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3)
-
놀라운 선물
2007.12.26 수요일 크리스마스 날 새벽, 침대 머리맡에 놓여있는 선물을 보고 나는 난처했다. 엄마가 너는 이제 나이가 많아서 선물 받을 가능성이 작다고 말씀하셨었기 때문이다. 나는 섭섭했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또 선물 받을 만한 착한 일을 많이 한 것도 아니라서 자격이 없다고도 생각되었다. 하지만, 내가 정말 그렇게 많이 컸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고, 이젠 산타 할아버지와 선물의 세계에 더 끼어들 수 없는 처지가 된 것 같아 서글퍼져 한숨만 나왔다. 그래도 혹시나 몰라서, 잠든 영우의 머리맡에 걸어놓은 크리스마스 양말을 몰래 떼어 내 머리맡에 옮겨두고 새벽까지 이불 속에서 뒤척거리다가 잠이 들었다. 그런데 잠시 뒤에 눈을 뜨자마자 베개 옆에 불룩하게 포장된 선물 꾸러미가 놓인 것을 보고,..
2007.12.26 -
길 잃은 양들
2007.11.30 금요일 박영은 선생님께서 이틀째 안 나오고 계신다. 어제는 교사 연수 때문에 못 나오셨고, 오늘은 작은아버지께서 돌아가셔서 못 오셨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반은 다른 때보다 시끄럽고 어수선하다. 한 교시마다 다른 선생님들께서 교대로 봐 주시기는 하지만, 틈만 나면 여기저기 흩어져서 모이를 쪼고 짹짹짹 떠드는 참새들처럼 질서가 없다. 단, 1학기 임시 선생님이셨던 서미순 선생님이 들어 오실 때만 빼고. 4교시 체육 시간이 되자 우리 반은 어떤 선생님이 오실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선생님은 들어오지 않으셨다. 우리 반 아이들은 점점 떠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속닥속닥 재잘재잘하던 소리가 갈수록 거세게 번지면서 툭탁툭탁 캉캉캉 천둥소리처럼 바뀌더니 교실이 코끼리 발 구르듯..
2007.12.01 -
2007.03.08 투표
2007.03.08 목요일 드디어 투표 시간이 되었다. 선생님께서 "선생님이 이렇게 도장 찍은 종이를 나누어 주면 반으로 접어서 왼쪽에는 남자 중에서 맘에 드는 회장 후보를 쓰고, 오른쪽에는 여자 회장 후보를 각각 1명 씩 쓰세요." 하고 말씀하셨다. 순간 우리 반은 아무도 없는 밤길처럼 조용해졌다. 놀 때는 그렇게 시끄럽던 우리 반 아이들이 지금 이 순간 누구를 뽑을까 고민하느라 쥐 죽은듯 조용해진 것이다. 어떤 아이는 이미 결정했다는 듯이 단호하게 적었고, 어떤 아이는 식은 땀을 흘리며 쓸락말락 연필만 만지작거렸다. 나도 갑자기 잘 모르는 애들을 뽑으려니 갈피가 안잡혀서 머리가 좀 아팠다. 그래서 평소에 하던 모습과 오늘 연설을 생각하며 책임감 있는 아이를 찾아 보았다. 그래, 얘라면 거뜬이 해낼 수..
2007.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