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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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선동의 신발가게
2011.09.25 일요일 얼마 전, 나는 내 발과 1년 동안 함께 했던 운동화를 도둑맞았다. 처음에 살 때는 90% 정도 세일을 받아 아주 번드르르한 새것으로 샀었고, 감촉도 폭신하고 신이 났었다. 도둑맞기 며칠 전의 내 신발은 꼭 외로운 노인처럼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밑창과 신발 몸을 이어주는 부분이 까지고 있었다. 흙먼지에서 뒹굴어서 그런지 주름 사이에는 누우런색 모래가 가득 끼어 있고, 뒷굽은 짓눌려져 있었다. 그런 신발이 없어지니 안타까운 마음보다는, 평소에 신발에 별로 신경을 안 썼던 것이 생각나, 신발을 새로 장만해야겠다는 굴뚝같은 마음이 들었다. 잊어버린 신발은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우선 이 근처에 신발가게를 찾아보아야 했다. 그런데 서울로 이사하고 나서 집 근처에 대형 할인 마트가 없는 ..
2011.10.06 -
영풍문고가 좋아!
2008.01.19 토요일 주말을 맞이하여 오랜만에 차를 타고 서울, 영풍문고로 향했다. 3학년 1학기 교내 음악제에 나갔다가 부상으로 받은 도서 상품권을 책상 서랍 속에 꼭꼭 모셔 두었었는데, 드디어 오늘 쓰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리고 영풍문고는 아주 오랜만에 가보는 것이라 마음이 떨렸다. 차를 타고 달리며 바깥을 구경하니 세상이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도로 옆에는 거대한 아파트 공사가 진행 중이었고, 하늘에는 얇은 비행기가 바람을 타고 위태롭게 날았다. 아빠가 그건 비행기가 아니라 글라이더라고 하셨다. 나는 처음 세상 구경을 하러 나온 산골 소년처럼 차 창문에 코를 박고 바깥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영풍문고 지하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흥분을 참지 못하고 차에서 뛰어내렸다. 도서 상품권 봉투..
2008.01.20 -
한겨울 밤에 물냉면
2007.12.27 목요일 저녁 8시, 방학을 맞이하여 아빠가 마침 배도 출출한데, 특별히 냉면을 사주겠다고 하셨다. 우리는 잠바를 입고 신났다고, 집 앞으로 나갔다. 엄마는 추운데 무슨 냉면이냐고 툴툴거리셨다. 영우도 냉면은 싫고 햄버거는 안 되겠느냐고 졸랐다. 아빠는 힘을 주어 "보통 냉면이 아니야. 특별 세일하는 오장동 함흥냉면이라구!" 하셨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으리으리한 고깃집 앞이었다. 영우는 "와! 갈비집이다!" 하며 좋아라고 펄쩍 뛰었다. 엄마는 "어디가 세일이야?" 하며 기웃기웃하셨다. 그때 아빠가 "봐! 저기, 냉면 세일!" 하며 입구에 붙어 있는 행사 세일 메뉴를 손가락으로 찾아내셨다. 고깃집 문을 열자마자 지글지글 고기 굽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사람들도 바글바글 불판 앞에 둘러앉..
2007.12.28 -
2007.06.05 지갑
2007.06.05 화요일 밤 늦게 gs 마트로 쇼핑을 갔다. 2층 아동 문구 코너를 지날 때, 나의 시선을 끄는 칸이 있었다. 바로 아동 지갑 코너였다. 왜냐하면 옛날에 미술 학원 선생님이 주신 지갑이 있었긴 한데,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서 용돈을 모아서 책상 서랍 속에 넣었다가 몽땅 사라져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지갑을 사려고 이곳 저곳 돌아다녀 보았지만 가격도 모양도 마땅한 게 없었다. 그러다 gs 마트에서 지갑 칸을 또 다시 발견하자 신이 나서 그 쪽으로 가 보았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여자 아이들 지갑만 잔뜩 쌓여있었다. 내가 지갑들 속으로 손을 푹 집어 넣어 뒤적여 보았더니 놀랍게도 내 마음에 쏙 드는 예쁜 지갑이 하나 나왔다. 푸른 하늘색 바탕에 곰돌이들이 그려져 있..
2007.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