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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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는 방학식
2009.07.17 금요일 선생님께서 방학을 맞이하여 안전사고에 대비하는 교육 동영상을 보여주시는데, 그걸 주의 깊게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반 전체가 앞뒤 사람, 옆 사람과 섞여서 떠들고, 심지어는 일어서서 떠들었다. 그 소리가 합쳐져서 "에붸뢰붸~ 와워워워~ 쁘지지~" 꼭 외계인 소리 같기도 하고, 라디오 주파수가 잘못 잡힐 때 생기는 잡음처럼 교실 안을 꽉 메웠다. 한참 안전사고 수칙에 관한 이야기가 흘러나올 때는, 난데없이 "저 집 핫도그 맛있어! 빨리 방학이 왔으면~!" 하는 말소리가 튀어나오기도 했다. 교실 벽에 걸린 시계는 고장 났고, 우리 반은 스피커가 없어서 쉬는 시간 종소리가, 아이들 떠드는 소리에 묻혀 가물가물하였다. 앞뒤사람과 전화번호를 받아적고, 집에서 싸온 푸짐한 간식을 먹..
2009.07.18 -
전화
2009.01.14 수요일 내일이면 담임 선생님께서 외국으로 어학연수를 가신다. 연수 기간이 길어서 개학을 해도 선생님 얼굴을 뵐 수가 없게 된다. 오늘이 아니면 방학 중엔 더 연락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나는 용기를 내어 선생님 전화번호를 눌렀다. "띠리리리릭~ 띠리리리릭~" 전화벨 소리가 꽤 오래 울렸는데도, 선생님께서는 전화를 받지 않으셨다. '아, 역시 바쁘시구나!' 하고 전화기를 끄려는데, 갑자기 '탁~' 소리가 나더니, 선생님이 다른 누군가에게 뭐라 뭐라 하시고 나서 숨 가쁘게 "네~ 누구세요?" 하셨다. 나는 떨리는 소리로 "선생님, 저 상우예요!" 했다. "어? 상우니?" 선생님은 깜짝 부드럽게 끝말을 올리셨다. "선생님, 바쁘신가요?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래~ 상우도 ..
2009.01.15 -
복도 청소
2008.08.22 금요일 며칠 뒤 개학을 앞두고, 오늘은 우리 반이 학교에 청소하러 가는 날이다. 나는 오랜만에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맘이 들떠서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우렁차게 외치고 집을 나섰다. 밖에는 나무젓가락처럼 길고 굵은 빗줄기가 '타닥타닥' 땅을 후려치듯 내리고 있었고, 아직 세상은 어둠 속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나는 준비한 우산을 펼쳐서, 파란 우산 지붕을 머리 위에 이고 힘차게 다리를 쫙쫙 벌려 걸었다. 학교 가는 길엔 아무도 없었고, 정문 앞에 다다르니, 8시 30분에 정문 앞에서 만나기로 한 경훈이가 아직 나와 있지 않았다. 밤새 내린 비가 아침까지 그치지 않아 세상은 물에 잠긴 듯, 온통 축축하고 싸늘했다. 하늘은 퀘퀘한 담배 연기 색깔이었고, 가끔..
2008.08.26 -
나의 여름 방학 계획
2008.07.18 금요일 우리 반은 미국에서 와서 한동안 같이 공부했던 성건이가, 방학이 끝나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볼 수 없게 되는 것을 섭섭해하며, 왠지 조금 우울한 기분으로 방학을 맞았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번 방학 때 하고 싶은 것과, 꼭 해야 할 것과, 하지 않아도 될 것을 나누어 곰곰이 생각하며 걸었다. 먼저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하니, 마음속에서 시냇물이 졸졸 흐르듯, 하고 싶은 일들이 흘러 넘쳤다. 가족과 여행하기, 곤충 박물관에 가보기, 영화 보기, 영우와 신나게 뛰어놀기, 온 동네를 다니며 무엇이 있나 샅샅이 관찰해보기, 배낭 메고 천보산 정상에 올라가기, 지는 노을을 보며 베란다에 돗자리 깔고 앉아 레모네이드 마시기, 가끔 늦은 밤에 엄마, 아빠와 TV 콘서트 7080 음악..
2008.07.19 -
한겨울 밤에 물냉면
2007.12.27 목요일 저녁 8시, 방학을 맞이하여 아빠가 마침 배도 출출한데, 특별히 냉면을 사주겠다고 하셨다. 우리는 잠바를 입고 신났다고, 집 앞으로 나갔다. 엄마는 추운데 무슨 냉면이냐고 툴툴거리셨다. 영우도 냉면은 싫고 햄버거는 안 되겠느냐고 졸랐다. 아빠는 힘을 주어 "보통 냉면이 아니야. 특별 세일하는 오장동 함흥냉면이라구!" 하셨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으리으리한 고깃집 앞이었다. 영우는 "와! 갈비집이다!" 하며 좋아라고 펄쩍 뛰었다. 엄마는 "어디가 세일이야?" 하며 기웃기웃하셨다. 그때 아빠가 "봐! 저기, 냉면 세일!" 하며 입구에 붙어 있는 행사 세일 메뉴를 손가락으로 찾아내셨다. 고깃집 문을 열자마자 지글지글 고기 굽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사람들도 바글바글 불판 앞에 둘러앉..
2007.12.28 -
2007.08.26 어서 내일이!
2007.08.26 일요일 나는 지금 내일이 기대된다. 하루 종일 개학을 생각하면서 더운 날씨만큼이나 방학이 갈수록 지겹게 느껴졌는데 오랜만에 학급 홈페이지에 들어가 박영은 선생님의 글을 만났다. 선생님께선 우리 반 모두 개학 준비를 잘 하라고 당부하셨다. 나는 선생님을 진짜로 만난 것처럼 반갑고 설레였다. 그리고 보고싶어서 안달이 났다. 또, 친구들 모습도 떠오르면서 얼마나 컸을까? 방학 동안 무슨 일을 겪었을까? 궁금해졌다. 선생님께서는 피서는 다녀오셨을까? 공부만 하셨을까? 나는 세 번이나 다녀왔는데. 참! 우리 아파트에 불도 났었지! 올여름 방학은 지난 여름 방학에 비해 더 풍부한 경험을 많이 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비 구름을 뚫고 목격한 해돋이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자! 이제 나는 2학기..
2007.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