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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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을 걸어온 그대에게
2014.11.12 수요일 투두두둑~ 닫지 않은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냉기와 빗소리에 잠을 깬다. 가을이 언제 왔다 갔는지도 모르게 이젠 겨울인가 보다. 새벽 5시 50분, 아직 아침이라기에는 어스름이 전혀 가시지 않았다. 밤새 비가 와서 그런지 추위와 구름의 그림자가 창밖을 가득 메우고 있다. 나는 이 시간이 좋다. 이 세상에 나만이 깨어 있는 듯한 착각이 드는 시간, 의식을 가지고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시간, 어쩌다 한 번씩 새벽의 냄새를 흠뻑 맡을 수 있는 이 시간이 참 좋다. 하지만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의 수능을 이틀 남긴 오늘이기도 하고, 나와 수능 사이가 이제 얼마 남지 않게 느껴지는 오늘은, 흘려보냈던 많은 나날처럼 거리낌 없이 여유를 즐기기가 어렵다. 불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마 나 ..
2014.11.12 -
도둑맞은 핸드폰
도둑맞은 핸드폰 2011.03.16 수요일 학교 끝나고 집에 가는 길, 날씨는 맑은데 꽃샘추위 바람이 살을 엔다. 나는 마음이 천근만근 무겁기만 하다. 마음속은 바짝바짝 타고 있고, 하늘은 무심하게도 이런 날을 골라 맑은 햇빛을 온 세상에 비춘다. 대문 앞에서 열쇠를 꽂아넣은 손이 덜덜 떨린다.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온몸이 으슬으슬 떨리면서 오금이 저린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범수와 동영이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교문 앞이 보이는 언덕길을 오르고 있을 때였다. 나는 학교에 가져왔던 핸드폰에 다시 전원을 켜려고, 잠바 주머니 안에 손을 넣었다. 원래 우리 학교에선 핸드폰 사용 금지를 규칙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막상 아이들을 보니 핸드폰을 안 가지고 다니는 애는 드물었다. 학교 수업 시간엔 전원을 ..
2011.03.18 -
청운 중학교의 불티 나는 매점
2011.03.04 금요일 오늘은 입학식을 한지 3일째 되는 날이다. 그래서 아직 학교 구조를 제대로 파악하진 못하지만, 학교 뒤편에 있는 매점에 나는 꼭 가보고 싶었다. 가끔 초등학교 때부터 중, 고등학교에 가면 매점이 있다는 소리에 솔깃했는데... 매점에는 값도 싸고 맛도 좋은 음식들을 팔아서, 학생들은 매점 음식을 먹는 걸 아주 즐긴다고 한다. 비록 영양가는 없을지라도! 나는 점심을 푸짐하게 먹은 후, 여기저기 산책하다가 드디어 매점에 들러보았다. 그런데 매점 주위에 무슨 큰일이 났는지, 이상하게 학생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었다. 그리고 매점 문앞에서는 한 아저씨가 효자손처럼 생긴 막대기를 들고 휘두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계셨다. 나는 무슨 큰 싸움이 난 줄 알았다. 하지만, 가까이 가보니 매점..
2011.03.05 -
자장면 한 그릇
2010.07.03 토요일 오늘은 우리 동네 아파트 입구에 있는 자장면 집이, 문을 닫았다가 다시 여는 날이다. 그래서 그 기념으로 오후 2시부터 3시까지, 자장면을 한 그릇에 천 원에 파는 행사를 했다. 우리 가족은 자전거를 타고 자장면 집에 도착했다. 예상은 했었지만, 사람이 미어터지도록 많았다. 마침 비 온 뒤 날이 개자, 아파트의 모든 가족이 자장면을 먹으러 나온 듯, 쭉 이어진 줄은 세상 끝까지 이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겨우 마지막 줄에 껴서 턱걸이로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기말고사 후유증 탓인지 늦잠을 자버렸다. 그래서 늦게 일어나서 허둥지둥 학교 가느라 아침을 못 먹었고, 토요일이라 급식도 안 나왔다. 지금은 오후 1시 30분! 서서히 배가 졸이듯 고파왔다. 난 처음에 참..
2010.07.04 -
모닝 빵
2010.02.06 토요일 "헉,헉,헉."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별나라 빵집 문을 열었다. 오늘은 토요일, 학교 급식이 나오지 않는 대신에 각자 집에서 간식을 싸가는 날이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편찮으시고 시간이 늦어서, 별나라 빵집에서 모닝 빵을 사서 학교에서 먹기로 하였다. 빵집에는 온통 바삭바삭, 고소고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는 우선 빵 진열대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빵집은 꼭 낡은 벽돌집처럼 작지만, 요모조모한 빵들이 예쁜 집에 담긴 것처럼 바구니에 담겨 있었다. 딱히 눈에 띄는 것이 없어서, 튼튼한 헬스클럽 아저씨처럼 보이는 빵집 아저씨에게, "여기 모닝 빵 있나요?" 하고 물어보았다. 아저씨께서는 "음, 모닝 빵? 아직 굽는 중이야!"라고 하셨다. 나는 '조금 기다려 볼까?' 생각하다..
2010.02.08 -
밥 두 공기
2009.11.24 화요일 오늘은 늦잠을 자서 아침밥을 거른 채 학교에 갔다. 그래서 오전 내내 배가 고팠다. 어제저녁에 먹었던 아주 질고 맛없던 밥도 옛날처럼 아쉽고 그리워졌다. 배가 한번 고프기 시작하니 뱃속에서 고골고골 앓는 소리가 나면서 배가 밑으로 폭삭 꺼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수업을 들으면서도 때때로 혀를 힘없이 쏙 내밀고, 손으로 꽈르륵거리는 배를 계속 사알살 문지르며 달래주어야 했다. 급식 시간이 되자 나는 오징어 볶음을 밥에 비벼서 푸바바밥! 눈 깜짝할 사이에 먹어치웠다. 그러나 활활 타는 소각로에 휴지 한 조각 넣은 느낌이 들 뿐, 별로 배가 차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밥을 열 그릇이라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오늘은 수업 끝나고 1학년 6반 교실을 청소하는 날이었다..
2009.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