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소(3)
-
화장실에서 도시락 먹기
2015.03.09 월요일 어제와는 다르게 엄청난 꽃샘추위가 살을 파고드는 월요일이다. 1학년 때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지만, 2학년 들어 큰맘 먹고 신청한 방과 후 야간자습의 첫날이기도 하다. 학교 후문에서 전해 받은 엄마의 도시락을 안고 면학실로 들어가려는데, 대청소 한다고 나가란다. 그러면 면학실에서 나가 도시락을 먹어야 하는데 참 난감했다. 야간자습 전의 석식 신청을 제때 하지 못하여, 내가 유일하게 있을 곳인 면학실을 뺏겨버린 셈이라 막막했다. 날은 어두워지고 학생들은 전부 환하게 불 켜진 교실을 찾아 석식을 먹으러 삼삼오오 모여가는데, 나 혼자 불 꺼진 복도와 계단을 계속 오르락내리락하며 한 바퀴를 돌고 있다. 벌써 지겹고 지나온 사람들을 또 마주친다. 그냥 집에 갈까? 몸이 아프신데 방금 ..
2015.03.16 -
너의 꿈을 세계로!
2010.02.10 목요일 오늘 음악 시간은 언제나 그렇듯이, 음악 선생님께서 전쟁터에서 지휘하듯이 열정적으로 수업을 진행하셨다. 선생님은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단소 불기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상당히 미안한 이야기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여러분이 다 안정된 직업을 가진다고 보장할 수 없을 정도로, 경쟁이 심하고 직업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라고 말이다. 이 말씀은 내 귀를 타고 물처럼 흘러들어왔고, 나는 귀가 솔깃해지며 선생님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나는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차례대로 깨물었다. 이건 심각한 이야기를 들을 때 내가 하는 버릇이다. 여러분도 이 이야기가 듣고 싶지 않은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단소를 뷔익~ 퓌익~ 불며..
2011.02.12 -
촬영
2008.02.12 화요일 오늘, 다음 주에 있을 연주회를 앞두고, 피아노 학원에서 비디오 촬영이 있는 날이다. 학교 끝나자마자, 피아노 학원으로 달려갔더니, 원장 선생님께서 무슨 영화 감독처럼 진지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계셨고, 어떤 아저씨 한 분이 그 옆에서 몸을 굽혀 캠코더로 학원 내부 여기저기를 찍고 계셨다. 우리는 학원 중앙 복도,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 있는 작은 무대에 올라가 한 사람씩 차례대로 촬영하였다. 지난번에 우리가 선생님이 나눠주신 종이에, 부모님께 드리고 싶은 말을 적어 낸 적이 있는데, 오늘은 그걸 외워서 캠코더를 바라보고 이야기하듯이 말하는 것이다. 난, 엄마, 아빠에게 학원비 미루지 말고 꼬박꼬박 내달라고 썼다가, 원장 선생님께 다시 쓰라는 명령(?)을 받았었다. 내 차례가 되..
2008.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