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사주신 삼계탕

2009. 7. 31. 13:46일기

<할머니가 사주신 삼계탕>
2009.07.29 수요일

우리는 오랜만에 외할머니 댁으로 놀러 갔다. 할머니는 더운 날씨에 오느라 수고했다고 삼계탕을 사주셨다. 그런데 그곳은 할머니 동네에서 제일 유명한 삼계탕 전문점이었다.

좁은 골목에 사람들이 줄을 빽빽이 서 있는, 삼계탕의 대가 '토속촌'은, 삼계탕 국물 색깔부터가 누리끼리하지 않고 우유처럼 하얀색이었다. 나는 제일 먼저 삼계탕의 국물을 호우욱~ 넘겼다. 국물이 입안에 들어가는 순간 쓴 향기가 신선하게 느껴져 몸이 떨렸다.

엄마는 국물이 미숫가루처럼 진하다고 하셨다. 영우는 한 숟갈 먹자마자,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음~ 대박이군!" 하였다. 아빠는 국물을 느끼고 할 것도 없이, 벌써 고기를 해체하고 뜯으면서, 아무 표정없이 먹는 데만 열중하고 계셨다. 할머니는 엄마 닭이 아가들을 챙기는 것처럼, "이것 좀 먹어봐, 저것 좀 먹어봐!" 하시며 천천히 오물오물 드셨다.

닭 안에 꽉 채워져 있는 밥을 보고 반가워서 한 숟갈 푹~ 떠서 옵옵웁웁 먹었다. 먹을수록 찰지고, 고기는 움푹움푹 부드럽게 잘 넘어가서, 할머니 앞이라 품위를 지키려던 내 모습은 없어지고 말았다. 포악한 여우처럼 고기뼈까지 우두둑 뿌두둑 씹어먹으며, 입 주위에는 국물과 밥알이 덕지덕지 붙었다.

"아휴, 상우야, 좀 천천히 먹어라, 그러다 체할라!" 하시는 할머니 말씀을 듣고, 잠깐 싹 웃으며 천천히 먹는 척했다가, 어느 순간 다시 우쩝우쩝~ 격렬하게 먹기 시작했다. 다 먹고 난 내 접시에는 파편처럼 작은 닭뼈다귀가 어지럽게 쌓이고, 손가락만 한 인삼 두 뿌리가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 난 인삼을 안 먹으려 했는데, 할머니가 몸에 좋다고 꼭 먹어보라 하셨다.

그래서 꾹 참고 인삼 하나를 통째로 입 안에 넣고, 최대한 빠르게 씹어서 빠샤빠샤 가루로 만들어, 눈물을 머금고 알약을 먹는 것처럼 물과 함께 삼켰다. 그리고 시커먼 뚝배기째 들고 마지막 남은 국물을 끌껍끕~ 끌껍끄읍~ 다 마셨다. 빈 뚝배기를 상위에 탁! 내려놓는 순간, 나는 신선이 되어 부웅~ 올라갈 것 같았다. 마주앉은 할머니의 얼굴에도, 우리를 지켜주는 수호 정령처럼 웃음이 번지며 빛이 나셨다.

할머니가 사주신 삼계탕