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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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서 도시락 먹기
2015.03.09 월요일 어제와는 다르게 엄청난 꽃샘추위가 살을 파고드는 월요일이다. 1학년 때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지만, 2학년 들어 큰맘 먹고 신청한 방과 후 야간자습의 첫날이기도 하다. 학교 후문에서 전해 받은 엄마의 도시락을 안고 면학실로 들어가려는데, 대청소 한다고 나가란다. 그러면 면학실에서 나가 도시락을 먹어야 하는데 참 난감했다. 야간자습 전의 석식 신청을 제때 하지 못하여, 내가 유일하게 있을 곳인 면학실을 뺏겨버린 셈이라 막막했다. 날은 어두워지고 학생들은 전부 환하게 불 켜진 교실을 찾아 석식을 먹으러 삼삼오오 모여가는데, 나 혼자 불 꺼진 복도와 계단을 계속 오르락내리락하며 한 바퀴를 돌고 있다. 벌써 지겹고 지나온 사람들을 또 마주친다. 그냥 집에 갈까? 몸이 아프신데 방금 ..
2015.03.16 -
아픈 꽃, 카페 '그'
2013.11.28 목요일 ! 이 두가지 키워드로, 나는 카페 '그'를 찾아 갔다. 저녁 6시, 생전 처음 와보는 방화역에서 내려, 한 500 미터쯤 다리 사이를 붙이고 추운 몸을 잔뜩 움추린 채로 어기적어기적 걸었다. 걷다가 걷다가 쭈꾸미 마을이라는 식당이 보였고, 오른쪽 골목으로 쏙 들어가니 카페 '그'가 보이고, 카페 '그'가 보이는 건물 옆, 나란히 붙어 있는 넓은 집 대문에 '새들도 둥지가 필요하다. 하물며, 카페 '그' 여기 사람이 있다.'라는 문구의 현수막이 저녁 칼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우리 가게 생각이 났다. 우리 가게에도 저런 푯말이 걸려있었다. 아니, 건물 담벼락 자체를 피 끓는 현수막으로 무장시켰었지. 현수막을 보니, 그당시에 내가 느꼈던 기분도 다시 떠올랐다. 애써..
2013.11.28 -
찢어진 바지
2011.08.20 토요일 오늘따라 왠지 교복 바지의 움직임이 자유롭고, 다리를 마음껏 벌릴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교실에서 편한 바지의 느낌을 즐기기 위해, 마이클 잭슨처럼 문워크도 흉내 내고 허벅지를 뱅뱅 돌렸다. 교복 바지는 몸에 딱 맞아서 다리의 움직임이 한정돼 있었는데, 이상하게 오늘은 그렇지가 않았다! 아마 수업이 짧은 토요일이라서 마음이 가벼워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을까? 하며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1교시는 진로 교육으로 TV에서 박태환 선수의 이야기가 주르륵 나왔다. 악재를 딛고 다시 한번 세계선수권대회 1등을 한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선수를 보다가, 잠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바지 아래쪽으로 무언가 가느다란 실 같은 것이 풀려, 삐쭉삐쭉 삐져나와 있는 것을 보았다. '어..
2011.08.23 -
뒤죽박죽 샌드위치
2009.09.19 토요일 오늘은 즐거운 토요일! 실과 수업으로 기다렸던 샌드위치 만들기 실습을 하는 날이다. 우리 2모둠에서는 샌드위치에 들어갈 참치, 마요네즈, 고구마 다진 것, 삶은 계란 다진 것과 추가로 햄과 무, 토마토까지 각자 나누어 준비해왔고, 나는 식빵을 두 봉지 가져왔다. 아침부터 아이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산타를 만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흥분해 있었다. 모둠마다 "잘 만들 수 있을까?", "어떡하지? 재료가 좀 부족한 것 같은데!" 하며 손짓하고 말소리를 크게 내서 열을 올리고 왁자지껄하였다. 선생님의 만들라는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무섭게, 우리는 샌드위치 만들기에 돌입했다. 예진이는 삶은 계란을 반으로 갈라, 노른자는 빼고 흰자위를 칼로 부드득 닥닥~ 잘게 다졌다. 그 옆에 민영이는 또 ..
2009.09.21 -
걱정
2009.04.22.수요일 아침 일찍, 영우와 나는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 나는 앞서 걸으며 영우를 재촉했다. 오늘은 영우가 어린이 대공원으로 현장 학습을 가는 날이다. 김밥과 간식이 든 소풍 가방을 메고, 영우는 마음이 들떠 눈하고 입가에서 깨알 같은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환하게 웃는 영우를 보며 난 걱정이 앞섰다. 나도 낼모레면 현장 학습을 갈 거지만, 며칠 전 뉴스에서 현장학습을 가다가 사고가 난 버스 이야기와, 엊그제 우리 선생님께서 해주셨던 끔찍한 이야기가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기 때문이다. "여러분에게 지난번에 들려준 버스 안전에 대한 중요성 이야기 기억하죠? 이 이야기는 너무 끔찍하여 안 하려고 했는데, 버스 안전에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하겠어요! 오래전 땡땡 ..
2009.04.23 -
나뭇잎 나라
2007.11.04 일요일 날씨도 좋고 햇빛이 아까워 우리 가족은 물과 김밥과 새우깡을 싸가지고 서둘러 공순영릉으로 갔다. 공순영릉에 가니 많은 가족들이 가을을 느끼려고 우리처럼 나무 냄새도 맡고 돗자리를 펴고 앉아 햇볕을 쬐고 있었다. 공순영릉 안의 산책 길은 노랑, 주황, 갈색, 황금 빛 나뭇잎들이 카페트처럼 촤르르 깔려 있었는데, 어떤 곳은 발이 움푹 빠지도록 쌓여서 혹시 수렁이 아닐까 겁이 나기도 하였다. 겁이 없는 영우는 온 공원 안을 내 세상이다 하고 벼룩이처럼 폴짝 폴짝 뛰어다녔다. 두 팔을 양 옆으로 날개처럼 펼치고 "부엉 부엉!" 외치며 뛰어다니는 영우의 모습이 숲의 왕자처럼 자유로워 보였다. 그 모습이 부러워 아픈 내 신세가 처량하게만 느껴졌고, 피톤 치드라도 마음껏 들이마시자고 코로 ..
2007.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