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4)
-
썩어 문드러진 4대강!
2013.10.25 금요일 강이 녹색이었다. 초록색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거무죽죽하고 눅눅한 초록색이 기분 나빴다. 굽이굽이 질척하게 흐르는 게 강물인지, 푹 데쳐서 흐느적거리는 시금치인지 모르겠다. 토할 것 같다. 초록색의 걸쭉한 물로 바뀐 강물 때문에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는 집에 있는 정수기 물을 더 마실 수가 없고, 물고기는 떼죽음 당했고, 어부의 얼굴도 까맣게 죽었다. 낚시하는 사람들은 물이 흐르지 않아 강이 죽었다고 수심에 찬 표정으로 말했고, 농민들은 강물이 높아져 땅에서부터 물이 차 올라, 진흙탕 밭이 되어버린 밭을 보며 울고 있다. "유럽에서는 우주의 시작을 알아보는 실험을 계획하고 성공시켜서 노벨상을 받는데 7조 원을 썼고, 우리나라에서는 동영상으로 보시는 것처럼 강을 파괴하..
2013.10.26 -
사촌 형과 걸으면 밤길이 무섭지 않아!
2011.02.03 목요일 '집합이... 부분 집합... 공집합에...' 나는 너무 심심해서 할아버지 댁 안방 의자에 앉아, 중학교 수학을 노트에 필기해보고 있었다. 그때 '비리비리비! 비리 비리비리~!' 하는 초인종 소리가 귀속을 파고들었다. 나는 '막내 고모네가 오신 건가?' 기대하며 현관으로 나갔다. 문이 열리더니 제일 먼저 막내 고모, 그리고 고모부, 나와 동갑인 혜영이, 그리고 내가 그렇게 기다리던 정욱이 형아가 모습을 나타내었다. 나는 정욱이 형을 보자마자 형아 등을 두드려주며 웃었다. 형아도 그러는 나를 보고 살며시 웃었다. 형아는 마지막으로 본 할머니 칠순 때랑 그다지 달라진 점이 없는 것 같았다. 머리카락이 조금 길었나? "안녕, 형아?", "그래, 안녕!" 거실에서 가족들이 인사를 나누..
2011.02.06 -
어지러운 지하 세계
2008.12.25 목요일 저녁 6시, 엄마랑 나랑 영우는 명동 지하상가 입구에서, 엉덩이에 불을 붙여 튕겨나가듯 차에서 내렸다. 외할머니와 6시에 롯데 백화점 정문 앞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거의 다 와서 차가 꽉 막혀 옴싹달싹 못하길래, 내려서 걸어가기로 한 것이다. 우리 맞은 편에는 건물 벽 전체가 거대한 반짝이 전구로 뒤덮여, 물결처럼 빛을 내는 롯데 백화점이 서 있었다. 백화점 주변의 나무들에도 전구를 휘감아. 엄청난 반짝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백화점은 가까운 거리였지만, 도로를 꽉 메운 차들과, 신호등이 있는 건널목이 없어서 잡힐 듯 말듯 멀어 보였다. 우리 뒤에도 역시 번쩍거리는 상가들이 줄지어 있었고, 그 앞으로 포장마차가 마치 이순신의 일자진처럼 모락모락 김을 뿜으며, 끝도 없이 늘어서 ..
2008.12.27 -
2006.11.01 집현전 헌책방
2006.11.01 수요일 오늘은 집현전 헌책방이라는 아빠의 친구로부터 알게 된 레코드 가게에 갔다. 나는 레코드 가게라는 소리만 듣고 아주 삐까 뻔쩍한 가게인 줄 알았는데, 모양새가 아주 촌스럽고 옛날식 작고 평범한 집이었다. 그 안에는 먼지가 소복하게 쌓여 있는 옛날 책들이 있었다. 하지만 레코드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레코드판은 책방 바깥에 플라스틱 박스에 차곡 차곡 쌓여 있었다. 아빠와 엄마는 나란히 허리를 구부리고 굶은 사람들이 음식을 고르듯이 허겁지겁 레코드판을 고르는 동안 나와 영우는 요때다 하고 만화책을 잽싸게 골라 읽었다. 책방 안은 미로 같았다. 책장을 밀면 또 다른 책장이 나오고 또 밀면 또 나오고 '혹시 조선시대 집현전이 이렇지 않았을까?' 나는 갑자기 집현전 학자가 된..
2006.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