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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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깎는 날
2010.06 15 화요일 나는 평소에 머리 자르는 것을 아주 싫어하고, 머리카락이 어깨에 올때까지 기르겠다고 언제나 아빠, 엄마에게 벼르듯이 말하고는 했다. 그런데 오늘따라 이런 생각이 들었다. '머리를 길러서 어디에 쓰지? 더 덥기만 하고. 껌이 달라붙을 지도 몰라! 생각해보니 내가 도대체 왜 머리를 기르자고 고집했을까?' 예전에 나는 머리를 기른 사람 중에, 멋진 사람을 몇몇 본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꼭 머리를 길러야만 멋있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대머리여도 멋있는 사람이 있듯이! 그래서 바람도 맞을 겸, 내킨 김에 엄마, 아빠에게 "엄마, 아빠! 우리 자전거 타고, 머리 자르러가요!" 말했다. 지금까지 나는 엄마, 아빠가 강제로 끌고가지 않으면, 절대 머리를 자른다고 스스로 말한..
2010.06.16 -
5학년의 첫 종소리
2009.03.02 월요일 내가 처음 교실에 들어가니 뜻밖에 교실 안이 어두웠다. 그 이유는 창밖에 바로 산이 있어 햇빛이 들지 않아서였다. 게다가 새 교실은 작년에 미술실이었던 자리라서 바닥이 차가운 돌 바닥이었다. 5학년 첫날 아침 교실은 으스스했다. 나는 가운데 자리 셋째 줄에 앉아, 책상 위를 손가락으로 투둑둑 투둑둑 피아노 치는 시늉을 하며 선생님을 기다렸다. 갑자기 '드드드들~' 문이 열리더니, 라면처럼 머리가 꼬불꼬불하고 황금색 안경을 낀, 조금 늙어보이는 여선생님이 들어오셨다. 나는 순간적으로 엇~ 하고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려고 하는데, 교실을 휘둘러보고는 바로 나가셨다. 몇 분 뒤, 조금 전보다 훨씬 젊은 여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이번에는 나가지 않고 교탁 앞에 한참을 서 계셨다. 아직 교..
2009.03.05 -
못난이와 맹구 - 상우 여행일기
2008.04.16 수요일 펜션 앞마당에는 벚꽃 나무가 몇 그루 있었는데, 제일 굵은 벚꽃 나무 아래 낮은 울타리가 쳐 있고, 그 안에 하얀 개 두 마리가 살고 있었다. 한 마리는 우리를 보고 달려나와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며 흥분했고, 한마리는 뭐가 불안한 듯, 개집 안에서 끙끙대며 나오지 않았다. 둘 다 참 못생겼다. 아니 못생겼다기보다는 너무 쭈글쭈글했다. 몸에 털이 없고, 귀는 머리에 찰떡처럼 달라붙었고, 코는 납작하고, 얼굴에 온통 물결이 흐르는 것처럼 주름이 졌다. 그리고 머리랑 몸통은 땅땅한데 비해, 다리는 너무 가늘어서 걸음걸이도 비척 비척 힘들어 보였다. 우스꽝스러운 몸에 비해 두 눈은 초록색 구슬을 박아놓은 것처럼 크고 맑았는데, 똘망똘망 물기가 어려 있는 게, 순하다 못해 애처로워 보였다..
2008.04.17 -
캐논이 좋아!
2008.02.25 월요일 내가 파헬벨의 캐논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작년 이맘 때쯤, 피아노 학원에서 연주회를 앞두고 어떤 형아가 연습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였다. 나는 캐논이 너무 좋아 그 형아가 연습할 때면 장난치던 것도 멈추고 귀를 쫑긋 세워 듣곤 하였다. 캐논을 듣고 있으면 내 몸이 비누 거품을 타고 둥둥 가볍게 저 하늘로 멀리멀리 날아오르는 기분에 사로잡혀 행복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리고 1년 뒤에 돌아올 연주회에는 꼭 내가 캐논을 칠 수 있기를 바랐었다. 연주회가 다시 다가왔고 선생님께 캐논을 지정곡으로 받았을 때, 난 이게 웬 하늘의 계시란 말인가 하며 흥분했다. 그런데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아직 나에겐 어려운 곡이었는지, 치기가 너무 어려웠다. 박자를 맞추기도 어렵고 음을 정확하게 누..
2008.02.26 -
가루 녹이기
2007.11.12 월요일 나는 2교시 과학 시간에 있을 가루 녹이기 실험을 앞두고 책상 위에 내가 준비해 온 가루들을 나란히 늘어놓았다. 엄마가 조그만 비닐봉지마다 가루를 넣고 이름을 붙여 주셔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나는 가루 학자가 된 기분으로 가루 봉지를 요리조리 주무르고 찔러 보았다. 소금과 설탕은 알갱이가 굵어서 유리 파편처럼 뾰족해 보였고, 베이킹 파우더는 둥실둥실해 보였고, 밀가루는 조금만 봉지를 건드려도 주르륵 금이 갔는데 소다는 아무리 건드리고 주물러도 갈라지지 않았다. 이 많은 가루들을 한 번씩 손가락으로 찍어 먹어보고 싶은 마음도 들고, 한데 섞어서 부글부글 마법의 약을 만들어도 보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참고 수업 시간을 기다렸다. 우리 6모둠은 주로 소금을 많이 가져왔..
2007.11.12 -
2007.10.12 반지의 제왕
2007.10.12 금요일 중간 고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직도 나는 기침을 쿨럭쿨럭거리며 휘어진 갈대처럼 고개를 숙이고 힘 없이 걸어왔다. 그 동안 떨어질 줄 모르는 감기와 시험 공부에 한없이 지친 나는 이제 노인이 된 기분으로 우리 집 벨을 눌렀다. 엄마가 "네 책상에 무엇이 있나 보렴!" 하셨을 때도 나는 시험이 끝났다고 책을 사 준 것은 아닐까 생각하였다. 그러나 책상 위에 놓인 것은 쪽지 한 장과 작은 검정색 복 주머니처럼 생긴 것이었다. '상우님, 블로그 대마왕이 되신 것을 축하 드립니다! 대마왕이 되신 기념으로 반지를 드리겠습니다!' 라는 글을 읽기가 무섭게 나는 반지를 꺼내 보았다. 왕관 모양의 은빛 반지였는데 내가 원했던 금색은 아니었지만, 손가락에 끼고 높이 처들었더니 반지가..
2007.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