯이, 교실 뒤편에 나란히 서셨다. 3교시는 말하기, 듣기, 쓰기 시간으로, 무엇을 묘사하는 방법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선생님은 어떤 사람이..
2010.05.24 -
빗나간 시험 결과
2010.04.29 목요일 오늘 아침 눈뜨자마자 번쩍! 하고 든 생각은 '시험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였다. 학교 가는 길에도 기대, 혹시나 모를 걱정, 성취감에 애드벌룬 같이 부풀어서, 둥실둥실 붕 뜬 기분으로 걸었다. 오늘은 왠지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아서 휘파람 소리를 유후후, 유후후~ 흉내 내며, 다리를 높이 들고 걸었다. 일 년에 네 번, 언제나 시험 다음 날의 긴장감은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처럼 존재한다. 사실 그 시간은 시험 준비를 열심히 한 아이에게는 기대를, 시험 준비를 안 한 아이에게는 지옥 같은 기다림의 시간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어제 시험지를 받아든 순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초등학교 6학년의 시험에서, 올백을 받아보고 싶다는 야망이 생기는 것이었다. 나는 이번에 나름대로 준..
2010.05.01 -
욕하는 아기
2009.02.22 일요일 일요일 저녁, 아빠 친구 가족을 만나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우리는 어른들이 이야기하는 틈을 타서 밥을 대충 먹고, 식당 안에 있는 놀이방 게임기 앞에서 기웃거렸다. 오락기 앞에는 아이들이 전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신나게 타다다닥~ 버튼을 두드리고 있었다. 아쉬운 대로 구경이라도 하려고, 게임을 하는 아이 자리 뒤에 바짝 파고들어 앉았는데, 바로 옆에서 째지는 소리가 들렸다. "야 이, 병신아, 꺼져! 여기는 내 자리야!" 그 소리의 주인공은 아직 걸음걸이와 몸짓도 엉성한 아기였다. 한 3살쯤 되었을까? 우리 바로 옆자리에서 어떤 중학교 2학년 형아가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조그만 아기가 비키라고 호통을 치는 것이다. 그것도 욕을 하면서! 중학교 형아는 아기를 보고 어이가 ..
2009.02.25 -
선생님의 노래
2009.02.18 수요일 어제 담임 선생님께서 외국 연수에서 돌아오셨다. 4학년이 끝나기 전에 선생님 얼굴을 꼭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었는데. 갑자기 돌아오셔서 기쁨보다 얼얼함이 앞섰다. 선생님도 그러셨을까? 아주 먼 길을 달려와 '짠~' 하고 나타나셔서, 교탁 앞에 앉아 태연하게 일하시는 선생님 얼굴은 예전처럼 무표정했고, 입가엔 풀처럼 까칠까칠한 수염이 돋으셨다. 마치 선생님은 우리 곁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오늘 종업식을 맞았다. 청소를 마치고 성적표를 나누어 받고 모두 자리에 앉은 다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여러분이 앞으로 친구로 만날 순 있겠지만, 4학년 송화 반이라는 이름 아래 모여서, 선생님과 함께 4학년 생활을 하는 일은 이제 없을 것입니..
2009.02.20 -
안개를 헤치며
2008.10.09 목요일 오늘 아침은 안개 때문에 숨이 막혔다. 아파트 입구를 벗어나 곧게 뻗은 통학 길을 따라 걷는데, 차가 다니는 길을 끼고 오른쪽에 마주한 아파트 3,4단지가 아예 보이지 않았다. 눈을 뜨고 있어도 답답했다. 안개 괴물이 세상을 집어삼킨 건 아닐까? 자세히 보니 아파트 아랫부분은 조금 보였지만, 안개가 많이 낀 아파트 위쪽은, 뿌연 구름이 걸려 버린 것처럼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컴퓨터 게임에서 본 하늘성 (제9의 사도 바칼이, 하늘 세상을 지배하려고, 바다 마을에서 계단을 이어서 하늘까지 쌓아올린 탑) 같았다. 사방을 둘러싼 안개속에서 학교 가는 아이들의 소리가 두런두런 들려왔다. "와~ 안개 정말 짙다! 이거 천재지변 아니야?" 바로 코앞에 아이는 보였지만, 멀리 앞서가는..
2008.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