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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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4 기다림
2007.10.24 수요일 학교에서 기침을 너무 심하게 해서 급식도 먹지 않은 채, 조퇴를 했다. 날씨는 화창했고 돌아오는 길은 견딜만했으나 문제는 집에 다 와서부터였다. 벨을 누르고 "상우예요, 상우예요!" 하며 몇 번씩 문을 땅땅 두드렸지만 돌아오는 건, 내가 누른 벨 소리가 집 안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뿐이었다. 나는 아무도 없음을 알고 어떻게 할 줄 몰라 한 동안 서있었다. 아무래도 오래 걸릴 것 같아서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엘리베이터 옆에 있는 층간 계단으로 가서 털썩 주저앉았다. 엘리베이터 소리가 '띵' 하고 날 때마다 엄마가 아닐까 하고 살펴 보았지만, 대부분 우리 집이 있는 5층에서 서지 않고 다른 층에서 멈추었다. 나는 기다리다 못해 1층으로 내려가서 돌덩이처럼 무거운 가방과 잠바를 벗어..
2007.10.25 -
2007.10.12 반지의 제왕
2007.10.12 금요일 중간 고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직도 나는 기침을 쿨럭쿨럭거리며 휘어진 갈대처럼 고개를 숙이고 힘 없이 걸어왔다. 그 동안 떨어질 줄 모르는 감기와 시험 공부에 한없이 지친 나는 이제 노인이 된 기분으로 우리 집 벨을 눌렀다. 엄마가 "네 책상에 무엇이 있나 보렴!" 하셨을 때도 나는 시험이 끝났다고 책을 사 준 것은 아닐까 생각하였다. 그러나 책상 위에 놓인 것은 쪽지 한 장과 작은 검정색 복 주머니처럼 생긴 것이었다. '상우님, 블로그 대마왕이 되신 것을 축하 드립니다! 대마왕이 되신 기념으로 반지를 드리겠습니다!' 라는 글을 읽기가 무섭게 나는 반지를 꺼내 보았다. 왕관 모양의 은빛 반지였는데 내가 원했던 금색은 아니었지만, 손가락에 끼고 높이 처들었더니 반지가..
2007.10.12 -
2007.09.22 친할아버지
2007.09.22 토요일 우리가 대구에 도착했을 때는 비가 부슬부슬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맨처음 벨을 아빠가 누르니까 집 안에서 할머니가 "방앗간 아저씨, 벌써 왔슈?" 하셨다. 아빠가 그 말을 듣고 급하게 "아니요, 상우네가 왔습니다!" 라고 하셨다. 안에서는 "상우야?" 하는 할머니의 놀란 목소리가 들렸고, 잠시 뒤 "끼이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할아버지는 우리를 기다리시느라 양복까지 입고 계셨다.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할아버지 댁 마루에 모여 할아버지, 할머니께 큰 절을 드렸다. 할아버지는 나를 안아주시려다가 "아이쿠, 이젠 할아버지가 상우를 안는 게 아니라 상우가 할아버지를 안아주어야겠구먼!" 하셨다. 처음에 할아버지 얼굴은 항상 그랬듯이 인조 인간처럼 빳빳하고 엄숙하셨는데, 오..
2007.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