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11)
-
세월호 1주기
2015.04.16 목요일 날씨가 맑아질 것 같지가 않다. 운동장에 모래가 하늘로 모두 옮겨 심어진 것 마냥, 하늘빛이 뿌연 황토색이다. 사막의 모래바람 같은 흑색의 하늘... 한줌의 습기도 없을 것 같은 하늘에서는 습하고 무거운 비가 내린다. 주룩주룩 서럽게 울다가 지치면, 쉬었다가 다시 우는 것처럼 하늘에서는 죽은 아이들의 눈물이 비가 되어 흐른다. 세월호가 침몰한 지 1년째 되는 날, 국가원수는 해외로 내뺐다. 정부는 추악한 발톱으로 유가족의 상처를 헐뜯기에 바빴고, 그의 하수인 언론과 방송은 가족을 잃은 피해자들의 울음을, 돈을 더 받아내겠다는 욕심으로 매도하는 여론을 조성하기에만 혈안이다. 검찰도 이에 미쳐 날뛴다. 이건 소설이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이야기다. 1년이 지났지만, 아직..
2015.04.16 -
처음으로 싸운 날
2011.03.21 월요일 안경이 나가떨어졌다. 여기가 어디인지,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도 잊을 뻔하였다. 세상이 어지럽게 흔들렸다. 다리도 풀리려고 했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쓰러지면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아이가 동정은커녕, 좋다고 달려들 걸 알기에, 땅을 밟은 두 다리에 더욱 힘을 주고 버텼다. 그리고 안경이 날아가 잘 보이지는 않지만, 주먹을 힘껏 내질렀다. 오늘 아침부터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친구 태식이가 나를 화나게 했다. 태식이가 욕을 하는 걸 보고 듣기 싫어서 하지 말라고 했더니, 계속 더러운 욕을 쓰고, 나에게 욕도 못한다고 놀리는 것이었다. 나는 슬슬 흥분하여 목소리가 떨리며 그만 하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태식이는 오히려 더 빈정대며 약을 올렸다. 학교 수업시간을 빼놓고 쉬는 시간, 급..
2011.03.23 -
도둑맞은 핸드폰
도둑맞은 핸드폰 2011.03.16 수요일 학교 끝나고 집에 가는 길, 날씨는 맑은데 꽃샘추위 바람이 살을 엔다. 나는 마음이 천근만근 무겁기만 하다. 마음속은 바짝바짝 타고 있고, 하늘은 무심하게도 이런 날을 골라 맑은 햇빛을 온 세상에 비춘다. 대문 앞에서 열쇠를 꽂아넣은 손이 덜덜 떨린다.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온몸이 으슬으슬 떨리면서 오금이 저린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범수와 동영이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교문 앞이 보이는 언덕길을 오르고 있을 때였다. 나는 학교에 가져왔던 핸드폰에 다시 전원을 켜려고, 잠바 주머니 안에 손을 넣었다. 원래 우리 학교에선 핸드폰 사용 금지를 규칙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막상 아이들을 보니 핸드폰을 안 가지고 다니는 애는 드물었다. 학교 수업 시간엔 전원을 ..
2011.03.18 -
새 안경
2009.12.17 목요일 바람이 살벌한 저녁, 하아하아~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나는 엄마와 함께 상가에 새로 생긴 안경집 문을 힘껏 밀었다. 안경집 벽을 따라 쭉 늘어선 네모나고 기다란 유리 상자 안에는, 온갖 종류의 보석 같은 안경테들이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 어젯밤 자려고 안경을 벗다가, 며칠 동안 간당간당했던 오른쪽 테가 툭! 하고 떨어졌다. 그래서 오늘 안경테에 테이프를 감고 썼는데, 그것도 떨어져 버려 한쪽 테만 붙잡고 해적이 된 기분으로 수업을 들어야 했다. 주인아저씨는 "네, 아드님하고 다시 오셨군요~" 하며 밝게 맞아주셨다. 엄마가 오후에 아이 지킴이 활동을 하시다가, 내 부러진 안경을 고치러 안경점에 들렀는데, 심하게 부러져 고칠 수 없다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엔 테를 바꾸러 나와..
2009.12.19 -
갑옷을 입은 손가락
2009.12.10 목요일 점심을 먹고 나서 아이들 대부분이 운동장으로 나가 놀았는데, 나는 기침이 나와서 교실로 올라왔다. 진석이와 경석이도 여느 때와 다름 없이 교실 뒤편에서 진드기처럼 딱 붙어 장난을 치고 있었다. 진석이는 경석이 등에 고동이 조개 잡는 모양으로 대롱대롱 달라붙었다가, 두 팔을 집게처럼 벌려 경석이 머리를 꽉 안고 격투기 하듯이 찍어눌렀다. 경석이는 으어어~ 하면서 진석이를 떼어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둘은 서로 쫓고 쫓기다 교실 문이 있는 사물함 옆까지 바짝 갔는데, 그만 다리가 엉켜 중심을 잃고 온몸을 기우뚱거렸다. 바로 그 옆을 지나가던 나는, 아이들이 넘어져서 머리라도 다칠까 봐 받치려고 오른손을 뻗었는데, 아이들 밀치는 힘에 밀려 갑자기 교실 문이 내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틈..
2009.12.11 -
처음 넘은 철봉
2009.04.03 금요일 체육 시간에 우리는 보통 단계별로 운동을 시작한다. 1단계가 제일 낮은 철봉을 잡고 한 바퀴 도는 거다. 그다음엔 2단계 더 높은 철봉, 3단계 철봉, 그다음엔 높이 뛰기, 이런 순으로. 난 언제나 1단계를 통과하지 못한 채, 나처럼 통과 못한 몇명의 아이들과 벌칙으로 개구리 뜀질을 하면서 시작해야 했다. 오늘도 1단계 철봉 앞에서 나가질 못하고 쭈물거리는 5명 정도의 아이들과 나를 향해, 우리 반 계주 선수이자 체육부장인 성환이가 보다못해 달려왔다. 그리고는 갑자기 철봉 밑에 저벅 엎드리더니, "너희들 나 밟고 올라가!" 하는 것이었다. 마침 바로 내 차례였는데, 성환이가 운동은 잘하지만, 몸집은 나보다 가늘어서, 과연 나를 떠받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성환이에게..
2009.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